무조건 이겨야 했던 키르키스스탄 원정에서 1-1로 비긴 직후인지 몰라도, 김판곤 감독을 향한 말레이시아 매체들의 반응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주어진 조건이 꽤나 가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닌 상황이다. 자력으로 최종 예선 진출은 불가능하지만, 전제 조건을 달성한 후 타 경기 결과에서 행운이 따른다면 말레이시아의 최종 예선 진출은 가능하다. 김 감독도 그 점을 강조했다.

김 감독이 이끄는 말레이시아는 오는 11일 밤 10시(한국 시각) 쿠알라룸푸르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에서 예정된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D그룹 6라운드 대만전을 앞두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5경기를 마친 현재 승점 7점(2승 1무 2패)로 그룹 3위에 랭크되어 있다. 최종 예선 진출권이 주어지는 2위에 위치한 키르키스스탄(승점 10점)과 승점 차는 3점이다. 관건은 골 득실인데 키르키스스탄과 골 득실차는 7골이다. 즉, 말레이시아는 안방에서 최약체 대만을 상대로 7골을 몰아넣고 키르키스스탄이 오만 원정에서 지길 바라는 상황에 처했다.

한국이 속한 C그룹 판도와 비교하자면, 승점상으로는 말레이시아가 처한 상황은 태국과 흡사하다. 마지막 경기를 그룹 내 최약체와 홈에서 치른다. 하지만 태국은 2-0으로 이상으로 승리한 후 한국이 중국을 꺾어주는 상황이 주어져야 최종예선에 진출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그보다 최소 다섯 골이 더 필요하다. 물론 오만이 키르키스스탄을 상대로 한 원정에서 많은 골을 넣고 승리해 말레이시아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지만, 그건 현 시점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얘기다.

어쨌든 말레이시아 매체들은 10일 사전 기자회견에서 이 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아무리 대만이 약체라고 하지만, 그래도 7골 이상 넣고 이기는 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11월 대만 원정에서 1-0으로 한 골 차 승리를 거둔 바 있다.

김 감독은 지난해 6월 안방에서 열렸던 파푸아 뉴기니와 친선 경기에서 10-0 대승을 거둔 것을 언급했다. 김 감독은 "상당히 어렵다"라면서도 "현재 지닌 전력을 통해 대만과 승부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파푸아뉴기니를 상대로 10-0으로 이긴 바 있다. 그래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에서 뭔가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라고 희망의 끊을 놓지 않으려 했다.

김 감독과 함께 기자회견에 동석한 미드필더 파울로 조수에도 "7-0, 6-0 같은 결과를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 팀의 주요 공격수가 빠진 상황"이라면서도 "첫 골을 넣은 후에도 다음 골을 넣으려고 계속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기회는 아직 있다. 킥오프 후 10~20분 안에 두 골을 넣으면 좋겠다. 하지만 동시에 실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의지를 다졌다.

김 감독은 말레이시아 사령탑 부임 후 여러 차례 믿기지 않은 결과를 낸 적이 있다. 지난해 11월 키르키스스탄과 홈 경기에서 1-3으로 지다가 4-3으로 역전한 점,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한국전에서는 놀랍게도 3-3 무승부를 이루며 아시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번에는 한 수 아래 약체와 싸우지만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굉장히 험난하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