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여수 밤바다, 그리고 야반도주’ 연고지 이전의 추억
출처:점프볼|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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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들어서만 무려 세 팀이 연고지를 이전했다. 2021년 수원 KT와 대구 한국가스공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이전이었지만, KCC의 부산행은 ‘갑툭튀’였다. 시즌 개막을 2개월도 안 남겨둔 데다 최고의 충성도를 지닌 전주 팬들을 떠났다는 점에서 여파가 컸다. 연고지를 이전할 수밖에 없었던 팀은 과거에도 있었다. 이별에도 과정이 있듯 누군가는 ‘뜨거운 안녕’을 고했지만, 또 누군가는 ‘야반도주의 대명사’가 됐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낭만 가득했던 여수 밤바다
KBL 출범 후 처음으로 연고지명이 바뀐 팀은 LG다. 1997-1998시즌에 SK와 함께 막내 팀으로 KBL에 뛰어들 당시 LG의 정식 명칭은 ‘경남 LG 세이커스’였다. 창원체육관과 마산체육관에서 홈경기를 유치, 경남을 연고지명으로 사용했다.

LG의 정식 명칭은 1998-1999시즌에 ‘창원 LG 세이커스’로 바뀌었다. “우리 팀만 연고지명에 도가 들어갔는데 연맹 차원에서 지자체, 다시 말해 특정 시를 연고지명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창원, 마산 가운데 택일한다면 당연히 창원체육관이었다. 마산체육관은 프로스포츠를 치르기엔 시설이 낙후된 체육관이었다”라는 게 손종오 LG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연고지명이 바뀌었지만, LG가 사용하는 체육관은 창단 첫 시즌부터 줄곧 창원체육관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연고지를 이전한 최초의 팀은 골드뱅크다. 광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나산그룹이 창단한 나산 플라망스는 1998-1999시즌 종료 후 모기업의 부도 위기로 해체 위기에 놓였고, 나산을 인수한 기업이 바로 골드뱅크였다.

골드뱅크는 연고지 광주도 그대로 물려받았지만, 창단 첫 시즌인 1999-2000시즌에 광주염주체육관에서는 1경기도 홈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나산이 그랬듯 군산월명체육관에서 대부분의 홈경기를 개최했고, 여수체육관에서도 5경기를 소화했다. ‘시설 낙후’가 주된 이유였다.

당시 골드뱅크 사무국 소속이었던 A관계자는 “염주체육관은 너무 낡았고 난방시설도 취약했다. 개보수를 요청해도 광주시가 협조를 안 해줬다. 반면, 여수는 스포츠 경기 유치에 적극적이었고 대관료도 저렴했다. 광역시는 입장 수입의 15%였지만, 여수는 5%의 절반 수준이었다”라고 돌아봤다.

연고지명만 광주일 뿐, 군산과 여수를 오가며 홈경기를 치른 골드뱅크는 1999-2000시즌 종료 후 공식적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여수, 전주, 군산이 새로운 연고지 후보로 부상한 가운데 창단 첫 시즌을 치르는 동안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준 여수를 새로운 연고지로 낙점했다.

“결혼은 결혼하자고 하는 사람이랑 해야 한다(웃음). 여수체육관은 난방을 비롯해 걱정할 문제가 없었다. 당시 여수시장이 농구를 워낙 좋아한 덕분에 협조도 잘 이뤄졌다. 전주와 군산도 후보군이었지만, 지역성은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광주가 전남의 범주라고 보면 같은 전남에 있는 여수로 옮기는 게 타당했다. 전주와 군산은 전북이다. 군산은 당시만 해도 체육관 근처가 허허벌판이어서 관중 동원에 어려움이 있었다. 전주는 전북대에 체육관이 있어 마케팅 측면에서 유리했지만, 결국 남도에서 북도로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A관계자의 설명이다.

여수시의 적극적인 러브콜에 연고지를 이전했지만, 골드뱅크와 여수의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들의 유대관계는 돈독했으나 골드뱅크 모기업의 재정 상태는 안정적이지 못했다. 사명을 코리아텐더로 변경하는 등 보다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점점 재정 상태가 악화돼 농구단의 존속 여부마저 불투명해졌다.

코리아텐더는 선수들의 월급이 수개월 밀리는 등 열악한 여건 속에 치른 2002-2003시즌에 4강 진출이라는 드라마를 만들었지만, 대기업의 농구단 인수 제안은 없었다. 시민 구단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등 농구단을 살리기 위한 사무국의 노력 또한 시의회의 동의를 못 얻어 무산됐다.

코리아텐더가 농구단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내린 결정은 또 한 번의 연고지 이전이었다. 빅마켓을 연고지로 둔다면 대기업의 러브콜을 받을 거란 확신을 갖고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을 새 연고지로 택했다.

“계속 여수에 남아있었다면 농구단은 얼마 못가 해체됐을 것이다. 농구단에 큰 애정을 보내줬던 여수시민들조차 ‘농구단이 새로운 기업에 매각될 수만 있다면 큰 도시로 떠나도 된다’라고 할 정도였다.” A관계자의 회고다.

코리아텐더의 노림수는 적중했다. 연고지를 부산으로 이전한 후 맞이한 2003년 11월, SK의 통신사 라이벌 KTF가 30억 원에 코리아텐더를 인수한 것. KTF는 KBL 이사회를 거쳐 이례적으로 시즌 도중 창단식을 열었고, ‘부산 KTF 매직윙스’로 새 출발했다. 훗날 이름을 바꾼 KT가 수원으로 떠나며 부산과의 18년 동행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A관계자는 농구단이 유지될 수 있도록 성원해준 여수를 잊지 않았다.



2007-2008시즌에 있었던 감동 실화. 코리아텐더와 희로애락을 함께한 A관계자는 이후 안양 KT&G(현 정관장)에 입사하며 농구와의 연을 이어갔다. A관계자가 속한 KT&G는 2007-2008시즌에 자회사 주력 브랜드인 정관장 대신 ‘2012 여수세계박람회’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일부 홈경기를 치렀다. 정관장을 유니폼에 새기면 경기당 2000만 원의 광고료를 챙길 수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과거 농구단을 지지해준 여수시민들을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KTF 역시 여수 팬들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KTF는 2007-2008시즌 홈 최종전을 부산사직체육관이 아닌 여수체육관에서 치르기로 결정했다. 어려운 여건에도 4강 신화를 이룬 체육관을 다시 찾아 여수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마침 당시 KTF의 상대는 A관계자가 소속된 KT&G였고, 이날만큼은 양 팀 선수들 모두 ‘2012 여수 세계박람회’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으며 여수를 홍보했다.

KTF와 여수에서의 특별 경기를 협업했던 A관계자는 “여수에 뿌리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시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다. 여수시민들은 항상 선수단에 힘을 실어줬다. 지금도 여수시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게 프로스포츠가 만들 수 있는 스토리이자 낭만 아닐까.



한 지붕 두 가족, 또 한 번의 이사
2001년에는 유례없는 연고지 이전 대란이 일어났다. 무려 네 팀이 한꺼번에 연고지를 옮겼다. 대전 현대와 부산 기아는 모기업이 바뀐 영향이 컸다. 현대 농구단을 인수한 KCC는 제3공단이 전주에 위치해 자연스럽게 전주가 새로운 연고지가 됐다.

기아는 2000년부터 연고지 이전을 추진하긴 했지만, 모기업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합병된 데다 현대모비스의 주력공장은 울산에 있었다. 이에 따라 1997-1998시즌부터 2시즌 연속으로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으며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KCC, 현대모비스는 2001년부터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 출발을 알렸다.

나머지 두 팀은 현재까지도 서울을 연고지로 두고 있는 삼성, SK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KBL이 출범할 당시만 해도 특정 팀의 연고지가 아니었다. KBL은 전국 각지에 프로팀을 배치해 전국적으로 프로농구의 출범을 알렸고, 서울 연고 팀이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중립경기로 채웠다. 출범 초기 KBL은 주말마다 올림픽 제2체육관, 잠실체육관 등 서울에서 열리는 중립경기를 배정했다. 잠실체육관에서 하루 2경기가 열리는 날도 많았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서울을 연고지로 둔 팀의 필요성을 실감한 KBL은 2000년 서울을 연고지로 희망하는 팀으로부터 신청서를 받기로 했다. 서울이 지닌 시장성이나 상징성이 큰 만큼, 희망하는 팀은 KBL에 발전기금 110억 원을 납부해야 했다.

발전기금이 부담이 된 걸까. 어느 팀도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자, KBL은 1년 뒤 조건을 하향 조정했다. 프로야구의 ‘잠실 라이벌’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처럼 두 팀이 나란히 서울을 연고지로 두고 홈구장도 잠실체육관을 함께 사용하는 안이었다.

발전기금 역시 110억 원에서 팀당 50억 원 총 100억 원으로 낮췄고, 세 팀 이상이 신청서를 제출하면 추첨을 거치기로 했다. 이후 삼성과 SK가 논의 끝에 서울 입성을 희망했다. 현대 역시 서울 이전을 검토했지만, 발전기금에 부담을 느낀 데다 KCC에 인수되며 전주로 떠나 삼성과 SK가 서울의 주인이 됐다.

서울로 옮기기 전 삼성의 연고지는 수원이었다. 현재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여자배구단이 홈구장으로 사용 중인 수원체육관이 초창기 삼성의 홈구장이었다. 삼성은 실업 시절 ‘오빠부대(MZ도 이 별명을 아는지 모르겠다)’를 몰고 다닌 문경은을 보유한 데다 2000-2001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했지만, 전국구 인기 팀이 되기 위해선 서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삼성 농구단 경영 지원팀장이었던 이상윤 SPOTV 해설위원은 “직원들을 동원해 관중석을 채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유료 관중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수원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서울이 지닌 메리트가 너무 컸다. 두산, LG처럼 인기가 많아지지 않을까란 생각에 연고지를 옮겼다. 당연히 수원시에서는 이전을 반대했지만 팀은 큰돈을 써서라도 서울에 가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라고 회상했다.


삼성과 달리 SK는 창단 초기 청주에 뿌리내리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청주 시내에 위치한 백화점에 60여 종의 팀 굿즈를 판매하는 매장을 열었고, 제2연고지를 가장 먼저 도입한 팀도 SK였다. SK는 1999-2000시즌에 12경기를 청주, 6경기를 충주에서 치렀다(LG 역시 창단 첫 시즌에 창원, 마산에서 홈경기를 개최했으나 손종오 사무국장은 “우리는 특정 체육관을 메인으로 지정한 게 아니어서 제2연고지 개념은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SK가 창단할 당시 충북농구협회장은 공석이었다. 충북농구협회의 제안에 이원재 당시 SK 단장이 충북농구협회장을 겸했고, 이후 제2연고지 정착 계획도 구체화됐다. 마침 청주에 인접한 충주고는 임효성을 앞세워 1990년대 후반 고교대회 정상에 오르며 이슈를 일으킨 터였다.

“충주체육관에 1억 원 이상 투자해 전광판, 골대 등을 설치했다. 당시 청주체육관(3800석)보다 좌석(4000석)도 많았다. 만약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지 않았다면 충주를 꾸준히 제2연고지로 활용했을 것이다.” 이재호 SK 홍보팀장의 회고다.

바람과 달리 SK, 청주시는 평행선을 달렸다. 체육관 시설이 열악했던 데다 당시 청주시의 협조도 원활하지 않았다. 이재호 홍보팀장은 “난방기 4대를 가동해도 기자들의 발이 차가울 정도였다. 지금은 KB스타즈가 많이 개보수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안전등급도 낮았다. 청주는 그룹 규모에 비하면 소도시였고, 마침 KBL에서 서울 연고 희망을 신청 받아 이전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서울에 입성한 삼성, SK는 2001-2002시즌부터 한동안 잠실체육관에서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이어갔다. 코트 정중앙에 팀 로고가 들어가는 타 구장과 달리, 잠실체육관은 점프볼 지점을 기준으로 좌우 코트에 각각 양 팀의 로고가 새겨진 채 경기가 열렸다. 예를 들어 삼성이 홈경기를 할 때도 늘 SK 로고가 노출됐다.

SK가 체육관을 이전한 건 2004년이었다. 문화체육부 장관 출신 김영수 KBL 신임 총재가 부임, 서울시교육감과 협의해 잠실학생체육관도 프로 팀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장벽을 깼다. 이후 양 팀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SK가 잠실학생체육관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이재호 홍보팀장은 “잠실학생체육관이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데다 상대적으로 관중석이 적어 보다 관중이 들어찬 느낌을 줄 수 있었다. 보일러 시설이 미비해 오자마자 5억 원 정도 투자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개보수를 거쳤다”라고 말했다. SK는 잠실학생체육관 입성 후에도 한동안 암흑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꾸준한 투자, 스포테인먼트와 체계적인 시스템 도입 등을 더해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팀으로 거듭났다.



말로는 ‘정’, 실태는 두 번의 야반도주
동서, 종목을 막론하고 프로스포츠팀이 보다 나은 환경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찌 보면 그들의 업무 가운데 하나다. NBA에서는 “팬들을 여섯번째 멤버로 여긴다”라며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했던 새크라멘토 킹스, 홈 814경기 연속 매진 기록을 만든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조차 연고지 이전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이별에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지만 “오빠, 일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라며 결별을 통보하는 것(내가 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마디 예고 없이 잠수탄 후 보란 듯 새로운 남자 친구와 함께 나타나는 것 중 무엇이 더 잔인한 이별일까.

예시 중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듯, 오래 전부터 농구를 봐온 독자라면 이쯤에서 쉽게 떠오르는 팀이 있을 것이다. 그룹 주력상품을 ‘정’으로 포장했지만, ‘야반도주의 대명사’ 된 오리온이다.

오리온은 한때 KCC의 뒤를 잇는 전국구 인기 팀이었다. 데뷔와 함께 신인상과 MVP를 싹쓸이한 김승현, 전희철, 김병철, 화려한 외국선수들을 앞세워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한 2001-2002시즌부터 2006-2007시즌까지 KBL 최초로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했고, 2000년대부터 농구를 취재해왔던 한 기자는 “오리온 홈경기는 관중석뿐만 아니라 기자석도 꽉 차던 시절이 있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모두 ‘대구 오리온스’ 시절에 만든 역사다.

전국구를 자부했던 오리온은 2010-2011시즌 종료 후 돌연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다. 당시 최신식이었던 데다 5600석 규모를 지닌 고양체육관으로 떠났다. 문제는 과정이었다. 오리온의 연고지 이전설은 이전부터 꾸준히 관계자들 사이에서 오르내렸지만,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11년 한 매체의 단독 보도에 의해서였다. 오리온은 “논의는 있었지만 결정된 건 없다”라며 애매한 입장을 전했고, 대구시 역시 “사실무근이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오리온은 며칠 후 고양시와 MOU를 체결했고, 심용섭 당시 오리온 단장은 “본사가 서울에 있고 임대관계에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 대구에 있으면 이중살림이 아닌 사중살림을 해야 한다. 고양은 선수들, 사무국 모두 출퇴근이 가능해 경기와 연습에 몰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고 이전에 2년 앞서 숙소를 대구로 옮기며 친 연고지 정책을 펼쳤던 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사유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KBL 이사회의 승인을 받지도 않은 채 MOU부터 체결했다는 점이다. “연고지 이전이 한 번도 부결된 적이 없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승인하는 것이 관행이다. 지금까지 관행대로 이사회에서 승인해줄 것이다.” 심용섭 단장의 말이었다.

절차를 무시한 채 불도저처럼 이전을 추진한 오리온은 결국 고양에 무혈 입성했다. 32연패 시절에도, 김승현의 이면계약 파문에도, 다시 찾아온 암흑기에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대구 농구 팬들은 한국가스공사가 창단하기 전까지 쓰린 상처를 감내해야 했다.



물론 서두에 언급했듯 연고지를 이전한 게 죄는 아니다. 오리온은 전성기 시절에도 대구시의 열악한 지원, 농구단 매각설이 끊이지 않는 등 이면은 밝지 않았다. 당시 오리온 사무국에서 근무했던 B관계자는 “대구 팬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연고지 이전은 농구단이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선수, 팀의 존폐가 걸린 문제였다”라고 회상했다.

그래도 프로스포츠는 팬이 있기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오히려 여수 팬들이 이전을 응원한 코리아텐더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조금 더 세련된 이별도 가능했다는 걸 감안하면 오리온의 연고지 이전은 여러모로 KBL의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촌극은 또 있었다. 오리온의 프랜차이즈스타 김병철은 오리온의 대구 시대가 막을 내린 것과 동시에 은퇴했다. 이로 인해 한 번도 뛰어본 적도, 박수를 받아본 적도 없는 고양체육관과 고양 팬들 앞에서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을 진행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이었다. 오리온은 2021-2022시즌을 치르는 동안 물밑에서 매각을 추진했고, 재정 상태가 뻔히 보이는 데이원스포츠에 ‘재고 떨이’ 하듯 농구단을 넘겼다. 오리온이 또 한 번 야반도주한 탓에 KBL은 출범 후 유례없는 후폭풍을 맞아야 했다. ‘대구 오리온스’의 유산이나 다름없었던 김병철의 영구결번 10번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부디 ‘우리 팀’을 두 번이나 잃은 경험이 있는 부산 농구 팬들은 KCC와 오랫동안 상생하는 사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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