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김민재만 뜨겁다고? 영암에 더 큰 괴물이 있습니다"
출처:노컷뉴스|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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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스포츠계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선수 중 1명은 김민재(27·나폴리)였다. 엄청난 체구에도 스피드까지 갖춘 김민재는 한국 축구의 대들보였다. 피지컬이 좋은 상대 공격수를 힘과 스피드로 제압하는 김민재는 그야말로 괴물 수비수였다. 세계 4대 리그로 꼽히는 이탈리아 세리에A에 진출해 나폴리를 우승 0순위로 올려놓은 김민재는 카타르월드컵에서 12년 만에 한국 축구의 16강을 견인했다.

그런데 세계 3대 미항(美港)으로 꼽히는 나폴리에만 김민재가 있는 게 아니었다. 한국 전남의 또 다른 항구 영암군에도 괴물이 있다. 키는 190cm로 나폴리 김민재와 같지만 몸무게는 60kg 정도나 더 나간다. 5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인재라고 한다. 한국 씨름이 낳은 최고의 스타 이만기 인제대 교수(60) 이후 민속 스포츠 씨름을 이끌어갈 대형 선수가 탄생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 교수 이후 무려 37년 만에 대학생 천하장사에 등극하면서 가능성을 입증했다.

모래판에 무패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민재(21·영암군민속씨름단)가 바야흐로 한국 씨름을 접수하고 있다. 김민재는 대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6월 단오장사대회에서 쟁쟁한 천하장사 출신 실업팀 선배들을 제치고 백두장사(140kg 이하)에 오르더니 12월에는 무려 천하장사에 등극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쥔 것은 그동안 이 교수가 유일했다. 김민재가 한국 씨름 역사상 2호로 재현해낸 것이다.

이 교수의 재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민재는 울산대학교 1학년 말부터 대학은 물론 민속 씨름 대회까지 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다. 씨름 명문 영암군민속씨름단에 입단하자마자 김민재는 올해 첫 대회인 ‘위더스제약 2023 설날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출전한 민속 씨름 대회 모두 꽃가마를 타며 우승 확률 100%를 찍은 김민재를 CBS노컷뉴스가 전남 영암 훈련장에서 만났다.

▲"지금까지 나보다 힘이 좋은 선수 본 적이 없죠"

도무지 적수가 없다. 2021년 구례대학장사대회부터 지난해 대학 대회에서 4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출전한 민속 씨름 대회도 2번 제패했다. 지난해 단오 대회에서 2번이나 천하장사에 오른 우승 후보 장성우(현 MG새마을금고)와 김진(증평군청) 등 천하장사 출신들을 눕히며 포효했다.

그러더니 천하장사 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올해 설날 대회까지 1년여 동안 패배를 몰랐다. 김민재는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70연승쯤 될 것 같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이에 대해 김민재는 "하나 하나 하다 보니 민속 씨름에서 3개 대회 연속 우승하게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나는 유튜브에서 보던 형들을 너무 잘 아는 상태에서 (샅바를) 잡고 형들은 나를 잘 몰라서 이긴 것 같다"면서 "주변에서는 아니라 해도 아직 많이 부족해서 나는 운이라고 본다"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그래도 "3회 연속 우승이면 대단한 거 아니냐"고 다그치자 그제서야 "이제는 좀 실력이 되는 거 같다"고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스스로에게 박한 점수를 내린다. 김민재는 "아직 내가 생각하는 목표에 50%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천하장사에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이룬 김민재는 아직 21살이다.



김민재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다. 고교 때부터 김민재를 눈여겨본 영암군민속씨름단 김기태 감독은 "이만기 선배님이 정말 대단하셨는데 민재가 이를 능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 타고난 힘에 발군의 운동 능력까지 지녔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대한체육회 체력 측정에서 순발력과 유연성 등에서 육상 선수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김민재는 "6월 단오대회 결승에서 만난 김진 선배가 골반을 끄는 힘이 뛰어나다"면서도 "그러나 순수한 힘에서 지금까지 나보다 앞선 선수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엄청난 노력파다. 김 감독은 "쉬는 날에도 운동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라고 했다. 김민재는 "웨이트 훈련을 하면 290~300kg 정도 메고 스쿼트를 한다"면서 "데드 리프트를 해도 290kg 이상을 든다"고 말했다. 이러니 아직 전성기를 향해 가고 있는 가운데서도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김민재는 "고교 시절 영암군민속씨름단에서 함께 훈련했던 장성우 형과 경기했는데 승리한 뒤 ‘네가 정말 최고‘라고 칭찬해주셨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최강은 아니었지만…그만 두라는 부모님에 오기로 버텼죠"

김민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160cm를 넘을 정도로 체격이 컸다. 고향인 장흥군에서 매년 열리는 어린이 씨름왕 대회에 나가 보라는 권유로 출전해 당연히 우승했다. 이를 눈여겨본 관산초등학교 씨름부에 스카우트되면서 김민재는 씨름에 입문했다.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었다. 김민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3등 2번을 제외하고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메달이 없었다"면서 "어릴 때 재능이 있던 선수는 아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원래 시골집 장남이라서 공부를 시키려고 하셨는데 반에서 1등은 했다"면서 "씨름 성적이 잘 안 나니까 부모님도 그만 두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김민재는 "부모님께서 반대하셔서 오기로 더 했다"면서 "1년, 1년 하다 보니 지난 세월이 아깝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학교 2학년 뒤 겨울 훈련 때 구례중학교 김진영 감독님과 마음 잡고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김민재는 "그랬더니 중학교 3학년 때 2관왕을 비롯해 다수의 대회에서 입상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성적이 나오니 재미도 붙었다. 김민재는 "상대를 이길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면서 "질 때는 좀 그래도 지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재미도 있다"고 의젓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고교 시절(여수공고)까지도 최강은 아니었다. 김민재는 "고교 3학년 동안 우승 3번, 준우승 1번, 동메달이 6번 정도 됐다"면서 "2인자 정도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최성민(태안군청)이 1인자였는데 고교 졸업 뒤 곧바로 실업 무대로 진출했다. 김민재는 "성민이가 4번의 백두장사에 올랐다"고 했다.

실업 직행이 아닌 대학 진학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민재는 "고교 때 1인자도 아니었고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대학교에서 조금 더 단련한 뒤 실업에 간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이게 멋지게 적중했다. 김민재는 대학교 1학년 한때 슬럼프에 빠졌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마지막 구례대학장사대회부터 완전히 기량에 물이 올랐다. 김 감독은 "고교까지만 해도 미숙한 점이 있어 대학 진학을 권유했는데 어떻게 힘을 쓰는지 알게 됐다"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엄청난 힘에서 나오는 들배지기와 밀어치기를 당할 선수가 없었다.

아직 고교 때 1인자였던 최성민과는 민속 씨름 무대에서는 맞붙지 않았다. 그때는 뒤졌지만 지금이라면 김민재가 더 우위에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김민재는 "성민이와 친해서 얘기를 많이 하는데 ‘결승에서 만나면 진짜 재미있게 해보자‘고 한다"고 즉답을 피하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만기 선배님, 나폴리 김민재 형까지 힘들지만 씨름 하면 내가 떠오르도록"

이처럼 김민재는 모래판을 평정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우선은 씨름에서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다. 김민재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시작이 반이라고 50 정도 왔다"면서 "씨름 하면 지금까지는 이만기 선배를 떠올렸지만 김민재가 떠오른다면 100%가 될 것"이라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만기 교수처럼 완전히 씨름계를 접수해야 한다. 김민재는 "이만기 선배가 천하장사 10번을 차지했다고 들었다"면서 "그걸 넘고 싶은데 예전에는 천하장사대회를 1년에 몇 번씩 열었지만 현재는 1번씩만 개최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김민재는 "일단 40살까지 선수 생활을 계획 중인데 5번 천하장사를 목표로 해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김 감독이 "7번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눈을 흘기자 "7번으로 상향해보겠다"고 화답했다. 



힘이 워낙 좋지만 다른 기술도 장착해야 한다. 김민재는 "어리다 보니 다른 실업팀 형들에 비해 자세와 기술의 성숙도가 낮고 기술의 폭도 좁은 것 같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이어 "들배지기와 밀어치기가 주특기인데 안다리 밭다리 등 다른 기술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지금으로서는 인지도에서 축구 김민재에 밀리는 게 현실이다. 사실 은퇴할 때까지 종목의 인기 차이 때문에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 김민재는 "나도 축구를 자주 보는데 나폴리의 김민재 형이 너무 잘 해서 아직 따라잡으려면 멀었다"면서 "덕분에 나도 득을 많이 보는 것 같고 나중에 사인을 받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한국 씨름에 혜성처럼 등장해 모래판을 휘어잡고 있는 김민재. 과연 우상 이만기 교수를 넘고 축구의 김민재를 능가하는 인지도를 누릴 수 있을까. 일단 김민재는 오는 23일부터 열리는 ‘위더스제약 2023 문경장사씨름대회‘에서 무패 행진과 함께 4회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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