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가 저문 것일까.

KBO리그를 이끌었던 거장(巨匠)들이 연이어 퇴장했다. 지난해 김성근(76) 전 한화 감독에 이어 올해는 김경문(60) 전 NC 감독이 시즌 중 하차했다. 김성근 감독은 24시즌 1388승, 김경문 감독은 14시즌 896승을 거둔 KBO리그 대표명장이다. 그러나 뒷파도가 앞파도를 밀어내듯 두 사람 모두 리그 최고령 감독일 때 쓸쓸하게 물러났다.

두 감독은 2000년대 후반 SK와 두산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리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2007~2008년 한국시리즈,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가을 명승부를 연출했다. 한 베이스 더 노리는 공격적인 발야구, 이를 막기 위해 1인치를 옮기는 수비 시프트, 한 박자 빠른 불펜 야구로 숨 막히는 혈전을 벌이며 야구의 트렌드를 선도했다.

두 감독은 닮은 점도 많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운 1인 리더십이 그렇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한다. 뛰어난 선수 보는 안목으로 육성 능력을 발휘했다. 그들이 맡는 팀에서는 언제나 긴장감 속에 새로운 선수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빠른 기간 팀 성적을 내는 능력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 KBO리그 무게 중심은 현장에서 프런트로 넘어왔다. 프런트 주도로 팀 구성과 계획이 짜여졌다. 현장 주의자였던 김성근 감독은 구단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며 만천하에 불화가 드러났다. 김경문 감독은 구단과 협조하며 갈등을 외부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세이버매트릭스·데이터 팀 의존도가 높은 구단 내 분위기를 탐탁지 않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카리스마형‘ 리더십도 한계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은 강도 높은 연습과 특타·특투로 대변된 강훈련으로 밀어붙였지만 선수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선수들의 몸이 못 버텼다. 끊임없는 경쟁을 유도하며 잠시도 흐트러짐을 용납 않는 김경문 감독의 NC도 선수단은 물론 프런트까지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성적이 나면 쌓인 피로감이 해소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불펜야구의 한계도 두 감독을 끌어내린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144경기 체제에서 선발야구가 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강팀이 되기 어렵다. 선발투수를 키우는 데 애를 먹었고, 불펜 필승조 투수들에 대한 의존도는 나날이 높아졌다. 중후반으로 갈수록 힘든 야구가 됐다. 두 감독에겐 ‘불펜 혹사‘ 논란이 뒤따랐다. 대량 실점 투수를 교체하는 않는 벌투 논란도 있었다.

NC의 이번 감독 교체를 두고 ‘한화를 모델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 야구 관계자는 "지금 NC의 모습은 지난해까지 한화 모습과 비슷하다. 선수들이 많이 지쳐있다. 이제 다시 팀을 정비할 시기가 왔다"며 "한화는 지난해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에서 팀을 잘 추슬렀다. NC도 그런 부분을 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영준 감독대행도 온화한 스타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23일 김성근 감독이 한화를 떠났을 때 김경문 감독은 "이 세계는 결과에 따라 감독이 책임을 져야 하는 곳이다. 아쉽지만 나도 초연해질 수밖에 없다"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1년 후 김경문 감독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물러났다. 40~50대 젊은 감독들이 대세를 이루는 KBO리그에서 60대로 접어든 김경문 감독이 현장에 돌아올진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