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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간 동양인 불펜 투수의 ML 생존기
출처:다음스포츠|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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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일본 시리즈가 시작됐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자신만만했다. 세계적인 ‘빅 게임’ 플레이어를 2명이나 보유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기전에서 늘 엄청났던 초특급 스페셜리스트들이다.

한 명은 타자였다. 올림픽 같은 큰 경기에서 몇 차례나 야구사에 남을 한 방을 터트렸다. 라이벌 팀의 유니폼을 입고 나와서 늘 일본을 괴롭히던 존재였다. 바로 이승엽이다.

또 한 명은 투수였다. 일찍이 대학 시절부터 대표팀의 에이스를 맡았다. 아마추어의 절대 강자였던 쿠바전의 승리투수가 되면서 단번에 레벨 업을 이뤘다. 이후 WBC 같은 국제대회에서 중요한 일전마다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우에하라 고지였다.

그러나 막상 시리즈가 시작되자 얘기가 달라졌다. 믿었던 둘의 부진이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승엽은 18타수 동안 겨우 2안타에 그쳤다. 와중에 무려 12번의 삼진을 당했다. 하라 감독은 후에 “그를 7차전까지 기용한 것은 내 실수였다”고 자책했다.

우에하라도 마찬가지였다. 5차전에 선발로 나갔지만 3회를 넘기지 못했다(7안타 2실점). 매회 위기를 맞으며 불안감을 보인 끝에 강판되고 말았다. 결국 요미우리는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패해 대권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교징(巨人) 팬에게 우승컵을 안기고 떠나겠다던 우에하라는 고민에 빠졌다. 한동안의 갈등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강했다. 평생의 꿈을 위해 도전을 선택했다. 메이저리그 행을 선언한 것이다. 그의 나이 34살 때였다.

만류가 심했다. 힘도 떨어지고, 몸도 좋지 않았다. ‘그 나이에 어떻게 버티겠냐.’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말렸다. 게다가 한사코 선발만을 고집했다. 당연히 미국쪽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나마 아시아 쪽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볼티모어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2년짜리 계약서를 내밀었다.

2012년 윈터미팅, 다니엘스 GM의 짤막한 코멘트

2012년 12월 첫째주. 윈터 미팅이 열리는 테네시주 내쉬빌에 우리 팬들의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KBO 출신으로는 처음 미국 진출을 노리는 투수와 다저스의 협상 테이블도 함께 마련됐기 때문이다. 물론 클리블랜드를 떠나는 추신수의 위치 추적기에도 신호가 켜졌다. R. A. 디키, 잭 그레인키 같은 슈퍼스타의 이름도 들먹여졌다.

빅 이슈들이 어지러운 와중이었다. 사람들이 별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짤막한 코멘트 하나가 발사됐다. 발신자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GM 존 다니엘스였다. “우린 이제 불펜 시장에서 철수하겠다. 멕시큐셔너(The Mexicutioner)를 얻었으니 충분하다.”

마블 코믹스의 엑시큐셔너(Executioner)는 마법이 깃든 양날 도끼를 들고 설치는 악당이다. 여기에 멕시코를 합성시킨 게 멕시큐셔너다. 바로 호아킴 소리아의 별명이다.

그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말은 나중에 한 사람의 일생, 심지어 메이저리그의 역사에도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건으로 연결된다. 불펜 시장의 철수는 곧 (FA) 우에하라와 재계약 포기를 의미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볼티모어를 거쳐 텍사스에서 2년을 보낸 그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셋업맨이었다. 하지만 자주 아팠다. 특히 2012년에는 DL을 들락거리며 36이닝 밖에 던지지 못했다(ERA 1.75). 이제 38세가 되는 약골에게 내년을 투자한다는 것은 코넬대에서 경제/경영학을 전공한 다니엘스의 선택이 될 수 없었다.

물론 당사자도 쿨하게 떠났다. “나는 더 강한 곳으로 가겠다.” 얼마 후 선택이 그걸 증명했다. 춥고, 거칠고, 드센 보스턴이었다.



신문 기사에 격노하다

대부분의 투수처럼 선발을 원했다. 그러나 나이 먹고 힘 떨어진 뒤 있어야 할 곳은 불펜이었다. 그나마 보스턴에서는 마무리로 원샷을 받았다. 나머지는 별 볼 일 없었다. 6회도 좋고, 7회도 좋았다. 인터폰에 불이 켜지면 나가야 했다.

2013년 WBC 때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일본 대표팀의 막내 뻘이었던 다나카 마사히로가 그런 상황이 됐다. 컨디션이 별로여서 불펜으로 가야 했다. 이를 두고 어느 (일본) 신문이 이런 제목을 붙였다. ‘다나카, 중간계투로 강등되다.’

그걸 본 우에하라는 불같이 화를 냈다. “강등이라니. 중간 계투가 왜, 뭐가 어때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리스펙트(존중)는 못해줄 망정….” 아마 자기도 해보니까 그 어려움을 절실히 깨달았나 보다. “미디어들은 별로 취급도 안하려고 하지. 막으면 당연한 거고, 얻어 터지면 그제서야 기사거리가 된다고 여기니까.”



불평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koji-uehara.net)를 개방했다. 하루 하루 일기 같은 얘기들이 적혀 있다. 경기 상황을 직접 복기하는 일도 많다. 물론 팬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프기 전인 올 6월 어느 날 올린 글, 제목은 ‘파드레스전’이다.

“이번에도 등판 간격이 띄엄띄엄이다. 그런 중에도 결과를 내기 않으면 안되는 입장…. 1점도 잃으면 안되는 경기였는데, 역시 아쉬움이 남는군.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리고는 타자 하나 하나에 대한 구체적인 승부의 결과까지 적혀있다.

첫 타자는 빠른 공으로 헛스윙 삼진.

두번째는 스플리터에 우중간 3루타.

세번째는 빠른 공에 2루 땅볼, 홈에 송구할 필요도 없는 실점.

컨디션은 괜찮았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올해는 패스트볼이 좀 나아진듯 싶었는데, 스플리터가 좋지 않다. 더 낮게 던져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안된다. 엉망진창이다.

우에하라가 텍사스를 떠나며 남긴 말

30세가 훨씬 넘어 태평양을 건넜다.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그냥 마지막을 태우기 위해서라고 여겼다. 그렇게 4년간 조연에 불과했다.

하지만 5년째.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환하게 타올랐다. 월드시리즈 최종전을 세이브했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이후로도 식지 않았다. 매년 겨울이면 은퇴설이 돈다. 하지만 42세가 된 올해도 여전히 마운드에서 싸우고 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다. 등 떠밀리듯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했다. 데려간 팀도 한동안 미심쩍은 눈길이었다. 1+1 계약서였다. 아니다 싶으면 2년째는 버리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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