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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 국내
한국 축구에는 보다 많은 반전이 필요하다.
출처:다음스포츠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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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反轉) ‘일의 형세가 뒤바뀜’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반전을 꿈꾼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극적인 반전을 통해 형세가 뒤바뀌면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사람도 커다란 쾌감을 느낀다. 사실 최근 며칠 간 아주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의 반전을 지켜봤고 함께 환호했다. 직전 칼럼에서 소개한 독일 상파울리FC의 박이영은 지난 설 연휴 동안 동화같은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고 그 기세를 몰아 지난주 브라운슈바이크 전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부산 아이파크에서 방출 당한 후 겨우내 독립구단 TNT FC에서 묵묵히 땀 흘린 이정진도 K리그 클래식 강원FC에 테스트를 거쳐 입단했다. 마지막으로 어제 열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현대를 상대로 골을 기록한 김봉진은 역시 지난 해 상반기를 무소속 신분으로 역시 독립구단 TNT FC에서 활동했다.

보름 사이에 가까운 사람들의 ‘인생 반전’이 이어졌다. 반전은 항상 놀라운 것이지만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반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수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어려운 시기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스스로 상황을 반전 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들에게는 그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작지만 치열한 무대가 있었다.





# ‘청춘FC’ 가 아닌 ‘독립구단 TNT FC’

지난 2015년 방영된 프로그램 ‘청춘FC’의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단했던 열기만큼 관심 또한 빠르게 식어버렸다. 다양한 이유로 축구 선수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고 그 속에서 그들의 스토리를 프로그램에 감동적으로 녹여냈다. 그런데 방송이 끝나자 청춘FC도 끝났다. 어쩌면 축구계가 그들에게 원했던 스토리는 과거나 환경 이야기가 아닌 현재 필드에서의 모습이였을지도 모른다. 청춘FC가 한창 주목 받던 시기, 축구계에서 작디 작은 독립구단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현실판 청춘FC’, ‘축구계의 고양 원더스’, TNT FC 에 대한 이야기였다.

TNT FC 는 현재 국내 축구계에서 유일한 ‘재기 목적 독립구단’이다. 2000년 평범한 사회인 팀으로 출발했지만, 지난 2015년부터 프로에서 방출되거나 고교,대학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하지 못한 선수들이 모여 상위 리그 입단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팀이다. 그리고 나는 15년째 이 팀을 이끌고 있고 올해 임시적으로 단장이 되었다.

몇 년 전까지 단순히 축구 좀 잘하는 사회인 팀 이였지만 이제는 팀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TNT FC 가 ‘재기 목적 독립구단’으로 태세를 전환한지 3년 만에 총 20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이 팀을 거쳐 다시 국내외 프로 무대로 진출하며 반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선수가 팀에서 방출되면 당장 훈련할 장소가 없다. 축구는 팀 스포츠이기에 헬스장이나 개인 훈련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보통 자신의 출신교 축구부를 찾아가 훈련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제한적이다. 팀에서 방출되거나 졸업 후 팀을 찾지 못한 선수들이 곧바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살아남기 위해 한번 더 몸부림 친다. 하지만 훈련을 할 곳이 마땅치 않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TNT FC 가 이런 선수들이 몸부릴 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같은 상황에 처한 선수들이, 비슷한 목표를 두고, 낮은 곳에서 처음부터 절박하게 땀흘렸다.



# ‘같이’의 ‘가치’

초창기 시절 훈련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운동장 대관료가 없어 팀 훈련은 주3회만 진행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주위의 관심과 응원이 이어졌다. 한 병원은 수술을 비롯한 선수들의 부상 치료를 무상으로 후원했고 또 어떤 스포츠 클리닉은 선수들의 재활 치료 프로그램을 역시 무상으로 제공했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용품과 비타민 등의 후원도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황희찬, 정우영, 정인환, 이재성 등 대표급 선수들은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같이’하면 더욱 ‘가치’있다는 TNT FC 의 표어처럼, 비교적 짧은 시간에 TNT FC 의 훈련 환경은 매일 팀 훈련을 할 수 있을만큼 개선되었다.

절박하게 땀 흘릴 수 있는 기본적인 무대가 마련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배우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선수들이 첫날 팀에 온 당시의 기량만 유지한다면 다행일거라 생각했다. 이 선수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여름이나 겨울 이적 기간 때 상위 리그 팀에 입단하는 것이기에 최대한 이 팀을 빨리 떠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TNT FC 는 철저한 프로젝트 팀이였다. 축구는 팀 스포츠지만 개인 퍼포먼스 향상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 대학, 고교, K3팀들과 연습경기를 치렀지만 기본적인 틀만 설정할 뿐, 한 번도 세부적인 전술 훈련을 하지 않았다. 최대한 과거 소속팀에서 활동할 때와 비슷한 경기력을 유지해서 프로팀 입단 테스트 때 좋은 모습을 보이게 하는 것이 팀 운영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한계를 느꼈다. 팀은 운영하는 입장에서 선수들의 에너지를 절반 밖에 소진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 팀은 축구 본질적인 면에서 질적인 향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수소문 끝에 어렵게 현재 팀의 감독인 마리우 레모스를 만났다. 30대 초반의 포르투갈 출신 레모스 감독은 포르투갈 클럽과 태국의 강팀 무앙통 유나이티드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작년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며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했지만 성인 팀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고자 했다. 재정이 열악한 탓에 레모스 감독과 함께하는 세바스티안 누만 코치에게 제공 할 수 있는 급여는 없다. 하지만 이 두명의 이방인 코칭스텝은 매일 오전 목동 해누리 구장에서 진행되는 팀 훈련을 계획하고 직접 진행한다. 덕분에 선수들의 기량은 유지 차원을 넘어 발전하고 있다. 코칭스텝 뿐 만 아니라 현재 팀의 운영을 지원하는 모든 스텝들도 자원봉사 형식으로 팀 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 자신들이 선택한 가치를 믿는다.



# 작지만 하나의 순수한 모델

TNT FC 는 그간 작지만 하나의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갈 곳 없는 선수들이 모여, 발전에 목말라 있는 스텝들과 함께 아무 조건 없이 땀 흘렸다. TNT FC 활동을 통해 그 누구도 금전적 이득을 보지 않았고 누구도 혜택을 받지 않았다. 프로 무대로 재기에 성공한 선수들은 아무 조건 없이 새로운 팀으로 합류했다. TNT FC 는 독립구단이기에 이적료나 어떠한 서류 절차도 필요하지 않다. 팀에 있는 동안 열심히 훈련해서 프로팀 테스트 통과하며 재기하면 되는 것이다. 과거 재기한 몇몇 선수들은 프로팀 입단 후 받은 첫 월급이나 수당의 일부를 감사의 의미로 TNT FC에 기부했다. 그렇게 기부된 돈은 선수들이 생수 대신 스포츠 음료를 마시고, 훈련 후 수돗가 대신 근처 사우나에서 몸을 씻는데 사용되었다. 팀을 통해 재기에 성공한 선수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여름 홍콩 키치FC에 입단한 김봉진은 출국 전날 TNT FC 동료들에게 저녁 식사를 제공했고 최근 강원FC에 입단한 이정진은 정성스럽게 적은 손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이 점이 바로 이 팀의, 그리고 독립구단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 팀은 축구계에서 나를 타락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나는 TNT FC 라는 작은 독립구단이 대한민국 축구계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후원을 통해 돈을 쓰지만 그 누구도 금전적인 이득을 취할수 없다. 그것이 바로 ‘재기 목적 독립구단’의 존재 이유다. 이 팀의 모든 포커스는 선수에 맞춰져 있다. 그래야만 선수가 발전하여 재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 축구계에는 “재기 목적 독립 구단”이 필요하다.

해마다 수많은 선수들이 팀에서 방출되거나 졸업 후 상위 리그 진출에 실패한다. 이들 중에는 기량이 부족한 선수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게 된다면 더 잘 할 수 있는 선수도 분명 존재한다. 이들에게 적어도 한 번의 기회는 더 주어져야 한다. 선수에게도 좋지만 구단은 물론 나아가 한국 축구계 전체에 선한 순환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TNT FC를 운영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함께 훈련 할 수 있는 선수의 수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TNT FC 의 선수 구성은 일반적인 프로팀과 비슷한 30명 선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은 입단 문의를 받지만 기존 선수들 중 재기 또는 포기로 자리가 생겨야만 새롭게 충원 할 수 있다. 팀을 잃은 선수들 중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사연이 있고 재기 해야 할 이유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TNT FC 는 이들을 모두 수용 할 수 없다.

두 가지 아이디어가 있다.

첫 번째는 대한축구협회에서 키를 쥐고 각 권역별 ‘재기 목적 독립구단’을 운영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협회가 인정한 5~6개 정도의 독립구단이 운영된다면 흙속의 진주를 보다 많이 발굴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구단끼리 리그를 만들거나 프로축구연맹과 협의하여 독립구단을 R리그에 출전 시키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되지 않을까? 독립구단 선수들은 서류상 FA 상태이기에 R리그를 통해 좋은 경기력을 뽐낸다면 시즌 도중에라도 언제든 프로팀에서 테스트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K리그 팀 자체적으로 발굴 목적의 육성형 독립구단을 따로 운영하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에서 실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육성팀에서 일년에 한 명이라도 프로 계약을 할 수 있다면 팀 입장에서도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 TNT FC의 일년 예산은 대략 4,000만원 이다. 예산의 60% 는 훈련장 대관 비용으로 사용된다. 인건비와 숙소생활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4,000만원이면 보통 프로팀 후보급 선수 한 명의 연봉이다. 만약 프로팀에서 육성 독립구단을 운영한다면 위와 비슷한 예산으로 진행이 가능하다. 프로팀 소유의 훈련장이 있다면 운동장 대관비를 절감 할 수 있고 선수들과는 계약 관계가 아니기에 인건비나 숙소 비용 역시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코칭스텝에 대한 인건비가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팀에서 파트 타임으로 고용하거나 선수들에게 소정의 월 회비를 받아 운영 할 수 있다. 프로팀은 기본적인 훈련 환경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프로 입단을 위해 땀 흘리는 선수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연간 한 명의 선수라도 프로 계약에 성공한다면 확실한 검증없이 선발한 애매한 신인보다 더 잘 하지 않을까?



# 바닥을 경험하면 단단해진다.

협회 차원이든 프로팀 차원이든 앞으로 독립구단이 몇 개 더 생긴다는 가정 하에, 프로에서 방출되거나 취업에 실패한 선수들은 지금 TNT FC를 찾는것처럼 독립 구단으로 이동 할 것이다. 물론 K3리그가 있지만 프로 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은 군 대체복무 목적이 아니라면 바로 K3리그 행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 중간 단계가 독립구단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학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하여 첫 시즌을 보내면 24살이 된다. 프로 입단 후 1~3년 후에 방출되는 선수들의 수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20대 중반의 나이가 가장 애매하다. 예를 들어 26세에 프로에서 방출되어 1년 만에 재기한다면 군복무를 늦추고 선수 생활에 조금 더 집중하겠지만 재기를 위해 독립구단에서 활동하는 기간이 2년 정도 된다면 더 이상 군 입대를 미루기 어렵다.

독립구단 운영 3년 차가 되다보니 마이너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내 생각에 20대 중반의 선수가 재기를 위해 현실적으로 최대한 투자 할 수 있는 시간은 2년이다. 2년 동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면 K3리그에서 군 대체 복무를 하거나 현역병으로 입대하거나 축구를 그만두는게 현실적인 선택일 것이다. 물론 5년간의 공백을 극복하고 TNT FC를 통해 다시 태국 프로 리그에 입단한 호승욱 같은 경우도 있지만 그런 케이스는 앞으로 다시 나오기 매우 어렵다.

팀 단장으로서 항상 선수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재기를 위해 미친놈처럼 절박하게 노력하되, 기간을 정해 놓고 땀 흘려라.”

TNT FC를 통해 재기한 선수들은 분명 남다른 노력을 쏟아냈다. 기간을 정해놓고 구제적인 목표를 세웠으며 하루 24시간 동안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축구와 연관 시켰다. 그 시간동안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여기에 약간의 행운이 추가되어 그들은 프로 선수가 되었다.

같은 목표를 설정하여 다같이 뛰지만, 프로 무대로 재기하는 선수보다 그렇지 못한 선수다 훨씬 많다. 그리고 프로에 가는 것도 어렵지만 가서 살아남는 것은 더욱 어렵다. 어떻게 보면 진짜 싸움은 프로에 가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TNT FC가 이런 독립구단이 하나의 희망고문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간을 정해두고 최선을 다하되, 프로 선수의 목표를 이루면 당연히 좋겠지만, 만약 프로 선수가 되지 못했더라도 어떤 목표를 두고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본 경험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커다란 힘이 될 것 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경험한 사람은 대부분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그래서 멋에 신경 쓰는 철없는 신인보다는 낭떠러지를 경험한 중고 신인이 나은 경우도 있다. 일본 프로팀도 한국처럼 테스트를 통해 선수를 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한국은 보통 테스트로 선발한 선수들에게 1년 계약을 제시한다. 하지만 일본은 1년 6개월 또는 2년을 제시한다. 테스트로 많은 선수를 선발하진 않지만 테스트를 통해 선발했다는 것 자체가 선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테스트에 지원하는 선수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그 사연을 극복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처음 1년은 극복을 위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기대한 기량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테스트를 통해 선발한 선수들에게는 2년 계약을 권장해요.”

- 강영,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 스카우터

지난 칼럼에서는 한국 축구 디비전 시스템 구축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어떻게보면 이번 칼럼은 디비전 시스템 사이에 존재하는 양념 같은 이야기다. 때로는 주류보다 비주류, 메이저보다는 마이너의 이야기가 더 재밌다. 덜 복잡하고 소소한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재기 목적의 독립구단이 많아지면 좋겠다. 현재 한국 축구 시스템에서 놓치기 쉬운, 어찌보면 놓칠 수밖에 없는 선수들을 다시 한번 시야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느낀 점을 바탕으로 현실적으로 한번쯤 생각해 볼수 있는 아이디어로 칼럼을 적었다. 독립구단이 많아지면 반전 역시 많아질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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