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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축구가 20년 후에도 '변방'일까봐 겁난다.
- 출처:다음스포츠|20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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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6일, 전북이 알아인을 꺾고 10년 만에 아시아 챔피언이 되는 순간, 내 마음은 FIFA 클럽월드컵이 열리는 일본으로 향했다.
‘그래, 일단 가보자!’
결심을 하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북의 첫 경기를 시작으로 결승전까지 여유있게 보고 싶었지만 두 번의 주말을 일본에서 보냈다간 나는 어쩌면 이번 시즌 더 이상 프리미어리그 해설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집의 비밀번호가 바뀔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전북과 클럽 아메리카의 6강 전, 아니면 레알 마드리드가 기다리고 있는 준결승 전, 또는 가장 안전한 선택인 결승전. 마음은 준결승을 외쳤지만 머리는 결승전을 향하고 있던 찰나, 클럽 월드컵을 독점 중계하는 스포티비 채민준 캐스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형, 다음주 일정입니다. 11일 오후 4시, 전북-클럽 아메리카 해설 해주셔야 해요. 그리고 15일 레알 마드리드랑 하는 준결승도요.’
고민은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됬다. 애시당초 나에게 일정에 대한 선택권은 없었던 것 같다. 곧바로 J리그 구단에서 일하는 친구를 통해 결승전 티켓을 구했다. 그리고 어느 때 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북과 클럽 아메리카의 경기 해설을 준비했다. 월드컵, K리그, UEFA 챔스와 유로파리그, ACL, 프리미어리그 등 그동안 다양한 경기를 해설했지만 FIFA 클럽 월드컵은 처음이였다. 무엇보다 전북이 아시아를 대표하여 세계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기에 4년 전 울산이 클럽 월드컵에 나섰을 때처럼 기대감이 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왕중왕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고교 시절, 지역별로 열리는 4번의 ‘MBC배 고교대회’의 우승, 준우승팀들이 모여 가을에 치르는 ‘MBC 고교 왕중왕전’ 때문 일지도 모른다. 내가 뛰던 서울체고는 이 대회에 유독 강했다. 고려대 코치 시절 우승 타이틀이 가장 탐났던 대회도 ‘고연 정기전’이 아닌 ‘U리그 왕중왕전’이였고 현재 맡고 있는 독립구단인 TNT FC의 사회인 카테고리 대회 중 가장 집중하여 우승한 대회도 ‘클럽축구 왕중왕전’이였다.
FIFA 클럽 월드컵은 여섯 개 대륙의 챔피언이 출전하는 전 세계 클럽 축구의 ‘왕중왕전’이다. 지난 2000년, 공식적인 첫 대회를 시작으로 상금 확대 등을 통해 FIFA는 해마다 대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대회에 임하는 유럽과 남미 챔피언들의 자세도 과거보다 훨씬 진지해졌다. 분명한건 클럽 월드컵은 이벤트 대회가 아닌 FIFA 주관 공식 토너먼트라는 것이다.
#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와 소개팅 한 날을 기억하십니까?
K리그 팀은 그동안 네 차례 클럽 월드컵에 출전했다. 2006년 국제 무대가 아직 낯설던 전북, 2009년 역대 최고 성적인 3위를 기록한 포항, 2010년 최초로 유럽 챔피언을 상대한 성남, 그리고 기대보다 무기력했던 2012년의 울산까지. 2009년 대회 3~4위 전에서 포항이 멕시코 아틀란테에게 승부차기로 승리한 것을 제외하면 그동안 K리그 팀은 유럽이나 남미, 혹은 북중미 팀을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대진표의 영향으로 아시아 팀이 준결승에 오른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그 어떤 아시아팀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심지어 6강에서도 지난 해 광저우가 클럽 아메리카에 2-1로 역전승을 거둔 것이 6강에서 아시아팀이 북중미팀에게 거둔 역사상 첫 번째 승리였다.
과거에 비해 아시아 축구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유럽과 남미의 기준에서 아시아는 여전히 변방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일 양국이 거둔 성과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경쟁 할 수 있는 힌트를 제시했다. 2002년 한국 월드컵 대표팀은 혁명 그 자체였다.
‘한국 축구는 기술은 우수하나 체력이 약하다.’
당시 히딩크 감독의 이 발언은 한국 축구계가 갖고 있던 개념을 송두리 채 흔들어 놓았다.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선후배를 구분하지 않고 서로를 호칭했고 스포츠 과학이 접목된 파워 트레이닝과 회복의 개념이 훈련에 도입됬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 축구의 핵심 트렌드였던 ‘멀티 포지션’과 ‘조직적 압박’을 장점으로 접목시켜 한국 대표팀을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팀으로 변모시켰다. 국가대표팀은 자연스럽게 해당 국가의 트렌드 리더가 된다. 대표팀에서 새롭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나 훈련법 또는 경기 전략이 나타나면 그 나라의 프로팀들도 그 흐름을 따라 간다. 그리고 프로팀들에게 그 흐름이 접목되면 프로 산하 유스팀, 대학교팀, 학원축구팀에 이어 유소년 클럽팀과 일반 동호회까지 영향력이 이어진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 축구가 세계 레벨과 첫 소개팅을 한 자리였다. 첫 소개팅을 통해 공통적인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서로에 대한 호감도 생겼다. 하지만 1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소개팅에 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한 쪽이 너무 빨리 커버린 이유도 있지만, 반대로 다른 한 쪽의 성장이 예상보다 더뎠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2002년 한국 대표팀의 장점은 ‘멀티 포지션’과 ‘조직적 압박’이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나타난 트렌드인 ‘조직적 압박’은 유로 2000 과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이르러 신체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공에 대한 재능만으로 경기를 좌우한 ‘10번’ 포지션의 ‘플레이 메이커’들을 현대 축구에서 본격적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한국 대표팀은 당시 현대 축구 트렌드의 중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선수들은 다양한 위치에서 잘 뛰고 폭발적이였으며 우수한 조직력으로 공간을 차지했다. 2002년 월드컵을 지금 다시 돌려봐도 한국 대표팀의 경기력은 상위 8개팀에 충분히 뽑힐만하다.
세계 축구의 트렌드는 2년 마다 바뀐다고 한다. 사실 ‘바뀐다’라는 단어보다는 ‘추가된다’가 더 적합 할 것 같다. 2002년 월드컵 이후 2년, 그리스가 깜짝 우승한 유로 2004 만 봐도 대다수 참가국의 ‘멀티 포지션’과 ‘조직적 압박’ 능력이 우수했다. 2002년 때, 한국 대표팀의 장점은 이제 다른 모든 팀들도 할 줄 아는 기본적인 요소가 된 것이다. 2004 유로부터 2014 브라질 월드컵, 최근에 열린 2016 유로와 코파 아메리카 까지. 세계 축구의 트렌드에 계속해서 여러 요소들이 추가 될 때, 우리는 지금도 과거 2002년에 우리가 잘했던 것을 그 때 만큼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 이길 확률이 적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겨주길 바랬다.
이번 클럽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의 몇몇 축구 관계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표면적으로는 아시아를 그리고 전북을 존중했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봤자 너희는 아시아야.“
기분이 나쁘지만 인정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성공을 경험한 한국과 일본은 2002년의 후광으로 지난 10년을 버텼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일 양국이 나란히 16강에 진출하며 스스로를 착각하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남아공 월드컵 이후, 세계와 아시아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아시아의 발전 속도보다 유럽 축구의 발전 속도가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유럽 축구계에서 유행한 것이 있으면 1~2년 후에 한국 축구계에서 이슈가 되는 경우를 종종 느낄수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피지컬 코치다. 최근 국내 축구계에 피지컬 코치 지망자들의 숫자가 증가했다. 감독이나 필드 코치와 달리 선수 경력이 없거나 짧더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프로 단계까지 진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대한축구협회도 올 하반기에 최초로 피지컬 코치 라이센스 제도를 도입하여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유럽 축구계는 몇 년전 이런 흐름을 미리 겪었다. 프로 선수 경력은 없지만 박사급 지식과 이론으로 무장된 피지컬 코치들이 스포츠 과학의 발달과 함께 팀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피지컬 코치의 이론은 선수단 관리와 훈련 방법을 변화시켰지만 현장과 필드에서 단련된 감독과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론과 현장 경험, 상황에 따라 정답은 다를 것이다. 피지컬 코치의 역할은 갈수록 비중이 커지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결정권자는 언제나 감독이라는 것이다. 재밌는 사실이 있다. 최근에는 감독 쪽에 무게감이 더 실리는 추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독들이 피지컬 코칭에 필요한 영양학, 생리학 등 세부적 분야를 공부하여 학위까지 취득하는 전문성을 갖추기 때문이다.
K리그 시즌은 끝났지만 몇몇 감독들은 파주에서 매우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현재 파주NFC에서 P급 지도가 강습회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K리그에서 이슈가 된 P급은 지도자 라이센스의 마지막 단계이다. P급의 이전 단계인 A급, B급에서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코칭 외에 영양학, 생리학을 물론 심리학에 대한 기본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본격적인 제도를 구축한 대한축구협회의 지도자 강습회는 단연 아시아(AFC)내에서 최상급으로 인정 받는다.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수준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유럽은 이미 50년 전, 코칭 라이센스의 커리큘럼을 만들었고 개선해왔다. 현대 축구는 갈수록 감독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물론 축구를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축구만 잘 알아서도 곤란하다.
유럽과 남미는 ‘주류’, 아시아는 ‘비주류’다. 그들은 ‘중심’, 우리는 ‘변방’이다.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현실을 부정하면 발전 할 수 없다. 나는 이번 클럽 월드컵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한 전북을 응원했다. 어찌되었던 아시아, 그리고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대등하게 경쟁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작년 클럽 월드컵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한 중국의 광저우가 호비뉴, 파울리뉴, 엘케손, 굴라트를 모두 출전시키는 ‘얍삽이’를 선보일 때도 광저우의 선전을 기원했다. 유럽은 어쩔수 없더라도 북중미 혹은 남미 축구계가 아시아를 대하는 시선에 한 방의 카운터 펀치를 날려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경기 내용상 압도적으로 밀리더라도 행운의 한 골로 승리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0-5 로 패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클럽 아메리카 전의 결과가 너무도 아쉽다. 3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그 날 전북의 전반전은 훌륭했다. 4년 전 몬테레이에게 90분 내내 끌려다닌 울산과는 달랐다. 경기는 잘했는데 패했기에 마음이 더욱 복잡하다. 홍정남은 권순태의 공백을 잘 메꿨고 ‘최투지’ 최철순은 킨테로를 꽁꽁 묶으며 오랜만에 세계 무대에서 ‘한국형 맨투맨’의 위력을 선보였다. 정혁은 중원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했고 김보경과 이재성은 멕시코와 남미 전현직 국가대표가 다수 포함된 클럽 아메리카 선수들보다 우수한 개인 기량을 발휘했다.
전반전 45분, 그리고 1-0의 리드는 함께 중계한 김병지 해설위원, 김명정 캐스터까지 흥분하게 했다. 하지만 후반전 아주 작은 상황, 사소한 부분에서 결국 차이가 발생했다. 축구에서는 상대에게 주지 않아도 될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허용 했을 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불길한 예감은 이 경기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과연 이 경기의 결과를 실력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임종은의 빗맞은 걷어내기가 코너킥이 되어 첫 실점의 기점이 된 것, 로메로의 슈팅이 최철순과 김신욱 다리에 두 차례 굴절되며 골대로 들어간 것, 마지막 김보경의 회심의 슈팅은 그럼?이런 부분까지 과연 사람의 능력으로 조율 할 수 있을까? 전북은 준비한 것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경기했지만 불운했기 때문에 결국 패한것인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함께한 중계진은 꽤 오랜 시간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 ‘변방’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싫어서 노력하고 있지만 솔직히 겁난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많이 발전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2002년 월드컵 전인 1986년 멕시코부터 1998년 프랑스까지 네 번의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매번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기에 기술은 부족하기에 체력에서 그 차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산소 섭취 능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 훈련 때 마스크도 써보고 문전 순발력 향상을 위해 설악산 계속에서 ‘급류 차기 특훈’도 해봤지만 모두 부질 없었다. 조별리그 1차전은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정보 부족으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90분을 소비했고, 2차전에서는 조금 감을 잡았지만 세계와의 차이를 실감했다. 1무1패, 혹은 2패로 맞이한 마지막 조별리그 3차전의 공통적인 표어는 ‘유종의 미’였다. 멕시코,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에서 네 번의 월드컵을 치르는 12년 동안 한국 대표팀은 항상 조별리그 3차전에서 몸을 날리고 피까지 흘리며 ‘투혼’을 발휘하며 4년 후 를 기약했다.
불과 30여 년 전만해도 월드컵은 한국축구와 거리가 먼 얘기였고 15년 전 만 하더라도 중고등학교 대회는 자갈이 가득한 맨땅에서 열리는 경우도 많았다. 학원 축구 또한 리그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결승전에 진출한 팀의 경우 보름 동안 10 경기를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모여 우리 축구의 역사가 되었기에 지금의 한국 축구가 존재한다.
한국 축구는 지금 격동기에 놓여있고 항상 격동기에는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승부 조작, 심판 문제 등 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유럽, 남미에서도 과거에 발생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생길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최선의 대처를 통해 문제가 재발하지 않거나 발생할 빈도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그 나라의 축구 자체가 발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 산업의 미래인 이삼십대들이 잘 성장하여 20년 후, 이들이 한국 축구의 중심이 되었을 때 한국 축구의 발전된 모습과 향상된 국제적 위상을 기대하며 희망적인 예상을 하는 의견이 있다. 과거보다 좋은 환경에서 선수들이 육성되고,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대표급 선수들이 증가했으며 국내 축구인들이 예전보다 세계 무대에서 원활하게 교류 할 수 있기에 분명 우리는 앞으로 훨씬 나아질 것이고 나아져야 한다.
행정, 지도자, 미디어 등 한국 축구 산업의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젊고 꿈 많은 자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나 역시 내가 축구 속에서 맡고 있는 분야에서 묵묵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편의 먹먹함은 가시지 않는다. 가끔 유럽이나 남미의 축구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생겨 이야기를 나눠보면 내 자신이 한 없이 작아 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축구에서 그들의 디테일, 그리고 내가 모르는 분야를 축구에 접목 시켜 얘기하는데 그것이 나에게 또다른 차원의 축구 이야기로 들릴 때. ..
우리 세대는 꿈이 있다. 20년 후 에는 우리도 그 중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이라는 꿈. 언젠가는 한국이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K리그에 세계적인 선수가 활약하며 유럽 빅리그에 한국인 코칭스텝과 구단 직원이 활동하는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올 해 몇 차례 벽을 느꼈는데, 클럽 월드컵에서 잘하고도 결국 패한 전북의 결과가 내 마음을 더욱 먹먹하게 만든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앞으로 20~30년 죽도록 노력해도 여전히 우린 변방 일 수 있겠구나...’
단순히 기분 탓 이였으면 좋겠다. 한국, 아시아 축구가 발전하는 것보다 세계 축구의 발전 속도는 훨씬 빠르다. 그것을 극복하여 우리 세대가 중심이 될 미래에 한국 축구가 변방을 벗어난다면 너무도 행복하겠지만, 우리가 안되면 그 다음 세대, 안되면 또 그 다음 세대가 있으니 각자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해내는 것이 결국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다음 세대들은 무조건 지금 세대들보다 능력있고 똑똑할 테니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한국 축구가 세계 중심에 서는 그 날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