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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이 꼭 알아야 할 이병규의 진짜 야구
출처:이데일리|201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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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선언한 ‘적토마’ 이병규의 응원가는 매우 단순하다. “엘~지의 이병규, 엘~지의 이병규.” 이렇게 두 번 외치는 것이 전부다. 그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선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LG 트윈스였고 LG 트윈스는 곧 이병규였다.

단순히 대단한 성적을 올려서만은 아니다. 이병규 보다 많은 안타를 친 선수들도 있고, 이병규에겐 없는 우승 반지를 몇개씩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이병규는 미스터 LG로서 팀의 상징적인 선수로 남게 됐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나선 안된다. 누군가 이병규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한다.

한 LG 코치는 “후배들이 이병규의 뒷모습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미스터 LG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서 어떻게 이병규가 팀의 상징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코치가 말한 이병규는 과연 어떤 선수였을까. 그는 보여지는 것 외에 많은 것을 가진 선수라고 평가했다.

우선 이병규는 야구를 사랑했다. 그래서 늘 이기고 싶어 했다.

LG가 한참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을 때, 겨울 동안 자율 훈련을 가장 많이 한 선수가 바로 이병규였다. 게으른 천재의 이미지가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야구를 대했다.

텅 빈 훈련장에서 홀로 훈련하다 훈련에 나오지 않는 후배들에 대해 아쉬움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선수들이 지는 억울함을 모르는 것 같다. 그걸 안다면 지금 이렇게 편하게 지낼 수 없다”며 안타까워 했었다.

그는 어디서건 배울 수 있음을 감사하는 선수였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이병규는 1군 보다 2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시간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아니었다면 2군 경험을 하짐 못했을 것이다. 2군에서는 어떤 훈련을 하고 어떤 대우를 받는지 배울 수 있었다. 일본이라는 새로운 무대에 도전해 봤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교훈이었다”고 말했다.

차별이나 불공평함을 투덜거릴 수도 있었다. 이병규는 달랐다. 어디에서건 야구에 대해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야구를 할 수 있다면 위치를 가리지 않았다. 언제든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이병규는 욕심이 많은 선수이기도 했다. 매 경기를 나가고 싶어했고 매 타석에서 안타를 노렸다. 그만큼 매 순간에 집중했다.

하지만 몸을 사리지는 않았다. 이병규는 다리로 들어가는 벤트 레그 슬라이딩에 약하다. 한창 때 도루는 모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마무리 했다. 부상이 잦았다. 손가락에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이병규의 입에서 먼저 “오늘 못 나갈 것 같다”는 말은 좀 처럼 나오지 않았다.

팬들이 사랑하는 전설적인 선수 중 상대 투수에 따라 부상 정도가 달라지는 선수가 있었다. 그는 팬들에겐 영웅이었지만 후배들에겐 개인 성적이 더 중요했던 선수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병규는 늘 더 좋은 투수의 볼을 치고 싶어했다. 그 끊임없는 야구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이 지금의 이병규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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