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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은 뻔해지고 슈틸리케는 뻔뻔해지고 있다
- 출처:뉴스1|20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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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과의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차전을 하루 앞둔 14일 공식 기자회견에 선수들을 대표해 참석했던 구자철은 "내일은 ‘단두대 매치‘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고 전투적으로 임해야한다. 특히 일대일 싸움에서 지면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중요한 순간 기댈 곳은 또 정신무장이라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상황이 별 수 없었다. 단기 처방이 필요했다.
노련하고 영리한 구자철은 마냥 이 악무는 독기만 강조한 것이 아니다. 그는 흥미로운 자세를 요구했는데, ‘뻔뻔함‘이었다. 구자철은 "이럴 때 일수록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90분 동안 실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실수를 좀 해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90분을 잘 관리해야한다"면서 선수들의 기운을 북돋았다.
부담스러운 일전을 앞두고 경직될 수 있는 후배들을 위한 현명한 덕담이었다. 결과적으로 실수를 극복해내고 거둔 승리가 나왔다. 수비진의 호흡불일치로 인해 먼저 실점했던 한국은, 포기하지 않는 집중력과 교체선수들의 맹활약 덕분에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마침표는 ‘당당한 뻔뻔함‘을 외친 구자철이 찍었다. 후반 40분, 김신욱의 헤딩패스를 받은 구자철의 오른발 슈팅이 슈틸리케호를 구했다.
이겼고, 덕분에 고비를 넘겼다. 최종예선 일정의 반환점을 돌던 경기에서 승리한 한국(3승1무1패)은 우즈벡(3승2패)을 3위로 끌어내리고 A조 2위로 뛰어올랐다. 시리아와 0-0으로 비긴 1위 이란(3승2무)과의 승점은 1점차 밖에 나지 않는다. 여러모로 결과가 좋다. 그런데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이대로는 불안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찝찝함을 받치고 있는 공통분모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겼는데도 비난만 하면 어떻게 하는가"라며 또 볼멘소리를 하겠으나 들어야할 지적들이 많다.
슈틸리케 감독은 70%를 웃돌았다고 점유율을 자랑하며 ‘마무리가 세련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이게 좋은 축구‘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슈팅조차 구사하지 못하며 공만 가지고 있는 것은 허울 좋은 공 돌리기에 불과하다. 자신은 바르셀로나나 바이에른 뮌헨을 꿈꾸겠으나 현실은 펀치 한 번 날리지 못한 채 빙글빙글 도는 아웃복서 느낌이다.
우즈벡전에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준비한 카드는 2개 정도였다. 짧게 말하면, 기성용의 패스와 손흥민의 돌파다. 그러나 기성용의 탄성을 자아내던 중장거리 패스는 좋은 위치서 잘 받아내는 이들이 없어 빛이 바랬고,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데 마음만 앞서던 손흥민의 드리블은 번번이 막혔다. 달리 생각하면 우즈벡이 잘 대응한 것이다.
아무리 기막힌 패스를 뿌려줘도 받아주는 이가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이정협, 지동원, 손흥민은 경기 내내 좋은 곳에서 패스를 받지 못했다. 사실 이정협과 지동원은 지워졌던 경기다. 손흥민 역시 제압 당했다. 홀로 싸우려는 이를 협력수비로 달려드니 뚫을 재간이 없었다. 개인에게 의존하는 전술은 사실 ‘부탁해‘와 다름없으니 이것도 감독의 복안이라 그러기에는 머쓱하나, 다른 공격은 찾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슈틸리케호의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싶은 것은 ‘뻔함‘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수준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주축 선수들이 잘해주면 이기고 해줘야할 선수들이 막히면 고전하는 경기들이 반복되고 있다. 적어도 최종예선 5경기는 이런 각박한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젠가부터 역할도 규정되고 있다. 주전과 비주전, 주연과 조연이 이미 정해진 느낌인데, 문제는 그것을 감독이 선 긋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김신욱이 대표적이다. 김신욱이 플랜B 일수는 있다. 그것은 감독의 철학문제다. 보다 중요한 것은 ‘김신욱 투입=롱볼‘이라는 공식이 슈틸리케 감독의 머리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머리를‘ 아주 잘 쓸 수 있는 축복 받은 하드웨어의 소유자를 ‘머리만‘ 쓸 수 있는 공격수로 제한하고 있다.
전북현대의 최강희 감독은 김신욱을 선발로도 넣었다가 후반 조커로 넣었다가를 섞어 활용하고 있다. 상대로서는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전북을 만나는 팀의 감독은 시작부터 김신욱을 염두에 둔 마크맨을 써야할지 고민이다. 출전 수비수 역시 처음부터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지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한다. 김신욱은 발 기술도 제법인 선수다. 공중만 쳐다보고 있는데 지면에 붙어서 싸움을 걸어오면 당황스럽다.
요컨대 선수 1명만 가지고도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김신욱을 플랜A로 기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키 큰 공격수를 활용하는 방법은 후반 막판 공중볼‘이라는 감독의 뻔한 생각이 답답할 뿐이다.
캐나다전은 왜 했는지도 의문이다. 조합과 전술을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 마치 주전급들 체력을 세이브하기 위한 징검다리가 된 듯한 인상이다. 부임 초창기 슈틸리케 감독의 가장 큰 미덕이었던 ‘누구나 뛸 수 있어‘는 옛말이 된 모양새다. 나가는 선수들은 정해진 듯하다. 긴장감 떨어진 팀은 실력도 줄어든다.
한국이 최종예선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은 상대 수준이 높아진 탓도 있으나 내부 경쟁력이 떨어진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분명 지도자의 책임이 크다. 그럴 것이라 예상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니 상대가 대응하기 수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A조 2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이 악물고 뻔뻔하게 싸워주는 선수들 개개인의 공이 크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운을 기대하긴 어렵다.
남은 최종예선 5경기는 한국과 한 번씩 겨뤄본 이들과의 리턴매치다. 그때도 뻔하면 답 없다. 우리가 거둔 3승 중 단 1번도 편안한 승리, 산뜻한 승리는 없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여전히 ‘괜찮다‘고 감독만 뻔뻔하게 받아들인다면 진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