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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기성용이 전하는 '나의 축구 이야기 1'
출처:다음스포츠|2016-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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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0경기나 선발출전 했어요? 생각보다 많이 뛰었네요."

100이라는 숫자에 우리는 큰 의미를 두곤 합니다. 축구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FIFA에서 공인하는 A매치를 100회 이상 출전한 선수들은 센츄리 클럽에 가입되었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리그에서 100경기를 선발 출전하는 것은 국가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큰 의미를 부여할만한 업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선수가 세계 최고의 리그중에 하나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100경기를 선발 출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축구의 레전드라 칭송받고 있는 박지성 선수(현재은퇴)만이 가지고 있던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동안 108경기에 선발출전하였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밤(현지시간) 또 다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100번째 선발 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가 바로 국가대표 캡틴이자 스완지시티의 미드필더 기성용 선수입니다.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팬들의 야유도 들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부담과 고통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견뎌냈습니다. 팬들의 응원도 받았습니다.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부담도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며 더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달려왔기에 이룰 수 있었던 프리미어리그 100경기 선발출전의 기록과 더불어 국가대표 캡틴으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그의 축구와 삶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유년시절의 기성용

그는 어린시절 축구감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권유로 초등학교 6학년때인 2001년 호주 존폴칼리지로 유학길에 오릅니다. 그 곳에서 축구를 병행하게 됩니다. 그 때 유학덕분에 현재 잉글랜드에서 언어적인 문제를 전혀 겪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2001년도에 유학을 떠나서 2005년도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든 결정이었는데 그 결정이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영어가 어느 정도 준비되었기에 영국에서 적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곳에 김판근 전 국가대표 선수가 운영하던 축구교실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축구를 병행하였어요." 라며 그 때를 회상합니다.

“사실 초등학교시절에는 운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어릴때부터 유난히 운전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장래희망에 택시기사를 적은 적이 있어요. 정말 그 분들이 부러웠어요. 운전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 그래서인지 지금도 운전은 힘든 줄 몰라요. 만약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운전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라며 어릴적 자신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그 꿈이 아버지의 영향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린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떠난 유학의 길이 돌아보면 오늘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절친 이청용과의 인연 그리고 쌍용의 승천

그의 노력의 결과였는지 2004년부터 U17대표팀에서 뛰게됩니다. “그 당시에 저는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어요.제 동기중에는 (이)청용이와 (고)요한이가 잘했어요. 저는 주로 벤치를 지켰어요.”라며 겸손히 학창시절의 자신을 이야기 합니다. 연령대 대표팀에 뽑혔는데도 자신은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고분명하게 말합니다.



2005년도에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금호 고등학교로 진학하였고, 다시금 한국에서 축구 선수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5년도 12월에 U19대표팀 훈련에 참여하게 됩니다. “특출난 선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계속해서 선배들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중앙 수비자원이 부족해서 감독님이 제게 중앙수비를 지시하셨어요. 그렇게 포지션을 변경해서 뛰었어요.”라며 그 당시를 기억합니다.

또한 그 어린나이에 당시 이장수 감독이 지휘하고 있던 FC서울과 프로선수로서 계약을 하게 됩니다. “계약한 후에 바로 부상이 찾아왔어요. 2006년 1월부터 부상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프로선수가 되었기에 열심히 재활하면서 운동을 하였어요. 명절 휴가때에도 고향으로 가지 않고 혼자 숙소에 남아서 음식 시켜먹으며 밤 늦게까지 운동했었어요. 그렇다고 바로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그 때 열심히 하였는데…”라며 당시의 상황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청용이는 1군에서 등록되어 있었어요. 친구지만 정말 잘하는 선수였어요. 그리고 그 해에 1군 데뷔무대를 가졌어요. 벤치에서 보면서 친구가 선배들이랑 뛰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하였어요. 시기와 질투보다는 친구가 멋지다는 생각을 했어요.”라며 절친 이청용선수의 성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합니다. 친구가 너무 멋졌다고 합니다.



친구를 생각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지난 카타르와의 월드컵예선 경기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의 하나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난 카타르전에서 선제 중거리슛을 넣고 아내에게 하트세리머니를 했어요. 그리고 나서 벤치로 뛰어가서 이청용 선수를 안았어요. 왜 그랬어요?’하니까 “친구 청용이가 벤치에 있었어요. 기쁨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리고 ‘네 몫까지 열심히 할께 걱정마’라는 마음이 있었어요.”라며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금의 우정을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말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느끼고 눈빛으로 알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우정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15일 우즈베키스탄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어느덧 긴 시간의 우정이 국가대표의 기둥들이자 선배들로 자리잡았습니다. 중국, 시리아, 카타르 그리고 이란전에서 만족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담이 더 큰 듯 하였습니다. 이청용 선수도 좋은 결과를 얻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성용 선수는 “주장으로서 많이 부담이 되요. 그런데 제가 떨거나 부담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 보이면 안되잖아요. 동생들이 그라운드안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그래서 좋은 결과 얻어야죠.”라며 그 경기의 승리를 위해 주장으로서 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합니다. 의리의 쌍용이 꼭 승리를 견인하는 모습으로 우정이 더욱 빛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위기 그리고 기회

2006년도에는 부상으로 시작하여 단 한번도 1군 경기를 뛰지 못하였습니다. 그 해 12월에 그는 축구를 하면서 가장 마음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2006년 시즌이 끝난 후에 스페인에서 청소년대표팀 전지훈련이 있었어요. 전지훈련동안 친선경기를 하였는데 경기력이 최악이었어요. 지금이야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스스로 너무 충격이 커서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진짜 힘들었어요. ”라며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처음 맞이한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축구를 그만 두고 싶을 정도로...



그런 그에게 전화위복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2007년 1월에 귀네슈감독이 부임하고 FC서울팀이 터키로 전지훈련을 갔어요. 청소년대표팀 전지훈련을 마치고 터키에서 바로 합류했어요. 당시 우리팀에서 저를 포함해 4명이 대표팀에 갔는데, 저만 2군출신이고 나머지 세명은 1군 출신이었어요. 저는 자신감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갔어요. 그런데 제가 전지 훈련 도중에 청용이와 함께 레귤러팀에서 연습경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나중에 안 이야기인데 저는 2군이라 제외될 뻔 했는데 감독님이 저도 부르라고 해서 합류하게 된 거였어요.”라며 포기하려 했던 순간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에게도 자격지심이 들던 시기가 있었네요. 그렇게 시작된 2007년은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발판 삼아 비상하다

만약 힘들다고 그 순간에 포기했다면 프리미어리그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요? 프리미어리그 100경기 선발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까요? 또한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구심점이자 캡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자 분명한 기회는 온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하며 준비하자.’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국가대표 캡틴인 그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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