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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 축구'가 아니라 한국 축구가 문제다
- 출처:베스트일레븐|201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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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전 내내 갑갑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분통이 터졌다. 경기 중 장애인이 된 듯한 시리아 골키퍼를 비롯해 상대 선수들의 시간 지연 행위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진짜 원인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됐다. ‘침대 축구‘가 아니라, 십 수년째 당하는 이 패턴에 해법을 내세우지 못하는 한국 축구가 진짜 원인이었다.
지난 6일 밤 9시 말레이시아 세렘반 파로이에 위치한 투안쿠 압둘 라흐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A조 2차전서, 한국이 시리아와 0-0으로 비겼다. 한국은 전반 시작부터 후반 종료 때까지 시리아를 몰아붙였지만 효율적으로 경기를 푸는 데 실패하면서 득점 없는 무승부를 거뒀다. 이로써 최종 예선 두 경기를 마친 한국은 1승 1무 승점 4점(3득점 2실점)을 획득했다. 패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모두 이겼어야 할 상대기에 아쉬움이 남는 2연전이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A대표팀)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골키퍼를 비롯한 시리아 선수들의 경기 태도에 불같이 화냈다고 한다. AFC(아시아축구연맹)가 침대 축구를 시전하는 팀들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해할 수 없다. FIFA 랭킹 105위.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내전과 IS(이슬람국가)의 횡포 때문에 자국 내에서 도저히 훈련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그래서 경기 개최 5일 전까지 경기를 어디에서 치를지도 결정하지 못한 시리아가 한국전에 임하는 전략은 불 보듯 뻔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아이만 하킴 시리아 감독은 정상적으로 승부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이걸 그대로 믿었다면 너무 순진했거나 설령 침대 축구 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지나치게 오만했거나 둘 중 하나다.
애당초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정상적 승부를 기대하는 건 사치였다. 최근 십여 년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 국가의 전력이 급성장하면서, 중동 국가들이 내세운 방편은 고의적 시간 지연 행위인 침대 축구였다. 단순히 상대의 태도를 도덕적 관점에서 비난하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어떻게 이 고의적 시간 지연 행위를 극복할 수 있을지를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해 준비하는 게 훨씬 현명한 처사였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9월 A매치 2연전을 치른 슈틸리케호의 준비 과정은 엉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슈틸리케호는 20명의 엔트리를 구성하는 데 그쳤다. 특히 공격진을 짜는 데 있어서는 의문 부호가 달릴 수밖에 없는 결정을 여러 차례 내렸다.
중국전에서 반짝했다고는 하나 아직 본래 경기력을 되찾았다고 할 수 없는 지동원을 공격의 핵으로 삼았고, 한국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공격 자원인 손흥민을 FIFA A매치 차출 규정을 근거로 충분히 붙잡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6 히우 지 자네이루 올림픽 차출 때 맺은 신사 협정 때문인지 중간에 돌려보냈다. 마카오에서 경기가 열리는지 여부를 떠나 반드시 팀에 불러들여야 했던 석현준까지 소속 팀 적응과 다소 긴 이동 경로를 이유로 통 크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리아전 직전 한국의 공격진은 근래 들어 최악이라고 해도 될 만치 전력이 누수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충분히 A대표팀 공격진에 보탬이 될 만한 자원들에게는 전혀 시선을 두지 않았다. 이를테면 정조국·박주영·양동현·김신욱·이동국 등과 같은 K리그 클래식에서 현재 좋은 경기력을 자랑하는 공격수들은 슈틸리케 감독이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아예 논외로 쳤던 선수들이다. 오로지 20명의 스쿼드로만 승부를 보려고 했고,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과신한 듯한데, 결과론적으로 엄청난 오산이었다.
시리아전에서, 경기 흐름이 꼬이는데도 다른 공격 패턴을 가져올 자원이 벤치에 없으니 하염없이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미 한국이 2선 공격진의 포지션 체인징과 짧은 패스를 통한 빌드업에 단련된 시리아 수비진을 상대로 선수의 면면만 살짝 바뀔 뿐 똑같은 식의 공격을 전개하니 통하는 게 이상하다. 과거에는 침대 축구에 휘말리면 장신 스트라이커를 활용한 단순한 패턴의 공격을 통해 득점 기회를 엿볼 수 있었는데, 시리아전에서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세트 피스의 정교함은 근래 들어 최악의 수준이었다. 상대가 코너킥 한 번을 못할 때 열 차례 이상 시도하고도 정작 골문 앞에서 찬스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리아 선수들이 벤치에 교체 사인을 보낼 정도로 골키퍼의 상태가 정말 좋지 못했음에도, 그 골문을 향해 한 골을 넣지 못하는 최악의 골 결정력은 그저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슈틸리케호의 공격 빌드업은 ① 후방에서 볼을 빼앗아 ② 출발점인 기성용을 거쳐 ③ 구자철의 패스나 손흥민의 돌파를 통해 찬스를 만든 후 ④ 문전에서 해결한다는 비교적 간단한 패턴이다. 선수 면면이 경기 도중 바뀌거나 종종 기성용의 위치에 변화를 주는 변칙 전술을 쓰긴 해도, 기본적으로 볼이 흐르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2선 공격진의 개인 기량과 조직적 플레이는 이미 완숙된 수준에 이르렀고, 이미 여러 차례 A매치에서 훌륭한 성적을 낸 만큼 슈틸리케 감독은 이에 대해 큰 신뢰를 보내고 있다.
문제는 비슷한 패턴만을 반복하니 밀집 수비와 시간 지연 행위로 버티는 상대 팀은 시간이 흐를수록 편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종 예선 정도 되는 레벨에서 이처럼 강한 저항에 부딪혔을 때 단순하면서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플랜 B 빌드업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통하면 이기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기거나 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자연히 침대 축구로 대응하는 상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편해진다. 이는 현재 슈틸리케호 공격 전술의 한계다.
진짜 강팀은 이처럼 노골적 수비를 펼치는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힘과 전력을 갖췄다. 조 최약체를 상대로, 그것도 경기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팀에 침대 축구 좀 했다고 볼멘소리를 내뱉기엔 한국이 아시아 축구판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너무도 높다. 적어도 한국 정도 되는 팀이라면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북한을 상대해 승리했던 브라질, 2014 브라질 월드컵서 이란을 끝내 무너뜨렸던 아르헨티나와 같은 면모를 아시아 무대에서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월드컵 본선에 나설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할 수 있다.
오는 10월 벌어질 A매치 2연전에서, 한국은 카타르·이란을 상대로 최종 예선 3~4라운드를 치른다. 시리아보다 더욱 독한 침대 축구를 구사하는 데다 실력은 더 뛰어난 상대들이다. 게다가 이란전은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는 원정 경기로 치러야 한다. 아마도 이번 시리아전보다 더 험난할 것이다. 슈틸리케호는 그 해법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