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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축구선수' 김진수를 만나다
출처:다음스포츠|20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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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유럽축구의 새로운 시즌을 알리는 프리미어리그가 개막을 하였고,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청용 선수가 개막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8강에서 탈락하면서 아쉬움을 남겨주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유럽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은 시즌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이번 시즌이 여느 시즌보다 중요하다며 구슬땀을 흘리는 한 선수를 만났습니다. 바로 분데스리가 호펜하임 1899에서 뛰고 있는 김진수 선수입니다. 그와 동행하면서 그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늘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잘 몰랐던 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진수는 이런 친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진수 - 나는 이렇게 축구를 시작했다

“용인 포곡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축구를 시작했어요.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어요. 혹시 그런 집 아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이 있고, 그 부엌에 있는 문을 열면 작은 방이 있는….. 화장실은 밖에 있구요. 처음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런 집에서 동생과 부모님과 함께 살았어요. 네 식구가 한 방에서 생활했어요. 어려서부터 아주 부자는 아니더라도 가족이 조금은 여유있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 2002년 월드컵을 보게 되었고, 성공을 꿈꾸었어요. 그래서 그 해에 축구를 시작하게 된거에요. 속물이라 할지 몰라도 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축구를 시작하게 된거에요. ”라며 자신이 축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서장훈선수가 어느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농구를 즐기면서 하지 않았다. 항상 진지하게 최선을다해서 했다.’라는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저도 그래요. 사람들은 축구를 즐기라고 하잖아요. 전 그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축구하는 것은 즐겁지만 취미가 아니라 일이기 때문에  저는 즐기면서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축구는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삶의 현장이에요. 내 직업이기에 성공한 직업이 되기 위해서 악착같이 했어요. 지금까지도…… 그렇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에요. 즐기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요. 무엇인가를 이루어 갈 수 있기에…”라며 자신이 어린시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그는 축구를 즐기면서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부담을 가지고 한다고 합니다. 가난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가난이 불편하기에 그 때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연령별 대표팀에서 손흥민을 만나다.

그는 학창시절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축구를 시작하고 1년이 지나지 않아서 연령대 대표가 되었어요. 운이 좋아서인지  2003년부터 계속해서 연령대 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이 후 원삼 중학교로 진학했어요. 흥민이는 중학교 2학년때 대표팀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요.”라며 축구를 시작한 후 태극마크를 달게 된 이야기와 손흥민 선수와의 인연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올림픽 축구 8강전이 끝난 뒤 김진수 선수와 전화통화를 하였습니다. 안부인사를 나누다가 이번 올림픽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마디로 ‘아쉬움’이었습니다. ‘절친 흥민이랑 통화는 했니?’라고 묻자 “경기전에는 했는데 끝난 후에는 아직이요. 할 말은 많은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흥민이가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을 저는 알아요. 그래도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거니까 비난도 칭찬도 감수해야지요. 많이 느꼈을테고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일거에요. 그래도 잘 이겨내야죠.” 그러면서 “흥민아 울지마. 팬들을 위해서, 후배들을 위해서 그리고 너를 위해서라도 잘 극복해서 그라운드에서 멋진 모습 보여줘. 화이팅!” 이라는 말을 전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합니다. 뭐라고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도 10년째 이어져 온 우정이기에 지금은 친구를 위로합니다. 그 때의 인연이 이런 친구관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로 축구선수 김진수로 성장하다

“그리고 신갈고  2학년때인 2009년 나이지리아에서 열린17세 월드컵에서 8강진출을 하였습니다. 부상으로 출전을 못한 임창우를 대신해서 주장완장을 차고 출전하였는데 이 당시 주축멤버들이 전북의 이종호, 서울의 윤일록 그리고 손흥민이에요.”라고 하는데 그 때의 동기들이 지금 한국축구의 기둥들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셨어요. 그 당시 훈련비가 비쌌음에도 어려운 형편에서 다 해주셨어요. 그래서 다른데 신경쓸 수가 없었어요. 더 열심히 운동할 수 밖에는… 하루 빨리 프로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는 한시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땀과 고생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학창시절내내 프로선수만을 꿈꾸며 지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에 진학해야 했습니다. 고3 시절 부상으로 인해 8개월동안 재활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 그를 경희대에서는 장학생으로 선발하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수업도 열심히 들었다네요. 새로운 공부가 흥미롭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F를 받으면 장학금이 취소되기에……



빨리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그에게 축구를 하면서 첫번째 좌절과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빨리 프로가 되고 싶어서 대학교 1학년때 프로에 진출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떤 팀도 저를 원하지 않더라구요. 저는 축구를 시작한 이래로 소위 엘리트코스를 밟아와서 인지 한 번도 내가 안될거라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 때 처음으로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어요.축구한 것이 후회될 정도였으니까요.”라며 그 때를 생각하며 쓴 미소를 짓네요.



“축구인생에서 2번의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 때가 그 중 한 번 이었어요. 그 때 아버지께서 1년만 축구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이제까지 부모님의 수고와 고생을 알았기에 아버지 말씀을 따라서 팀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눈을 돌렸고, 일본 작은도시의 팀인 니카타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돈을 떠나서 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고, 1년 안에 모든 걸 보여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운 좋게도 그 해에 좋은 활약을 보이게 된거구요.특히 센다이와의 리그33라운드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는데 만약 그 경기에서 졌으면 강등당해야 했어요. 그 경기 후에 구단에서 바로 재계약 이야기가 나왔어요.”라며 웃습니다. 또 그는 운이라고 합니다. 분명 땀과 눈물 그리고 간절함의 결실이었음에도…… 



그 결과 그는 좋은 조건의 재계약과 더불어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의 부름을 받고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게 됩니다. 2013년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호주와의 경기에서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밟게 된 것입니다.



힘든 가정형편때문에 축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축구에 매달렸습니다. 책임감과 부담때문에 한 번도 즐기면서 축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 받았고, 자신이 속한 팀마다 우승을 하는데 주역이었습니다. 소위 엘리트 코스라는 연령대 대표를 모두 거쳤습니다. 그렇게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 자신을 인정해주는 팀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까지 노력했던 모든 땀과 눈물 그리고 꿈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믿고 있는 부모님때문에……

자신을 받아주는 팀이 없어서 스스로 팀을 찾아 떠나야 했던 낯선 땅, 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그 어떤 시간보다도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그 순간이 있었기에 그는 위기를 더 큰 기회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일본에서의 활약으로 그는 유럽무대까지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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