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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실점 대기록, 백신 맞을 기회 없앴다
- 출처:베스트 일레븐|201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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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기록이 달성된 날이다. 굳이 흠잡을 필요가 없는 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가 주는 대단함에 비해 그 과정은 깔끔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 훌륭한 기록지와 함께 더 치열한 무대로 나아가게 된 만큼, 흥겨운 풍악 소리 속에서도 불안 요소는 분명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완벽에 가까운 ‘건강한 진단표’를 받느라 정작 ‘백신’을 통해 제대로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백신이 필요 없을 만큼 빈틈이 없는 수비진은 있을 수 없다.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 24일 저녁 8시 안산 와~ 스타디움에서 킥오프된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G조 7차전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A대표팀)이 레바논에 1-0으로 승리했다. 한국은 후반 추가 시간 이정협이 터뜨린 결승골에 힘입어 레바논을 물리쳤다..
이로써 2차 예선 일곱 경기(8차 쿠웨이트전은 사실상 취소)를 모두 마친 한국은 7전 전승, 승점 21점(24득점 0실점)이란 놀라운 기록을 작성하며 최종 예선 진출을 자축했다. 2차 예선에 참가한 모든 아시아 국가를 통틀어 유일하게 ‘무실점 전승’을 달성하는 값진 이정표도 세웠다.
긴 기간을 무실점으로 이어 온 안정감은 분명 칭찬할 일이 더 많다. 그러나 무실점과 관련된 대기록을 모두 걷어 낸 채 레바논전 한 경기만을 놓고 본다면, 분명 불안했던 요소들이 눈에 띈다.
이날 한국 수비가 보인 가장 큰 불안 요소는 전진 풀백이 내준 공간과 시간이었다. 한국의 양 풀백을 맡은 김진수와 장현수는 경기 내내 상당히 높이 올라가 있었다. 특히 일찌감치 리드를 잡지 못해 수비형 미드필더가 앞 선과 간격을 더욱 좁힌 뒤, 양 풀백은 두 센터백만을 남겨 둔 채 더 전진했다. 여기까지는 오히려 효율적이고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한 지능적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그 뒤 공간을 위한 커버가 문제였다. 정작 수비로 전환되었을 때 대처가 늦고 미흡했다.
레바논의 마툭 하산과 알리 사드 하산은 적은 숫자로 공격했음에도 측면에 비어 있는 넓은 공간을 마음껏 활용해 오랜 기간 공을 소유할 수 있었다. 두 센터백 만으로 터치라인에 바짝 붙어 들어오는 측면 미드필더까지 단번에 채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는 경기 내내 분위기를 잘 타던 한국의 경기 운영 전체에 악영향을 가져왔고, 레바논이 틈틈이 우리 진영 깊숙이까지 들어올 수 있는 좋지 않은 흐름으로 이어졌다.
특히 전반 4분 김진수의 롱 킥 실수나 전반 34분 한국영과 장현수의 패스 미스로, 순식간에 공격과 수비가 3대3 상황이 되는 아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레바논은 한국 수비가 제대로 진열을 갖추지 못한 ‘시간’을 활용했고, 경기 전부터 제대로 준비했던 것으로 보이는 역습을 보다 효율적으로 시도할 수 있었다.
불안 요소는 이뿐 아니었다. 의욕적이고 전투적으로 전방 압박을 시도했던 아튀 아바스·마투크·알리 사드·알레할위 힐랄 등에게 막혀 백 패스가 잦았다. 레바논 공격수들은 골키퍼 김진현 바로 앞까지도 압박을 가해 왔다. 결과적으론 큰 문제가 없었으나, 실수가 나올 가능성도 다분했을 만큼 긴박한 순간들이 종종 나왔다.
수비에서 미드필더 진영으로 나가는 패스가 너무도 쉽게 커트당해 공격권을 내준 경우도, 수비 뒤 공간으로 돌아 들어가는 제인 타한을 막지 못해 골키퍼와 1대1 찬스를 내준 상황도 있었다. 모두 상대의 마무리가 날카롭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우리 수비진 스스로가 빈틈을 내주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사실 상대의 슈팅 자체를 두 개밖에 허용하지 않은 경기였다. 그리고 무실점이다. 그렇지만 상대가 레바논이었기에, 우리의 문제점이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도 이른 득점 혹은 절실한 득점을 위해 양 풀백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가는 경우가 생겼을 때, 이날과 같은 뒤 공간의 불안함과 늦은 수비 커버가 나온다면 이 경기처럼 무실점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후반 12분 타한에게 내준 골키퍼와 1대1 위기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득점으로 성공했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게 없을 장면이었다.
상대가 레바논보다 조금만 더 높은 수준의 팀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실제로 오는 4월 12일 조 추첨을 시작으로 들어갈 최종 예선선, 분명 레바논보다 수준 높은 팀들과 한 조에 묶이게 된다. 어쩌면 이날 결과를 통해 얻은 전 경기 무실점이 미리 백신을 처방받지 못한 채 건강하다는 착각에 빠지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
백신을 얻기 위해 일부러 아플 필요는 없다. 무실점 대기록이 깨지기를 바랐던 게 아니다. 다만 지금의 수비진에 분명히 존재하는 불안 요소는 다시금 되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