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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떠나는 황선홍, 마지막까지 전설이었다
- 출처:오마이뉴스|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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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의 전설 ‘황선홍 감독이 포항과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했다. 선수에 이어 지도자로서도 포항과 K리그에 큰 족적을 남긴, 전설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퇴장이었다.
포항은 29일 오후 포항스틸야드서 열린 라이벌 FC서울과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최종전(38라운드) 홈경기서 후반 추가시간 강상우의 극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2-1로 이겼다. 황 감독의 고별전이기도 했던 이날 경기에서 포항은 승리를 선사하며 명장의 떠나는 길을 배웅했다.
포항은 승점 66으로 2위 수원(승점 67)에 밀려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직행권 획득에는 아쉽게 실패했으나 3위로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을 확보하며 위안을 삼았다. 황 감독이 친정팀을 위하여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FA컵 우승팀 서울은 승점 62로 4위를 차지했다.
황 감독은 포항에 많은 유산을 남겼다. 현역 시절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전성기를 보낸 구단이 바로 포항이었다. 당시 외국인 공격수 라데와 보여준 환상의 호흡은 지금도 K리그 역대 최고의 공격진 중 하나로 인구에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짧았던 현역 시절의 인연보다 지도자로서 남긴 인상은 더 강렬했다. 황 감독은 2002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전남 코치와 부산 감독을 거쳐 2010년 겨울 친정팀 포항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포항은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중동으로 떠난 이후 2010시즌을 8승9무11패로 9위라는 저조한 성적표에 그치며 침체기를 보내고 있었다.
황 감독도 포항 지휘봉을 잡을 당시에는 지도자로서 아직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젊은 감독에 불과했다. 부산에서 3년간 경험을 쌓았지만 성적은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과연 포항을 성공적으로 재건할 수 있을지 의구심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황감독과 포항의 만남은 서로에게 최상의 선택이 됐다. 서로가 함께한 5년 동안 감독 황 선홍도, 포항도 모두 미생에서 완생으로 성장해갔다.
포항은 황 감독 부임 첫해 17승 8무 5패로 2위에 오르며 강팀의 면모를 회복했고 2012시즌에도 23승 8무 13패로 3위에 올랐다. 이 해 포항은 4년 만에 FA컵 우승을 달성하며 황 감독은 포항에서의 첫 우승이자 자신의 지도자 커리어를 통틀어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정점이었던 2013년은 황 감독과 포항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시즌이었다. 포항은 그 해 K리그와 FA컵 2연패에 성공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2013년 12월 1일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린 K리그 최종전에서는 홈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던 울산의 침대축구를 상대로, 종료 종료 20초전 수비수 김원일의 기적같은 결승골이 터지면서 K리그 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포항의 우승이 더욱 극적이었던 것은 당시 단 1명의 외국인 선수도 없는 순수 국내 선수들만으로 2관왕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는 데 있었다. 모기업의 재정 위축으로 외부 전력을 수혈할 수 없었던 황 감독은 유스시스템을 활용한 내부 육성만으로 끈끈한 팀을 구축해내며 포항의 전성기를 되살렸다. 이로 인하여 황 감독은 ‘쇄국축구‘ ‘황선대원군‘같은 애칭을 얻기도 했다.
영광 뒤에는 부침의 시간도 있었다. 우승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투자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포항은 전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즌 도중에 이명주같은 주축 선수들을 떠나보내야 하기도 했다. 결국 2014시즌 4위에 그치며 간발의 차이로 서울에 ACL 티켓을 내주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올시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팀을 다시 2년 만에 ACL 무대로 복귀시키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데 성공했다.
황 감독은 종종 포항 역사의 또다른 명장으로 꼽히는 브라질 출신 파리아스 감독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따바레즈같은 쟁쟁한 외국인 선수들이 건재했고 김기동, 황지수, 황진성 등 걸출한 선수들이 많았던 파리아스 감독 시절과 달리, 황 감독은 한정된 지원 속에서 항상 차선책을 찾아야 했고, 젊은 선수들을 키워내면서 당장의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하는 어려움을 극복했다.
공격축구라는 면에서는 일맥상통하지만 파리아스 감독이 토너먼트같은 단기전에 특화된 스타일이었다면, 황 감독은 점유율과 공수밸런스를 바탕으로 정규리그같은 장기레이스에서 시간을 두고 뒷심을 발휘하는 스타일이었다. 파리아스 감독이 포항에서 K리그와 ACL 등 모든 우승컵을 다 들어올린 데 비하여 황 감독은 전력의 한계로 ACL에서는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꾸준히 젊은 선수들을 발굴하면서 장기적으로 팀의 체질을 개선하고 성적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은 파리아스 감독을 능가하는 황 감독만의 업적이었다. 포항은 2012년 신인왕 고무열을 시작으로, 2013년 이명주, 2014년 김승대, 2015년 손준호 등 끊임없이 새로운 유망주들을 키워내며 K리그판 화수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들 중 성인 국가대표까지 올라간 선수들도 적지 않다.
황 감독은 전술적으로도 끊임없는 실험과 진화를 거듭했다. 포항에서 5년간 한번도 대형 공격수나 유능한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지 못했지만, 포항은 제로톱과 역습 축구 등 유연한 전술운영을 기반으로 매시즌 팀 득점 상위권에 오르며 물러서지 않는 공격축구를 구사했다. 황 감독이 팀을 이끌었던 5년간 포항은 한번도 리그 4위권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
부산 시절을 포함하면 8년간 K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명장으로 쉼없이 달려온 황 감독은 올시즌을 끝으로 잠시 휴식을 선언했다. 차두리, 이천수 등 2002 한일월드컵 세대의 마지막 주역들이 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가운데, 황 감독마저 잠시 K리그를 떠나게 되어 아쉬워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황 감독은 떠나는 순간마저도 전설의 품격에 걸맞게 K리그에 아름다운 전례를 남겼다. 그 어떤 스타나 명장이라도 떠나는 순간마저 박수를 받기란 쉽지 않다. 성적부진이나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박수치는 순간에 떠나기에 황 감독을 보내는 여운은 더욱 짙어진다.
돌이켜보면 현역시절에도 누구보다 다사다난한 선수 생활을 보냈던 황 감독이지만 결국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하여 가장 행복한 해피엔딩을 장식한 바 있다. 팬들도 지금의 작별 역시 영원한 이별이 아니고, 언젠가는 다시 한국축구와 K리그를 위하여 돌아올 황 감독인 것을 알기에 아쉽지만 웃으며 보낼 수 있다.
황 감독은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거치고 다시 축구계로 돌아올 것이다. 최근까지도 해외 구단에서 러브콜이 공공연하게 거론될 만큼 황감 독의 주가는 여전히 높다. 이미 K리그에서 많은 것을 이뤄낸 황감독이기에 더 큰 도전을 구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한국도 선수들만이 아니라 지도자들 역시 더 큰 야망을 꿈꿔볼 필요가 있다. 해외무대에서도 지도자로서 인정받거나, 혹은 차기 국가대표 감독으로 돌아오는 황 감독의 모습을 기대해보는 것도 그리 먼 미래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