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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서 못다 핀’ 차두리, K리그서 만개하다
- 출처:인터풋볼|201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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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의 유럽도전기는 결과적으로 봤을 때 실패였다. 그러나 K리그로 복귀한 차두리는 유럽서 못다 핀 꽃을 만개했고, 그의 축구는 성공으로 끝났다.
차두리는 7일 오후 3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36라운드,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슈퍼매치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차두리는 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차두리는 지난 전북과의 경기에서 후반 막판 아쉬운 경고를 받았고, 경고누적 3회로 이날 경기 출전 자격이 없었다. 더욱이 지난 주말 팀을 FA컵 우승에 올려놓고 깜짝 은퇴선언을 한 바 있다.
차두리의 축구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혜성처럼 데뷔해, 한국축구을 이끌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으나 기대만큼의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다. 자신이 태어난 독일에서, 그것도 아버지의 영광이 깃든 레버쿠젠에 입단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고, 빌레빌트, 프랑크푸르트 등의 임대생활을 전전했다. 이어 자신이 가장 꿈꾸던 2006 독일월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다.
독일월드컵은 차두리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였다. 월드컵을 선수가 아닌 해설자의 입장에서 참여한 차두리는 이후 마인츠로 이적했고, 수비수로 전향이란 모험을 선택했다. 한 때 프랑크푸르트의 주전 오른쪽 풀백으로 잠시 자리를 잡았지만 부상의 불운이 겹쳤고, 소속팀의 강등과 함께 코블렌츠로 이적했다.
그의 축구는 2010년부터 빛을 발휘했다. 2009년 프랑부르크로 이적해 2년 만에 1부로 복귀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로 선발돼 한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차두리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 폭발적인 스피드로 ‘차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를 통해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으로 이적했다.
셀틱에서 무난한 두 시즌을 보냈지만 차두리는 독일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2012년 여름, 차두리는 2부에서 승격한 뒤셀도르프와 계약하며 다시 한 번 도전했지만, 개인사정으로 인해 시즌 도중 계약을 해지했다. 그리고 그의 험난했던 유럽도전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결국 그의 최종 행선지는 K리그, 서울이었다. K리그행은 그의 축구인생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새 출발을 알린 차두리는 최용수 감독의 절대적 믿음 아래 K리그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했다. 2013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준우승, 2014 FA컵 준우승에 이어 지난 주말 서울을 FA컵 정상에 올려놓았다.
차두리는 FA컵 우승 확정 이후 깜짝 은퇴선언을 했다. 그리그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그는 “K리그에 돌아온 것이 선수 생활에서 제일 잘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유럽과 국내리그, 대표팀까지 모두 경험한 것은 나의 큰 자산이다. 앞으로 무얼 할진 결정되진 않았지만, 그동안 배운 것들을 한국축구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을 남겼다.
결과만 봤을 때 차두리의 유럽도전은 실패였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K리그행은 그의 축구에서 최고의 선택이었고, K리그에서의 활약 속에 그의 축구는 성공으로 끝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