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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 국내
토요일 4시, 닥공이 예능 이길때
출처:서호정 칼럼|201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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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리그가 직면한 고민 중 하나는 TV중계다. 프로스포츠에서 기존 팬들을 만족시키며 더 많은 팬들에게 확대되는 중요한 수단이다. 중계권료와 중계를 통한 스폰서 노출 등은 재원 확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최근 간판스타 이동국이 SNS 상에서 했던 푸념처럼 K리그는 TV에서 중계를 보기가 어렵다. 과거에는 제작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최근엔 프로축구연맹과 각 구단이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을 하며 그림의 확보는 가능해졌다. 다음 단계의 문제가 더 어려웠다. 이것을 어떻게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할 수 있느냐, 즉 유통 채널의 확보가 진정한 과제가 됐다.

K리그는 일주일에 많아야 팀 당 2경기다. 그 중에서도 주말 경기의 비중이 높다. 그 1경기를 챙기지 못할 경우 타격이 크다. 이미 주말에는 KBO리그와 같은 스포츠라는 동일 카테고리의 경쟁자가 주요 스포츠채널을 선점하고 있다. 상업적 가치에서 현재 프로야구는 프로축구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하는 한 형평성을 고려해달라는 호소만으로는 프로야구 중계를 넘어서기 쉽지 않다. 그래서 K리그는 우회전략을 찾고 있다. 우선 KBO리그를 중계하지 않는 채널을 확보하는 것, 다음은 KBO리그 중계의 동일 시간대를 피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종목을 동시에 내보낼 수 있는 포탈사이트를 통하는 것 등이다. 올 시즌에는 지상파인 KBS1 채널을 통해 예년보다 훨씬 많은 K리그 중계가 이뤄지고 있다. 전 경기 중계 제작이 이뤄지며 포탈사이트를 통해 현장에 가지 않아도 경기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우회전략에도 문제는 있다. 방송국이 원하는 시간대에 경기 시간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K리그가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게 최적의 관전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판단한 시간이 중계를 전파로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겹치지 않는 게 문제다. 특히 최근 그 문제가 불거지는 중이다. 5월 들어 부쩍 올라간 한낮 기온으로 인해 오후 4시 이후가 최적의 시간대지만 주말 오후 4시는 방송가에서 얘기하는 프라임 시간대에 돌입하는 즈음이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은 이 시간부터 예능들이 집중 배치되며 시청률 전쟁을 시작한다. 시청률 수치는 광고 단가로 직결되기 때문에 이 시간에 K리그 중계를 배정하려는 방송국은 거의 없다. 결국 K리그는 오후 4시로 예정됐던 경기 시간을 중계로 인해 앞당기는 상황이 비일비재해졌다. 오후 3시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오후 2시로 옮겨야 하는 경우도 많다. 중계로 인해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 지역방송국이 오후 3시에 경기를 중계하다 정규방송 문제로 후반 30분경 중계를 끊어 팬들의 불만을 산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 정반대의 상황이 나왔다. 전북현대는 23일 오후 2시로 예정됐던 인천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 시작 시간을 오후 4시로 바꿨다. 사유는 전주MBC 중계 때문이다. 생중계도 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경기 시간을 더 늦추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전주MBC는 전주를 비롯해 전북 지역을 커버하는 지역방송이지만 엄연히 지상파다. 전북의 홈 경기가 생중계되는 토요일 4시부터 6시 사이는 MBC가 <쇼! 음악중심>과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젊은 시청자를 중심으로 많은 이슈가 되는 예능프로그램이 방영되어야 하는 시간대다. 그것을 비집고 K리그 중계가 배정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김현찬 전주MBC 제작부장이 직접 그 이유를 밝혔다. 우선은 명분이다. 김현찬 부장은 “기본적으로 지역방송이기 때문에 지역밀착이라는 목표가 있는데 전북의 홈 경기 중계가 그에 부합했다. 전북이 최근 수년간 좋은 성적을 거두며 지역사회의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파급력이 있다. 그런 면에서 중계를 할 명분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업성을 외면할 수 없는 채널인 만큼 명분 만으로 모든 게 가능하진 않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 이유였다. 김현찬 부장은 전북 홈 경기 중계가 상업적 가치, 즉 시청률 면에서도 전혀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우리로서는 토요일 오후 5시부터는 광고 단가가 올라간다. 6시 20분에 시작되는 <무한도전>으로 피크를 찍는다. 절대 대의만으로는 오후 4시 생중계를 편성 쪽에 설득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 대전전 중계 때 나온 수치가 고무적이었다. 이전에 오후 2시에 중계했던 경기들이 4~5%의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대전 경기는 오후 3시에 하고도 9%가 넘는 시청률이 나왔다.(닐슨코리아 기준 전주지역 시청률 9.4%, 점유율 25%로 동일 시간대 1위) 대전전이 빅매치도 아니었는데 모두가 그 결과에 놀랐다. 오히려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 나들이를 마치고 온 가족들이 축구 중계에 관심을 보인다는 걸로 분석이 됐다. 보여지는 결과물이 있으니 편성도 설득이 가능해졌다.”

최근 전북을 향한 지역 내 관심은 고조되고 있다. 팬층이 늘어나면서 올 시즌 K리그 클래식과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치른 9차례의 홈 경기에 총 14만1,367명의 관중이 들어섰다. 평균 1만5,707명이다. 주말 열리는 K리그 클래식은 모두 1만명을 넘었다. 수원과의 홈 경기는 3만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섰다. 올 시즌 K리그 전체 경기를 대상으로 한 관중수에서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K리그 5경기 평균 관중은 1만9,540명으로 FC서울에 이은 2위다. 전년 대비 89.2%가 상승했다. 주중에 열리는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도 가장 관심이 저조했던 빈즈엉(베트남)전을 제외하면 모두 1만명을 넘어섰다. 고정 팬층이 탄탄하다는 얘기고 자연스럽게 지역 사회 파급력이 올라가고 있다.



이철근 전북 단장은 “이제 전북은 한번 보러 가자가 아니라 꼭 보러 가자고 해서 오는 팬들이 많다. 구단이 호소하지 않아도 알아서 녹색 유니폼을 입고 온다. 단기적으로 얻은 성과는 아니다. 꾸준히, 점진적으로 노력한 결과물이다”라며 최근 성과에 반가워 했다. 경기력이라는 프로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컨텐츠를 확보하면서 올라온 관심을 다양한 팬 서비스와 마케팅으로 엮어내며 결과물로 만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경기장을 찾는 충성도 높은 팬들에게 좋은 관전 환경을 제공하는 게 중요해졌다. 이철근 단장도 “중계를 통한 노출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 대한 배려도 중요하다. 5월에 들어서면 오후 2시 경기는 고역이다. 구단에서 썬캡을 나눠주고 해 봐도 햇빛이 비치는 E석 1층을 피해 2층으로 올라간다. 1만5천명이 오고도 텅 빈 거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게다가 전주와 주변 지역은 중소기업이 많아 토요일 근무자가 많다. 그분들이 퇴근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오려면 오후 3~4시가 적당하다. 그래서 전주MBC와 함께 서로가 잘 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다”며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고민을 털어놨다.

다행히 시청률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전주MBC도 전북 구단의 고민을 이해하면서 오후 4시 중계라는 결과물이 나왔다. 김현찬 부장은 “우리 입장에서도 이왕 중계를 할 거면 더 좋은 경기력과 더 많은 관중이 있는 게 훨씬 좋다. 중계하는 쪽도 관중이 더 차 있는 그림이 나올 때 반갑다. 서로가 윈-윈 한다는 생각으로 오후 4시 중계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주MBC는 올 시즌 중계차량을 새로 마련했다. 또 지미짚을 비롯한 많은 중계 카메라를 투입하는가 하면 플래쉬 인터뷰 같은 양질의 컨텐츠 등도 하프타임에 배치하며 고퀄리티 중계를 책임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얻는 성과는 없다. 우승 트로피는 많은 돈을 투자해 감독과 선수를 데려오면 가능할 지 모르지만 경기장에 평균 관중 5천명을 늘리는 것은 그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다. 구단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시간대에 중계 방송을 잡는 것도 같은 문제다. 각자가 이익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상호 이해가 이뤄져야 한다. 전북은 지난 10년 간 꾸준히 노력해 왔고 이제 많은 트로피와 언제든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경기력, 1만5천명이 훌쩍 넘는 평균 관중, 거기에 프라임 시간대의 경기 중계까지 확보하게 됐다.

이철근 단장은 “전북이 지난 5년 간 세차례 우승을 하고 계속 우승권에 머물며 양질의 경기력을 보여주니까 전라북도 전체의 자랑이 됐다. 이제는 지역사회가 자긍심을 갖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뭘 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젠 곳곳에서 호감을 갖고 도와주려고 한다. 이제 정말 축구도시가 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찬 부장도 “대한민국에서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전라북도가 내세울 수 있는 자존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계 중 계속 ‘전북현대, 전라북도의 자존심입니다’라는 캠페인을 계속 노출할 것이다”며 전북의 가치를 빛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전북은 다음 단계의 목표는 저변 확대다. 유소년 보급반을 전라북도 전체를 여러 섹터로 나눠 배치했다. 지도자를 확충해 전주뿐만 아니라 김제, 익산, 군산, 산업도시, 혁신도시에 배치하고 있다.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도 다져간다는 계획이다. 이철근 단장은 한여름에 오후 8시 경기를 하면서 생중계까지는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는 “한여름엔 늦을수록 팬들에겐 더 쾌적한 조건을 준다. 축구장을 꽉 채워서 한여름 밤의 축제를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많은 난제를 뚫어야 한다. 방송국은 주말 오후 4시 경기가 마지노선인데 그걸 한번 돌파하고 싶다. 대중교통과 같은 현실적 여건도 바꿔야 한다. 오후 9시 30분이면 대중교통이 끊기니까 우리 홈경기는 오후 7시가 마지노선이다. 전라북도와 전주시 행정 쪽에 계속 요청 중이다. 결국은 우리 하기에 달렸다. 더 많은 사람들을 경기장에 모으고 그들이 요구를 하면 따라올 수 밖에 없다”며 또 하나의 도전 목표를 설정했다.

중계가 늘어나야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질까,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져야 중계가 늘어날까? 이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처럼 답을 낼 수 없는 논제다. 분명한 것은 전북은 10년 간의 노력을 통해 드디어 껍질을 깨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전주와 전라북도에서는 예능보다 닥공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오후 4시 지상파 생중계’라는 상징적인 사건은 자신들의 가치를 드높여 지역사회의 관심과 협조를 끌어내며 드디어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하는 전북의 현재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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