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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L은 자랑스럽거나 부담스럽거나
- 출처:포포투|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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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축구에서 가장 빛나는 무대는 AFC챔피언스리그이다. 내노라는 강팀들이 자존심을 걸고 나선다. 성적은 둘째치고 출전 자체가 엘리트 신분을 상징한다. ACL은 영광이다. 물론 영광은 공짜가 아니지만.
8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수원삼성블루윙즈과 포항스틸러스의 K리그 클래식 개막전 취재였다. 2014시즌과 2015시즌의 시차는 사실 3개월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새 경기장 앞 좌회전 신호 체계가 바뀌어있었다. 꽤나 오래 기다린 끝에 겨우 신호를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은 짧고 세월은 빠르다.
경기 전 양 팀 감독과의 만남에는 많은 취재진이 모였다. 어림잡아 20여명이 서정원과 황선홍 감독을 둘러쌌다. 시즌 첫 경기였으니 당연하다. 얄궂게도 지난 시즌 최종전과 같은 매치업이었다. 그 경기에서 수원의 산토스는 득점왕을 차지했고 포항은 아시아行 티켓을 놓치고 말았다.
갈라진 운명처럼 수원과 포항은 시즌 출발부터 달랐다. 수원의 2015시즌은 이미 시작되었다. ACL 조별리그 2경기를 치렀다. 서정원 감독은 "우리가 주중에 체력을 썼으니 상대는 후반 막판을 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포항은 이날 경기가 마수걸이였다. 황선홍 감독은 "초반 25~30분 정도를 잘 넘겨야 한다"라며 실전 감각의 차이를 걱정했다.
킥오프부터 경기는 활기차게 움직였다. 홈 서포터즈의 열정을 등에 업은 수원이 먼저 치고 나갔다. 황선홍 감독의 우려가 경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라운드에서는 서정원 감독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주중 중국 원정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탓인지 수원의 수비 집중력이 떨어졌다.
전반 11분 페널티킥 허용 위기를 주심의 자비로 넘겼다. 심동운은 펄쩍 뛰었지만 김성호 주심은 이미 현장을 떠나 볼을 쫓아가고 있었다. 17분과 19분 연달아 수원은 문전에서 상대 선수를 노마크 상태로 내버려둬 헤딩슛을 허용했다. 굴절되고 빗맞아 다행히 실점 위기를 넘겼다. 행운이 수원을 감싸주었다.
그러나 전반 종료 직전 수원은 행운을 스스로 걷어찼다. 라이트백 오범석이 배슬기와 티격태격한 끝에 2연속 경고로 퇴장 당하고 말았다. 킥오프 직전 경기장 내에 쩌렁쩌렁 울렸던 "수원은 심판 판정을 존중합니다"라는 선언이 무색하게 수원 벤치가 격렬한 제스처로 항의했다. 걸어 나오는 오범석을 바라보며 그와 포항의 악연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레드카드의 위력은 컸다. 후반 들어 수원은 수세에 몰렸다. 포항의 신입 외국인 안드레 모리츠가 자유를 얻어 수원 진영에서 플레이메이킹을 해나갔다. 후반 21분 손준호와 일대일로 맞선 상황에서 노동건이 선방을 해냈다. 행운이 완전히 수원을 떠나진 않았을까? 아니었다. 6분 뒤 손준호의 페널티박스 외곽 슈팅이 시원하게 수원 골문을 갈랐다. 포항이 1-0으로 앞서갔다. 남은 시간 수원은 분발했지만 결국 그렇게 승부는 갈리고 말았다.
경기 후 서정원 감독은 경기를 망친 오범석의 행동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오범석은 자신의 SNS로 팬들에게 사과 메시지를 남겼다. 반대로 포항의 분위기는 좋았다. 황선홍 감독은 좋은 기분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K리그 데뷔전을 치른 모리츠도 "수원처럼 강팀을 상대로 원정에서 승점 3점을 따내며 출발해 자신감을 얻었다"라며 밝은 소감을 밝혔다.
이날 경기가 2015년을 좌우하진 않는다. K리그 클래식은 길고 험하다. 하지만 ACL 출전을 변수로 봐야 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보여줬다. 경기 시작 전까지 서정원 감독과 취재진은 베이징 원정의 영향을 이야기 나눴다. 지금 당장 건너편 라커룸에서 포항이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나흘 전 기억을 깨끗이 지우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ACL과 K리그 클래식 병행 소화는 분명히 난제이다.
물론 ACL클럽이란 계급장이 치명적인 독배는 아니다. 황선홍 감독은 "K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라고 말하지만 ACL 클럽의 고달픔을 질투하고 있을지 모른다. 힘든 줄 뻔히 알면서 기꺼이 힘들고 싶어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리라. 승리 후 웃었던 모리츠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그는 ACL 출전을 전제로 포항 이적을 결심했었다. 밝은 성격으로 선수단에 빨리 적응하고 있지만 그의 속마음에는 ACL 출전이 뚜렷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수원은 ACL에 나서서 힘들다. 포항은 ACL에 나서지 못해 여유롭다. 하지만 수원은 ACL클럽이라는 자긍심을 품는다. 지금도 포항은 2014시즌 최종전의 트라우마를 끌어안고 있다. 부담감과 자긍심, 트라우마와 동기부여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그 종이의 두께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