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60·독일)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두 경기를 치렀다. 7일 소집해 14일 해산했으니 정확히 8일 동안 선수들과 한솥밥을 먹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10일 파라과이와 데뷔전에서 기분 좋게 2-0 승리를 맛봤다. 14일 코스타리카에 1-3으로 졌지만 희망섞인 기대감이 더 많다. 슈틸리케 감독이 며칠 사이 대단한 마법을 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새 사령탑 아래 선수들이 단단히 정신무장을 하고 경기에 임한 것이 달라진 대표팀 경기력의 원동력일 것이다. 다음 달 있을 요르단-이란과 중동원정 평가전,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이 그의 지도력을 검증할 진정한 시험대다.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공통적인 평가로 ‘디테일‘과 ‘합리성‘, ‘신중함‘이 꼽힌다. 선수들에게 지시할 때 꼼꼼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곁들여진다고 한다. 남들의 말을 경청하려 애를 쓰고 사리에 맞으면 수용할 줄 아는 유연성도 지닌 모양이다.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다른 건 몰라도 지킬 수 없는 말을 쉽게 내뱉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믿음이 간다"고 귀띔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미팅을 너무 자주 길게 한다"는 말도 나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소집 첫 날 선수들을 불러 자신이 살아온 축구인생을 쭉 이야기했다. 이튿날에도 1시간 이상 비디오 미팅을 가졌다. 파라과이와 경기 전날 저녁에도 미팅이 예정됐다가 쉬고싶다는 선수들의 요청에 취소됐다. 사실 선수들은 잦은 미팅을 별로 안 좋아한다. 짧고 간단하게 주제를 전달하는 요령도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슈틸리케 감독이 계속 이런 방식을 고수할 거라 보는 것은 섣부르다. 팀을 맡은지 얼마 안 돼 빨리 파악할 필요가 있고 당연히 하고싶은 말도 많았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다.

"훈련 때 감독의 지시가 통역을 통해 효율적으로 전달이 안 된다"는 불평도 있었다. 통역이 원활하지 않으면 훈련이 늘어지고 선수들은 답답해할 수 있다. 통역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다. 감독이 역정을 내면 그 감정까지 고스란히 선수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답시고 감독 말을 자르거나 거르면 안 된다. 통역은 유창한 외국어실력은 기본이고 감독과 충분한 대화와 스킨십을 통해 그 의도까지 알아챌 수 있는 센스를 갖춰야 한다. 이질적인 한국 문화를 외국인 감독에게 잘 설명하는 것도 통역의 몫이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인 지도자로 꼽히는 거스 히딩크 감독(68) 때 통역은 축구협회 전한진 국제팀장이었다. 전 팀장은 히딩크 감독 부임 초기 애로사항이 하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훈련 때 "홍명보 선수 ""황선홍 선수" 같은 존칭이 붙어 통역에 시간이 걸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그렇다고 당시 대표팀 분위기와 위계질서상 나이 어린 통역이 고참 선수들에게 함부로 반말을 할 수도 없었다. 전 부장은 고심 끝에 당시 주장 홍명보 전 감독을 따로 만나 의견을 구했다. 홍 감독은 "앞으로 그라운드에서는 어떤 선수든 편하게 부르라"고 했다. 이렇듯 통역은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를 잇는 의사소통 창구가 돼야 한다. 축구협회는 공모를 통해 슈틸리케 감독의 전담통역을 새로 뽑았다. 조만간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