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축구가 잉글랜드에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고, 잉글랜드 축구의 섬나라 근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는 세계 어디서나 별반 다르지 않다. 아프리카에서도 아시아 축구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을 것이고, 아시아에서도 아프리카 축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원래가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또 하나의 우승 트로피를 추가했다는 소식은 잉글랜드에도 전해졌다. 그리고 작은 논란이 일어났다. 이 우승으로 리피의 위상이 어떻게 되느냐는 논란이었다. 올해 초에 ‘ESPN‘은 리피를 역대 최고의 감독 15위로 선정했다. 이런 순위는 언제나 정하기 어렵다. 순위 선정에 임할 때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이 답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순위를 다룬 기사는 굉장히 인기가 좋은데, 그건 바로 논쟁을 이끌어내기 위한 기사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다.

리피는 어느 감독도 이루기 힘든 월드컵과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업적을 모두 이뤄낸 지도자다. 이 둘은 대표팀과 클럽팀에 세계 최고의 대회다. 게다가 리피는 세리에A도 5회 우승했으니 정말 인상적인 업적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리피가 우승할 당시의 세리에A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했다.

리피는 정말로 뛰어난 감독이다. 그는 선수들을 이해하고, 훈련 방법도 세련됐으며, 압박감에도 잘 대처하고,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신뢰를 얻는다. 선수들은 리피의 지시라면 무엇이든 해내는데, 이는 리피의 훈련 방법과 성공적인 경력을 믿기 때문이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또 하나의 대단한 업적이다. 엄청난 투자로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영입하기는 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광저우의 가장 성공적인 영입은 리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피는 지난 몇 주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동급이라고 말해왔다. 개인적으로는 리피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96년 유벤투스에서의 우승 당시와 같은 기쁨을 느꼈을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 또한 의심스럽다. 유럽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똑같은 업적이 아니다. 이는 아시아를 모욕하려는 게 아니라, 유럽 챔피언스 리그가 실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가장 어려운 대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제 무대의 성공은 굉장한 일이다. 그렇다면 리피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역대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현역 감독들 중에 과연 리피보다 나은 감독이 있을까? 펩 과르디올라는 짧은 기간에 놀라운 성공을 거두며 축구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꿨다. 확실한 경기력으로 두 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니 리피보다 낫다고 본다. 만일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똑같은 성공을 거둔다면 그는 레전드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른 팀을 이끌고 두 번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조세 무리뉴도 있다. 무리뉴는 2010년에 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경력에 정점을 찍었다. 현재 리피, 과르디올라, 무리뉴가 세계 3대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알렉스 퍼거슨이 현역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거스 히딩크,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유프 하인케스, 아르센 벵거 또한 언급될 만하다. 벵거는 아스널에서야 레전드지만, 아직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지 못했고 팀은 9년째 무관이다.

65세의 리피는 이제 경력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지만, 아직 몇 년은 더 활동할 수 있다. 만일 데이비드 모예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맞는 감독이 아니라면, 다음 시즌에는 퍼거슨의 절친인 리피가 맨유를 이끌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도 있다. 맨유에서의 은퇴는 리피의 환상적인 경력에 딱 맞는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때는 리피를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고 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