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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도 OK' 박용택, 유쾌하고 품격있던 피날레
출처:오마이뉴스|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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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스의 심장‘ 3일 특별한 은퇴식... 레전드의 가치 재조명

 

가장 빛나야 할 엔딩 무대에서 어쩌면 짐이 될 수 있었던 흑역사까지 직접 소환했다. 어설픈 미화 대신 과오조차 자신이 걸어온 야구인생의 일부분이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가 더 레전드다웠다.

‘트윈스의 심장‘ 박용택이 7월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박용택은 이날 KBO의 허가를 받아 특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3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한 뒤 김현수와 교체됐다.

이날 잠실구장에는 2만 3750명의 만원 관중이 몰렸다. 팬들은 박용택의 이름을 연호하고 함께 응원가를 부르며 떠나는 레전드를 배웅했다. LG 선수들은 모두 등번호 33번과 함께 ‘용암택‘, ‘찬물택‘ 등 현역 시절 박용택의 다양한 별명들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LG는 롯데를 4-1로 꺾고 위닝시리즈를 달성하며 레전드의 송별식을 기분좋게 마무리했다.

박용택은 LG의 원클럽맨이자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다. 2002년 KBO리그에 데뷔해 2020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LG의 줄무늬 유니폼만을 입고 무려 19시즌을 활약했다.

박용택은 프로 통산 19시즌 동안 2236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308 2504안타 213홈런 1192타점 1259득점 313도루 등의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리그 개인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포함하여, 최다 경기 출장(2236경기), 최다 타석(9138타석), 최다 타수(8139타수)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다. 박용택은 2005년 득점왕과 도루왕, 2009년 타격왕을 수상했으며, 총 4차례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LG는 박용택의 업적을 기려 등번호 33번을 영구결번했다. 스타플레이어들이 넘쳐나던 LG에서도 영구결번은 김용수(41번)과 이병규(9번)에 이어 박용택이 3번째다. 그가 LG 역사에 얼마나 큰 족적을 남긴 선수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박용택이라서 가능했던 특별한 은퇴식

박용택은 2020년 11월 두산 베어스와 플레이오프 2차전 대타로 출장한 것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당시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무관중으로 경기가 치러지던 시점이라 공식 은퇴식은 갖지 못했다. LG는 구단을 대표하는 레전드를 초라하게 떠나보낼 수 없다는 판단하에 은퇴식을 미루고 꾸준히 시기를 조율해왔고, 올해 거리두기와 관중입장이 해제되면서 마침내 팬들과 함께하는 2년 만의 늦은 은퇴식이 성사됐다.

수많은 레전드들의 은퇴식이 있었지만 이날 박용택의 은퇴식이 특별히 남달랐던 이유는, 유쾌함과 화합의 메시지에 있었다. 레전드가 자신의 은퇴식에서 굴욕적인 별명과 흑역사를 스스로 먼저 언급하며 기꺼이 웃음의 소재로 삼고, 과거 악연이 있던 팀이 진심으로 은퇴를 축하해주는 훈훈한 낭만은, 어쩌면 박용택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2년 전, 현역 마지막 시즌을 보내던 박용택은 ‘은퇴투어‘를 둘러싸고 논란의 중심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LG는 KBO리그 차원에서 박용택의 은퇴투어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상대 구단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야구팬들 사이에는 반대 여론이 형성됐다. 일부 야구팬들은 박용택의 은퇴투어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특히 2009년 타격왕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박용택은 그해 홍성흔(당시 롯데)과 타이틀을 놓고 막판까지 경쟁했다. 박용택은 타율 0.372를 기록해 0.001차이로 홍성흔을 밀어내고 타격왕을 차지했지만 그 과정에서 ‘꼼수‘라는 야구팬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고 이는 두고두고 박용택을 괴롭히는 흑역사가 됐다. 박용택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별명인 ‘졸렬택‘도 여기에서 탄생했다.

박용택은 훗날 당시 타격왕 논란에 대하여 여러 차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은퇴투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직접 구단과 KBO에 고사 의사를 밝히며 상황을 정리했다. 하지만 구단들은 자체적으로 박용택을 위한 조촐한 기념 행사를 마련해 레전드를 예우하며 사실상의 은퇴투어를 치렀다.

이날 박용택의 은퇴식에서도 당시 타격왕 논란이 다시 언급됐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본인이었다. 잘난 업적만 자화자찬해도 누구도 뭐라하지 않을 자리에서 굳이 먼저 흑역사를 꺼낼 필요는 없었지만 박용택은 달랐다.

박용택은 사전에 아무 대본 없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 순간엔 졸렬했을지도 몰라도 그렇게 졸렬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웃으며 고백했다. 그러자 팬들 사이에서도 박수가 쏟아졌다. 과오를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박용택이 흑역사를 털어내는 방식이었다.

또한 박용택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별명부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좋은 별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명선수일수록 미디어에서 쓰이는 별명과 야구팬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재야의 별명‘이 따로 있는 경우도 많다. 박용택의 경우도 공식적인 별명은 ‘트윈스의 심장‘이지만, 실제로는 찬물택, 졸렬택, 관리택, 흐믓택, 하트택, 울보택, 공갈택 등 주로 이름에 빗대어 ‘~택‘으로 끝나는 각종 기상천외한 별명이 많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수위가 높거나 모욕적인 별명들도 있었다.

그런데 온라인도 아니고 공식 은퇴식에서 이 별명들이 그대로 등장했다. LG 선수들의 입고 나온 유니폼에는 그간 박용택을 대표하는 별명들, 심지어 흑역사를 상징하는 표현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 박용택의 사전 동의하에 이루어진 이벤트였다.

정작 박용택은 오히려 "‘졸렬택‘이 빠졌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바로 타격왕 논란 때문에 생겨난 졸렬택은 원래 별명 유니폼 후보에 있었지만, 후배인 정우영이 이를 선택했다가 LG 팬들로부터 격한 항의를 받으며 어쩔 수 없이 흐믓택로 바꿔야 했다. 하필 이날 은퇴식 경기 상대가 타격왕 논란 당시 홍성흔의 소속팀이었던 롯데였던 만큼 더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박용택이 자신의 흑역사마저 인정하고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살신성인을 보여주면서 모두가 함께 유쾌해질 수 있었다.

레전드 박용택의 가치

 

 

내내 미소를 잃지않았던 박용택이었지만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에는 감정이 북받쳤는지 잠시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용택은 "야구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로 단 하루도 즐겁게 야구를 해본 적이 없다. 야구를 너무 사랑한다. 내 인생은 야구다"라며 진지하게 야구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고백했다. 이어 "김용수 선배님과 이병규 형을 보면서 영구결번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3호가 됐다"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선수 개인으로서는 모든 것을 이룬 박용택이지만 유일한 아쉬움은 우승반지를 한번도 끼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용택의 소속팀 LG는 1994년 우승을 마지막으로 27년째 정상과 인연을 맺지못했다. 이는 타격왕 논란과 함께 박용택의 업적이 과소평가되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용택은 "우승반지 대신 여러분의 사랑을 가슴에 끼우고 은퇴하겠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또한 박용택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그리고 팬보다 위대한 팀은 없다. 팬보다 위대한 야구도 없다"며 후배들과 야구계에 전하는 깊은 울림이 담긴 메시지를 남겼다. 박용택은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고 기념촬영을 한 뒤, 팬들이 부르는 자신의 응원가를 들으며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면서 인사하는 것으로 정든 선수생활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레전드 박용택의 가치는 은퇴 이후 다시 재조명받고 있다. 박용택은 19년간 꾸준히 최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면서도 음주·도박·폭행·승부조작과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가담하거나 연루된 일이 전무하다. 특히 누구보다 팬서비스에 적극적이고 성실했던 선수로 기억되며 팬들의 호평을 받았다.

프로야구의 레전드들이 ‘하늘의 별‘처럼 우러러보지만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려운 선망의 대상이었다면, 박용택의 매력은 오히려 이웃집 형같은 친근함으로 다가왔다는데 있었다. 박용택의 수많은 별명에서 보듯이, 때로는 비판이나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 근간에는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

그를 대표하는 별명이 된 ‘찬물택‘도, 반대로 박용택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자 잘할 때 불리우던 ‘용암택‘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도 모두 팬들이었다.박용택은 스스로를 "KBO리그에서 가장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야구선수 중 한 명이었다"고 규정하면서 "언제든지 욕해도 되고, 잘 했을 때는 어떤 선수보다 응원도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한때 잘나가던 선수들도 경기장 밖에서의 처신(팬서비스, 사생활)이나 현역 시절의 마무리, 혹은 은퇴 이후의 행적으로 점수가 깎이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박용택은 선수 시절은 물론이고 은퇴 이후에도 성실하면서도 유쾌한 모습들, 팬들을 대하는 진정성이 호평을 받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재평가를 받고 있다. 레전드일수록 유종의 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엔딩택‘의 아름다운 피날레가 남기는 진정한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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