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게 딱 3년의 시간 줬다" 여제 김가영의 행복한 시즌 -①
출처:MHN스포츠|20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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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초에 큐를 잡은 소녀는 곧장 국내를 휩쓸고, 나이 앞자리가 바뀌자 세계를 평정했다.

여성 포켓볼계에서는 이미 국내외를 통틀어 적수가 없다. 지난 2004년, 2006년 9볼을 제패하고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것을 시작으로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었다.

2009, 2011, 2016년 미국여자프로랭킹(WPBA)에서 개인통산 3번의 1위를 기록하며 한국 당구계에 역사적 기록을 남긴 세계 최고 포켓볼 선수는 2019년, 프로당구(PBA)가 국내에 출범하며 한국 프로당구의 발전을 위해 3쿠션에서 또 다른 족적을 찍어나가고 있다.

사실 전향은 다소 갑작스러운 ‘유턴‘ 과정을 겪었다. 초청 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LPBA 대회가 발단이었다. 당시 갓 출범한 프로당구 PBA측과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KBF) 사이에는 팽팽한 대립 분위기가 서 있었던 것이다. KBF는 김가영에게 3년 자격정지를 내렸다. 한평생 당구대에서 살아왔던 선수는 한 몸 같은 큐대를 놓을 수 없었다.

포켓볼에서 캐롬 3쿠션으로 전환한지 3년 차, 살아남기 위해 자신과의 카운트다운을 해야했던 ‘당구여제‘는 다시 한번 최정상에 올라섰다.

인천 구월동 소재 연습장에서 만난 김가영(39, 신한금융투자)은 갓 정규리그를 마치고 돌아온듯 남색 컬러의 단정한 팀 유니폼에 흰 바지, 소녀같은 표정으로 본지 기자와 마주앉았다. 시종일관 눈을 빛내며 즐겁게 질문에 응하다가, 그만의 당구 철학을 말할때 한없이 진지해지는 얼굴에서는 정상의 관록이 느껴졌다.

‘SK렌터카 LPBA 월드챔피언십 2022‘를 마치고 정확히 한 달 가량이 지났다. 당시 경기 후 소감에서 "제대로 쉬어보겠다"고 말했던 김가영에게 "푹 쉬었느냐"며 근황을 묻자 빙그레 웃었다.

그는 "한 3~4일 정도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사실 좀처럼 시간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가족들과 일정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며 "부모님과 동생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 뒤로는 사실 계속 스케줄이 있어서 바쁘게 지냈다"고 손사래를 쳤다.

 

 

■ ‘일희일비‘는 옛 말

마주앉은 김가영에게 지난 달 월드챔피언십 우승 소감을 묻자 의외로 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사실, 보이는 것과 다르게 그렇게 엄청나게 흥분하지는 않았다. 물론 기쁘기는 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시험을 본 느낌이라고 할까"라고 입을 열었다.

우승의 기쁨을 잘 나온 성적표에 비견한 김가영은 "사실 그렇지 않나, 시험이 끝났다고 해서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니다. 결과도 조금씩 기복이 있다. 공부를 쉬엄쉬엄했는데 성적이 좋을 때도 있고,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생각만큼 안 나올 때가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내가 세계선수권우승을 처음 했을 때가 22살이었다. 그때는 막 부귀영화를 다 누린 것 같고, 온 세상 스포트라이트가 나한테 쏟아지는 것 같고 막 주마등이 스쳐지나가고 그런 붕 뜬 느낌이었다. 그때의 짜릿함은 뒤로 아무리 우승을 해도 다시 느껴볼 수가 없었다" 라고 덧붙였다.

김가영이 첫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딴 것이 20대 초, 첫 국내대회 우승은 그것보다 더 어린 중학교 3학년때 이뤄냈다. 그는 이미 트로피를 껴안고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시기를 지나 쌓이는 업적을 잔잔히 받아들이고 추후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그는 "이제는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내가 노력한 것만큼 성적이 나올 때도 있고, 그것보다 잘 나올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 기복이 있는 성적표를 받은 느낌이다"라고 덧붙였다.

■ 마음고생 끝에 이룬 3쿠션 전향

3쿠션에서도 현재 최고의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김가영의 3쿠션 전환은 사실상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KBF의 출전정지 제재는 세계 최고의 포켓볼 선수를 불가피하게 3쿠션 당구대 앞에 세워놓았다.

이에 대해 질문하자 김가영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그는 "종목 자체를 바꾸는거라 매우 힘들었고, 큰 도전이었다. 사실 나는 포켓볼에서는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나. 그걸 유지를 잘 해왔는데 한 순간 이쪽으로 넘어오며 나 스스로가 내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하나 하는 부담감이 늘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또 팬들도 내게 거는 기대감이 있을거고, 성장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스러움이 늘 뒤를 따랐던 것 같다. 종목의 테크닉적인 부분보다는 그런 심리적 불안감을 이겨내는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 ‘포켓볼 지도자‘를 꿈꿨지만...

김가영이 본래 지향하던 목표는 포켓볼 지도자였다. 자신의 뒤를 이어갈 국내 포켓볼 유망주들을 키워내기 위해 사방팔방 달렸지만 현실은 지난했다.

그는 "나를 위한 대회에 후원을 요청한 적은 없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힘들어도 연맹(KBF)측에 후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뭐 하나라도 더 도와줄까 싶어서 더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특히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당구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불의의 사건으로 꿈이 허무하게 접혔다. 그는 "그렇게 노력했는데 더 이상 포켓볼 선수로 나설 수 없게 되며 맥이 탁 풀리더라. 그때 너무 질려서 다 놔버리고 싶었는데 PBA측에서 첫 출범 당시에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프로당구 무대가 커지면 좋으니 더 볼 것 없이 흔쾌히 나섰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현재 그는 포켓볼 제자인 서서아(20, 전남당구연맹)를 가르치고 있다. 현재 국내 여자 포켓볼 유망주로 거침없이 성적을 내고 있는 서서아는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무작정 우상인 김가영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 서서아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 키우기로 마음먹었다는 김가영은 "서아가 정말 시키는건 다 한다. 공부를 안 시킬 수 없어 검정고시를 보라고 했더니 그것까지 보면서 연습에 열중하더라"며 제자에 대한 애정과 기특한 마음을 드러냈다. "쬐그만게 (당돌하다)"라며 비죽 덧붙이는 말에는 마치 큰 언니같은 면모도 엿보였다.

두 종목 모두를 섭렵한 그에게 포켓볼과 3쿠션의 각자 다른 매력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일단 포켓볼은 전술전략에 대한 즐거움이 크다"라고 단번에 대답했다.

이어 "포켓볼은 공격과 수비가 딱 양분화되어있다. 정말 매 순간 전술전략을 짜야한다. 그리고 3쿠션같은 경우는 공격과 수비를 골고루 겸해야한다. 하지만 아직 3쿠션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서 사실 이렇게 말하는게 조심스럽긴 하다"라며 겸손한 대답이 뒤따랐다.

■ 처음 겪은 팀리그 "사실은..."

프로당구 PBA는 지난 2019년에 첫 출범했다. 이듬해인 2020-21시즌에는 팀리그가 창설되었다. 개인전 위주였던 당구가 팀제 경기로 치뤄지자 많은 당구팬들이 신선해했다. 김가영은 창설 첫 해부터 신한금융투자 팀 리더를 맡았다. 현재는 ‘젊은 피‘ 조건휘(30)로 팀 리더가 변경된 상황이다.

팬들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김가영은 그때에 대해 "정말 모든게 부담스러웠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그는 "당시 내가 3쿠션을 친지 1년밖에 안된 상황이었다, 부담감이 큰데 팀 리더까지 하다보니까 즐거움을 느끼기 전에 그 부담에 정말이지 깔려죽을 뻔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팀리그를 이끌어가고 있는 그는 "이제 조금씩 팀끼리 알아가고, 의지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단계다. 무조건 더욱 좋아질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팀리그는 계속되지만 현재 몸 담은 선수들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구계 파란을 이끌 ‘뉴페이스‘는 또 들어오고, 현재 막둥이 역할을 맡은 파릇파릇한 선수들은 고참 선수가 되어 후배를 이끄는 순환 시스템이 이어질 것이다. 

김가영은 "기존에 소속된 선수들도 점점 더 익숙해질 것이고, 선배들이 후배들을 이끄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질 것이다. 물론 선수들도 부단한 노력을 하고있다"고 전했다. 

 

 

■ ‘100점‘짜리 지난 시즌

그런 ‘당구여제‘에게 지난 시즌은 버릴 곳 없이 알찼다. 혹여 아쉬웠던 점을 물어보니 "크게 없었다"는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시즌 마지막에 결과가 좋아서 큰 보상을 받은 점도 한 몫 한다. 만일 이번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못하면 시즌 중 딱 한 번의 우승으로 그쳤을텐데 결과가 좋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성장으로 봤을때도 그의 애버리지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여자선수로서는 최초로 1점대 애버리지를 만들어냈고, 스스로도 그만큼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김가영은 "나 스스로에게 딱 3년간의 시간을 줬다"고 밝혔다. 그가 생각하는 3쿠션의 최소한의 기반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물론 그 기간동안 계획하고 목표한 것을 거의 다 만들어냈고 거기에 대한 보상도 충분히 따랐다. 시즌을 끝내며 들어올린 어린아이 키만한 월드챔피언십 트로피가 마무리를 훌륭히 장식했다.

한 시즌을 가만히 돌아보던 김가영은 "개인적으로는 가장 만족하는 시즌이었다"며 미소지었다.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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