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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 입고 잠실 찾은 박용택 "난 11월까지만 LG맨, 당분간은"
출처:스포티비뉴스|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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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박용택이 16일 오후 잠실구장을 찾아왔다. 방망이 대신 신임 류지현 감독에게 선물할 꽃다발을 들었다. 줄무늬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아직 잠실구장 라커룸에 가득 찬 짐은 빼지 않았다. 그는 "11월 30일까지만 LG를 사랑하겠다. 12월부터는, 잠시가 될지 영영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을)잠시 접어두겠다"고 말했다.

- 라커룸 짐 정리하러 왔나.

"하나도 못 치웠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생각 중이다. (야구용품이라)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바로 버리기는 아깝다. 후배들 나눠주고 팬들하고 하는 행사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다. 배팅 장갑 같은 것들은 예전처럼 모아서 기부하려고 한다."

"안 그래도 (오)지환이가 빨리 빼라고 해서 올해 안에는 빼준다고 했다. 잠실은 또 올 거다. 지나가다 들러서 샤워만 하고 나갈 수도 있다. 물 받아놓고 혼자 반신욕하고 있을 수도 있다. (구단에서)언제든지 쓰라고 하더라. 누가 막겠나."

- 마지막 경기(5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가 열흘 넘게 지났는데, 은퇴 실감이 나는지.

"실감 전혀 안 난다. 은퇴 인터뷰를 1년 내내 했다. 지금 이런 것도 끝나서 하는 느낌이 없다."

"뭔가 다른 직업을 구하게 되면 실감이 날 것 같다."

- 해설위원에 도전한다고 했다.

"지금은 70% 정도 해설위원을 생각 중이다. 감독 단장님과 소주 한 잔 하기로 했으니까 혹시 다른 일이 있을 수도 모른다. 아무튼 요즘 해설위원 후보로 미팅은 하고 있다."

- 해설위원을 하게 되면 처음으로 ‘LG아닌‘ 야구를 보게 되는데.

"해설이 재미있다는 사람도 힘들다는 사람도 있는데, 다 떠나서 야구가 다르게 보인다는 말은 공통적으로 하더라. 나도 다른 눈으로 야구를 보고 싶다. 지금까지는 내 팀이라는 생각만 있었다. 만약 해설을 하게 되면 LG 트윈스는 조금 더 냉정하고 엄하게 볼 수 있을 거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 같다. 어떤 해설을 할지는 몰라도 사실 지적하는 방향은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LG 경기라면 그렇게 될 것 같다. 11월 30일까지만 LG를 사랑할 거고, 12월 1일부터는 잠시가 될지 영영이 될지 모르지만 (마음을)접어두겠다."




- 후배들과 무슨 얘기를 나눴나.

"후배들이랑은 며칠 전부터 얘기할 기회가 많았다. 선수단 전체랑 한 번 했고, 타자들 따로 모여서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오늘(16일)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오늘은 감독님 꽃다발 드렸다. 19일 취임식 때 하려고 했는데 그날 아침부터 일정이 있어서 못 오게 됐다. 겸사겸사 와서 인사하고 꽃다발 드렸다. 은퇴하면 ‘지현이 형‘ 하면서 소주 한 잔 하자고 하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되셔서 못 하게 됐다."

- 선수부터 함께 했던 선배가 감독이 됐다.

"(LG 감독 중)MBC 출신으로는 이광은 감독님(2000~2001년), 김재박 감독님(2007~2009년)이 계셨다. 두 분 모두 선수로 같이 뛴 사이는 아니다. 류지현 감독님은 미국 연수 가셨을 때(2007~2008년) 빼고 17년을 붙어 있었다. 같이 뛴 기간은 3년이다. 그렇게 보면 ‘1군에서‘ 가장 오래 같이 지낸 분은 감독님이다. 김정민 코치님은 퓨처스 팀 코치시고, (이)병규 형은 일본 다녀온 3년 빼면 감독님 다음으로 같이 한 시간이 길다."

- 6일부터 16일까지 11일, 어떻게 보냈나.

"구직활동하고 있고,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도 있었다. 골프도 치고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이랑 술도 한 잔 하고 지냈다.




- 그 사이 살이 찐 것 같은데….

"살은 빠졌다. 일주일 사이에 몸무게 3kg가 빠졌다. 살 빼야 한다. 그래야 ‘카메라발‘도 잘 받지."

"스케줄 잡는 게 너무 힘들더라. 오전 오후 두 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많으면 하루에 세 가지 스케줄이 있을 때도 있다. 입을 옷 정하고 머리하고 운전해서 이동하고, 또 저녁 때는 약속도 있다. 그러다 쉬는 날에는 골프도 쳐야하고. 힘들다."

- 은퇴 전까지 에이전트가 없었다. 스케줄 관리는 어떻게 하나.

"만약 방송을 하게 되면 에이전트가 필요할 수도 있다. 지금은 구단으로도 들어오고, 에이전트 하는 지인, 연예기획사 하는 지인을 통해서도 섭외가 들어온다. 다들 방송을 할 거면 되는대로 나가서 시작하라고 하는데, 내가 연예인을 할 건 아니지 않나. 방송을 하더라도 주인공이 되는 프로그램만 한다. 눈치보다 말 치고 나갈 타이밍 잡는 그런 것 말고."

- 결국 야구계에 남겠다는 의지인데.

"99%는 야구계다. 지금은 대학원 알아보고 있다. 내년 가을부터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하려고 한다. 그래서 해설위원 미팅 때도 그런 계획을 얘기한다. 흔쾌히 알겠다고 하는 곳도 있고, 그냥 알겠다고만 하는 곳도 있다."

- 은퇴 후에 해설위원 섭외 요청이 많았을 것 같은데, 주도권이 있지 않나.

"세상이 그렇게 쉽지 않더라. 시즌 끝나면 연락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 지금 기분을 설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설렘을 느껴본 적이 없다. 후배들에게 긴장, 두려움, 설렘, 그 사이에 있는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가져야 야구가 잘 된다.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렌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든다."

"그냥 집에서 무의식중에 방망이만 안 들었으면 좋겠다. 골프채를 잡아야 하는데 방망이를 잡는다. (손바닥을 보여주며)그래도 일주일 지나니까 굳은살이 떨어진다. 보통사람 손바닥이 되는 거다. 비시즌에는 한 달 정도 방망이 안 잡으면 매끈해진다."

- 포스트시즌 경기는 봤는지.

"야구 안 봤다. 아니 못 봤다. 보면서 내가 해설을 하면 어떤 느낌으로 할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려고 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오후 네 시 반이 되자 알람이 울렸다. 박용택은 "아, 나 딸 데리러 가기로 했는데"하며 웃었다. 마침 잠실야구장 건너편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박용택은 여기서 다시 ‘LG팬‘으로 돌아갔다.

"해 지고 있는 저쪽에 휘문고등학교 올라가는 언덕길이 있다. 저기서 6년을 야구했다. 오후 훈련 다 하고 잠실구장에 오면 야구가 7회 끝났을 쯤이다. 그때는 7회 지나면 공짜로 들어올 수 있었다. 우리는 또 관중석이 아니라 대기타석 뒤쪽으로 갔다. 준비하는 야구선수들 보면서 ‘실제로 보니까 엄청 크다‘ 이런 얘기들을 했었다. 그게 벌써 25년 전 얘기네. 1994년 우승했을 때만이 아니고 1998년까지, 그때 참 야구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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