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우의 SK랩북] 장장 1년의 겨울… 우리가 알던 이재원이 이제 보인다
- 출처:SPOTV NEWS|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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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의 겨울은 절기상으로 3개월 남짓이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그렇지 않다. 체감에 따라 1년 내내 추운 겨울일 수도 있다. 아마도 이재원(32·SK)이 느끼는 지난 1년이 그랬을 것이다.
2018년 주장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성적, 포수라는 프리미엄 포지션, 팀 내에서 차지하는 리더십의 입지,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복합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4년 총액 69억 원의 대형 프리에이전트(FA) 계약도 따냈다. 그러나 2019년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매년 잘할 수 없으니 개인 성적이 떨어진 건 그렇다 쳤다. 하지만 팀이 고꾸라졌다. 자신도 휩쓸려 떠내려갔다. 비극적인 추월의 희생양이 되며 겨울이 시작됐다.
봄이 곧 올 줄 알았다. 캠프 기간 동안 열심히 했다. 지난해 떨어진 성적을 만회하려 노력했다. 가까이서 지켜본 동료와 코치들이 모두 인정했다. 수비에 포커스를 맞췄다. 기본부터 다시 했다. 매일 한 시간씩 앉아 묵묵히 피칭머신의 공을 받았다. 그러나 시작부터 불운이 찾아왔다. 개막 3경기 만에 왼손 엄지에 공을 맞았다. 엄지가 부러졌다. 재활만 40일을 넘게 했다.
팀 성적은 계속 추락하고 있었다. 기둥을 잃은 백업 포수들은 헤맸다. 코칭스태프도 인정한다. 1군 콜업이 성급했다. 경기력은 최악이었다. 잘 치지도, 잘 잡지도, 잘 던지지도 못했다. 7월 3일 다시 2군에 내려갔다. 부상도 아닌 부진으로 20일 넘게 1군을 비웠다. 그 사이 이재원의 입지는 예전과 달라졌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이흥련(31)이 주전을 꿰찼다. 이재원은 플래툰 포수였다.
이 시점 SK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포기한다. 2021년 체제로 전환했다. “살려야 할 선수를 지금부터 살려야 한다”는 뜻이 모아졌다. 코칭스태프의 선택은 이재원이었다. 박경완 SK 감독대행은 “이재원이 살아야 팀도 산다”고 강조했다. 가장 그릇이 크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악전고투였다. 바닥까지 떨어진 경기력이었다. 꾸준히 나갈수록 그 깊은 바닥만 확인했다. 그러나 SK는 인내했다.
박 감독대행은 “이재원은 공격이 안 되면 수비에도 영향을 받는 포수라는 선입견이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 막 주전 포수가 됐을 시점까지는 그랬다. 오랜 기간 이재원을 봐온 박 감독대행은 “지금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타격감 상승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올해는 안 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 포기하지 않았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수비부터 다듬었다. 그리고 소리부터 질렀다. SK 관계자들은 “성적과 별개로 더그아웃에서 가장 파이팅 넘치는 선수가 이재원”이라고 했다.
도루 저지율부터 반등했다. 초반에는 ‘자동문’이라는 비아냥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투수들의 퀵모션이 느린데다 이재원의 송구까지 흔들렸다. 잡힐 리가 없었다. 상대가 대놓고 뛰었다. 도루 저지율이 한때 20% 미만까지 추락했다. 굴욕이었다. 하지만 이재원은 묵묵하게 노력했다. 투수들의 퀵모션 및 견제 능력의 향상과 더불어 이재원의 송구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야수와 주자 사이로 공이 쏙쏙 들어갔다. 자동 태그가 속출했다. 도루 저지율은 최상급인 37.7%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수준이다.
박 감독대행은 “준비 자세가 좋아졌다. 재원이를 보면 안 좋을 때 백스탭이나 제자리 스탭을 밟는다. 하지만 지금은 전진 스탭을 밟는다. 분명히 볼 끝에 힘이 생긴다. 같은 범위를 움직이겠지만 스탭을 어디로 밟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고 본다. 주자를 놓치지 않는 건 자세부터 나온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수비가 되면서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풀렸다. 그러자 방망이도 산다. 여전히 장타는 부족하다. 병살타도 곧잘 있다. 하지만 10월 이후 17경기에서 타율은 0.277로 올라섰다. 9타점도 수확했다. 안타가 나오면서 최근에는 장타도 조금씩 늘어난다. 최근 10경기 타율은 0.308, 장타율은 0.462다. 확실히 맞는 타이밍이 좋아졌고, 타구에 힘이 실리고 있다.
2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경기에서는 클러치 능력을 뽐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7-8로 뒤진 9회 2사 만루 상황에서 롯데 마무리 김원중의 포심패스트볼을 초구부터 받아쳤다. 확신을 가진 스윙에서 나온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졌고 두 명의 주자가 홈을 밟아 경기를 끝냈다. 뛰어 나오는 동료들을 보며 이재원은 환하게 웃었다. 우리가 알던 그 미소가 드디어 보였다.
“지금껏 뭐 하다가”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성적이기는 하다. 이재원도 안다. 하지만 SK는 “이제라도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 흐름이 내년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 주전 포수가 바로 서야 팀 마운드도 안정을 찾기 때문이다. 박 감독대행은 “최경철 (배터리) 코치와 이재원이 항상 꾸준하게 노력했다. 보기 좋았다. 그런 모습들이 경기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고 반등을 자신한다. 모처럼 느끼는 봄기운이다. 잡는 일이 남았다. 선수에게 선택지는 없다. 구단과 팬들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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