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점령당한 스포츠 댓글 문화, 폐지만이 정답일까
출처: 오마이뉴스|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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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다음 등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연예 면에 이어 스포츠에서도 댓글 기능을 중단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 여자 배구선수 출신 고유민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스포츠계에서 ‘악성 댓글‘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커진 상황이었다. 다만 네이버의 경우, 완전한 폐지는 아니고 추후 악성댓글에 대처할 수 있는 실효적인 기술 개발 여부에 따라 부활의 여지는 남겨뒀다.

이미 국내 포털 업체들은 지난해 가수 설리-구하라 등 유명 연예인들의 연이은 사망 이후 악플 근절의 일환으로 연예 뉴스 댓글 서비스를 폐지한 바 있다. 이로 인하여 스포츠계에서도 댓글 기능을 금지해야한다는 여론이 제기됐다. 탁구스타 출신 유승민 IOC 선수위원은 스포츠 뉴스의 악플금지법안을 국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댓글의 역사는 인터넷의 시작과 함께 한다. 1990년대 온라인 문화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게시물 아래쪽에 짧은 글을 바로 덧붙일 수 있는 댓글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이후 포털의 위상이 급상승하면서 댓글의 비중도 갈수록 커졌다. 사실상 댓글이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대중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여론 자체를 대변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댓글 기능은 초기에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억눌려왔던 ‘표현의 자유‘와 비판적 시각을 활성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예인-체육인-정치인 등에 대한 무분별한 인신공격과 가짜뉴스, 포퓰리즘 확산 등이 문제로 불거지며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 온라인 댓글은 오프라인과는 별개로 인간의 또다른 인격을 드러내는 어두운 민낯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에는 그래도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악성 댓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순화하는 방패막이가 되곤했다. ‘안티도 팬의 일부‘ ‘무플보다는 차라리 악플이 낫다‘는 명분으로 악성댓글도 일종의 자연스러운 관심처럼 합리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직업 특성상 팬들과 늘 가까이서 호흡할 수밖에 없는 체육인들은, 이러한 악성댓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다른 직종보다 더 쉽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체육인이 악플테러로 인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어야했다. 체육인의 전문성과 관련이 없는 외모 품평이나 사생활에 대한 비난, 심지어 가족들까지 덩달아 비난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아예 특정 유명인 만을 노리고 반복해서 저격하여 유명세를 얻은 이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때 누리꾼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선플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스포츠계에서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심지어 오늘날 악성 댓글은 갈수록 조직적-지능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근거없는 루머나 스캔들을 근거로 특정 체육인을 향한 악의적인 ‘프레임‘ 형성을 유도하면서 이미지 손상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는 상황도 생겨난다. 대중의 관심도가 더 높은 프로야구나 각종 국가대표 경기 등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빈번해진다.

매경기 매순간 승부의 세계에서 결과로서 평가받아야하는 게 일상인 체육인들은, 다른 분야보다 대중의 반응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선수나 감독들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댓글 기능을 앞으로도 완전히 폐지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대중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악플‘ 자체에 대해서는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일치하지만, 과연 어디까지를 악플로 규정할 것인가는 또다른 문제다. 강물이 오염되었다고 정화시킬 생각은 하지않고, 아예 강을 메워서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은 근본적인 대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프로스포츠에서 댓글은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해당 스포츠에 대한 선수, 경기, 사건 등에 대한 다양한 화제를 공유하면서 여론을 형성하고 팬심을 확장시키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 특히 체육계의 갑질, 약자 보호, 승부조작, 팬서비스, 병역회피, 각종 제도개선 등 중요한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포털 댓글을 통한 여론의 결집이 ‘사회적 공론화‘를 촉발시키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도를 넘어선 인신공격이나 비난은 안 되겠지만, 비판받아야 할만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도 무조건 악플이라는 핑계로 여론을 부정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예전같으면 오프라인에 직접 실력 행사에 나서지 않는한 여론을 안중에도 두지않던 거대한 협회, 기업, 스타 등이 대중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 것도 댓글 현상으로 대표되는 여론의 힘이었다. 부작용이 많다 고해서 대안도 없이 정당하게 여론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마저 아예 막아버린다면, 오히려 더 많은 문제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포털 댓글만 막는다고 악플이 금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악플 테러는 포털보다 SNS가 더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소한 읽기 싫으면 무시하면 그만인 포털의 댓글과 달리, 악플러들은 SNS의 DM(다이렉트 메시지) 기능을 이용하여 당사자에게 직접 악플을 전송한다. 계정을 만들기 쉬운 SNS의 약점을 이용하여 차단을 당하더라도 가짜 계정을 수십개 만들어 지속적으로 악플을 일삼는 누리꾼들도 많다.

악플의 진짜 문제는 익명성의 등뒤에 숨은 폭력과 무책임이다. 포털 댓글은 완전한 폐지보다는 실명제 도입과 악플러에 대한 처벌 강화같은 보완책으로 가는게 더 바람직하다. 표현의 자유 위축과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이유로 전면적인 실명제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아이디와 IP 공개만으로도 의미있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가짜뉴스나 인신공격에 대한 해당하는 악플에 대해서는 관용의 여지가 없는 강경한 처벌기준이 새롭게 도입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무조건적인 댓글 폐지는,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이나 집단지성이 자발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관리할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씁쓸한 패배 선언과도 같다. 댓글 문화가 탄생한 근본적인 취지는 ‘소통‘과 ‘공감‘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방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나, 왜곡된 감정을 배설하는 창구로 변질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댓글 문화의 기능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나마 법과 제도의 통제를 통해서만 겨우 연명할 수 있는 흑역사로 전락하기 직전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다른 악플러들 탓이고 막연하게 비난하기 전에, 어쩌면 우리 개개인 스스로부터가 이러한 온라인 댓글 문화의 타락에 나도 모르게 동참한 공범은 아니었는지 성찰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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