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고 넘치는 유망주, 희망 꺾는 비양심의 슬픈 공존
- 출처:스포티비뉴스|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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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뒤 신 감독과 연습 경기의 성과를 나누며 클럽하우스를 빠져나갈 무렵, 3명의 한국 학생 선수가 인사를 건넸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여성 대리인과 함께였다. 이들은 스포르팅CP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신 감독은 나이를 물어본 뒤 ‘15~17세‘라는 답을 듣자 "열심히 배워서 성장하라"라고 격려했다. 한국도 아닌 타국, 그것도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인 포르투갈에서 고생하고 있기에 말 한마디가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포르투갈 명문 스포르팅CP 아카데미에 있었던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당시 취재했던 기자도 이들보다는 신태용호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디에나 있는 흔한 유학 선수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해가 지나고 유럽에서 수학하다 되돌아오거나 현지 업체에서 사기를 당했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이메일 제보 등이 종종 오면서 3명이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스포르팅 아카데미는 겉으로 보면 구단의 유스 시스템 내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게는 별도의 축구 육성 기관으로 분류된다. 우리로 치면 방과 후 일반 클럽처럼 운영됐고 다른 도시에도 스포르팅 아카데미가 존재했다. 구단의 중요한 수익 사업 중 하나였다.
해외 유학 프로그램과도 연계, 육성 중인 선수가 마음만 먹으면 다른 길을 가는 것도 가능했다. 직업 선수를 하고 싶은 선수에게는 이승우, 백승호(다름슈타트)가 거쳤다는 FC바르셀로나의 유스시스템 ‘라마시아‘라고 생각하고 갔지만, 실상은 아주 달랐다. 물론 선수가 아닌 다른 직업군을 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그 자체는 분명 장점으로 꼽히지만, 프로 선수가 되겠다는 선수들에게 권하기에는 괴리감이 커보였다.
이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지 여러 과정을 거쳐 수소문했지만, ‘스포르팅CP 아카데미에 10대 후반의 한국 학생이 없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분명 세계적인 축구 선수로서 성장을 위해 한국을 떠나 유학을, 루이스 피구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를 배출한 스포르팅에서 했을 텐데 ‘없다‘는 답변은 황망함 그 자체였다. 물론 정보 전달의 오류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유망주 또는 선진 축구를 배우기 위해 해외, 그것도 유럽으로 나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의 선수 육성 체계가 예전과 비교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복잡한 형태로 얽혀 있어 그렇다. 학원 축구, 프로 유스는 대한축구협회나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관리하에 있지만, 해외 유학은 개인의 선택이라 막을 길이 없다. 일반 클럽팀은 교육부 소관이라 축구를 관장하는 축구협회의 사각지대에 있다.
2002 한일월드컵을 거치면서 국내에 유럽 유수 클럽의 이름을 빌린 팀들이 늘고 있고 또는 직접 진출로 한국 시장을 열기 위한 노력이 있지만, 제대로 검증했는지 의문인 경우가 많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선수 육성 시스템 정비되고 있지만 사각지대 여전해
난맥상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세계 정상 수준과의 거리 좁히기‘라는 한국 축구 지상 과제에서 구성원에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소년 시절부터 재능이 보이면 큰돈을 들여 해외 유학을 떠나거나 프로 산하 팀으로 들어가서 재능을 쌓는 데 주력한다. 두 길이 쉽지 않으면 학원 축구팀 진학으로 시작해 다음을 모색하거나 그도 어려우면 일반 클럽팀(소위 취미반)에 들어가 눈에 띄기 위해 애쓰는 경우가 많다.
크게는 학원 축구팀, 프로 유스, 해외 유학, 일반 클럽팀으로 나뉘지만, 그 안에는 복잡하게 얽힌 것이 정말 많다. 학생 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공부하는 운동 선수 육성‘이라는 국가 정책으로 인해 실타래 풀기는 더 어렵다. 학원 축구팀의 경우 학교체육진흥법에 따라 학교 스포츠 클럽 형태로 전환해 운영, 엘리트 선수(=직업 선수) 육성이 쉽지 않다. 직업 선수를 택하지 않는 이상 일반 클럽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도 재능을 보여 뒤늦게 주목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최근 성남FC를 통해 주목받아 김학범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도 관심을 두고 본다는 ‘홍시포드‘ 홍시후(19)의 경우 학원 축구팀인 동명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천안축구센터 15세 이하(U-15) 팀-상문고등학교라는 다소 독특한 성장 과정을 거쳐 성남에 입단했다. 대부분의 프로팀이 자유스팀이나 타유스팀, 지역 연고를 고려해 선수를 선발하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성남 관계자는 "성장 과정 자체가 독특한 것이 사실이다. 클럽팀과 일반팀도 아니고 중학 시절을 축구센터 팀에서 보내고 평범한 학원 축구 고교팀으로 진학한 것 자체가 정말 이채롭다. 잘 배우거나 개인이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프로 진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어쨌든 스포르팅 사례로 다시 돌아오면) 해외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보여주려 애쓰는 선수는 많지만, 성공이라는 단어와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결론으로 향하게 된다. 동시에 고생은 덤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미성년의 이적을 엄격하게 다루면서 축구 관련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부모가 선수와 현지에서 함께 거주해야 하기에 금전적 부담이 추가된다. 유망주들이 해외 훈련을 통해 주목받아 진출하면 성장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살피는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스포티비뉴스는 최근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국제축구연맹(FIFA) 이적 대조 시스템(Transfer Matching System, 이하 TMS)에 등록된 국가별 한국 선수 명단을 확인했다. 2018년 7월 이후 현재까지 1부리그부터 5부리그까지 등록된 기준으로 추린 결과는 놀라웠다. 개개인의 신상을 공개하기는 어렵다는 축구협회의 양해에 따라 국가별 선수 등록 인원만 제공 받았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독일= 116명
일본= 88명
스페인= 45명
호주= 26명
태국= 23명
크로아티아= 15명
체코, 포르투갈= 13명(이하 각각)
미국, 오스트리아= 11명
잉글랜드, 홍콩= 7명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슬로바키아= 5명
몬테네그로, 중국= 4명
아르헨티나, 캐나다, 필리핀= 3명
아랍에미리트(UAE), 노르웨이, 베트남, 브라질, 세르비아= 2명
대만, 루마니아, 마카오, 벨기에, 벨라루스, 스웨덴, 오만, 웨일즈, 카자흐스탄, 카타르, 캄보디아, 키르기스스탄, 폴란드, 프랑스= 1명
총 39개국에 무려 431명이 TMS상 ‘축구 선수‘로 등록해 있다. 이미 기량이 익은 성인 선수가 많은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유럽 축구 강국인 독일, 스페인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각각 116명, 45명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지어 예상하지 못했던 잉글랜드에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말고도 6명이 더 있는 것도 신기했다. 체코, 포르투갈, 노르웨이, 세르비아, 웨일즈도 마찬가지다.
익히 알려진 선수들 외에도 숨은 선수 또는 유망주, 유학 선수가 많다는 뜻이다. 포르투갈의 경우 언급한 스포르팅이나 벤피카 등 다른 팀들에, 하부리그에 선수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해당국에서 등록하지 않은 경우까지 고려하면 더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나마 프로 유스팀에서 진출한 경우 비교적 관리가 괜찮은 편이다. 특히 해외 진출자가 많은 울산 현대의 경우 오인표(LASK 린츠)가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데뷔에 애를 쓰고 있다. 지난해 오스트리아 2부리그 FC주니어스에 있었던 홍현석이 8월 중 린츠로 임대된다. 크로아티아 무대로 향한 김규형, 김현우(이상 디나모 자그레브)는 1군 진입을 위해 애쓰고 있고 황재환(FC쾰른), 박규현(베르더 브레멘, 이상 독일), 안재준(믈라다, 체코) 등도 경기 출전 기회를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김규형, 김현우 측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있지만, 현지에 잘 적응하고 있다. 감독이 바뀌는 등 변수가 있어 고민이 있지만, 1군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에 리그가 개막하고 출전 기회가 오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내 복귀 대신 현지에서 서로 의지하며 경험 쌓기에 승부수를 던졌다고 한다.
우리 프로 선수들의 진출이 많아지면서 현지 유학원이 본업을 넘어 축구를 얶여 사업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피해도 증가한다. 예를 들면 K리그에서 활약한 A선수가 유럽 강국 1, 2부리그에 진출했는데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준다. 유학원은 선수에게 선생님을 붙여 현지 언어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마케팅도 함께 한다. 선수가 성공해 더 높은 길을 가면 이를 바탕으로 선수 유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익 올리기에 나서는 방식이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 축구 관계자는 "선수 유학은 정말 깊이 있게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 명문팀 유스에 보내준다는 제안에 절대 신뢰를 주는 것은 금물이다. 알고 보면 지역 리그나 우리로 치면 일반 중, 고교 수준의 팀에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재도 한 선수에게서 분쟁이 일어났는데 도움을 요청해와 처리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라고 전했다.
해외 현지 업체는 축구협회가 단속하기 어렵다. 축구협회도 한 번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어느 나라에서 어떤 업체가 운영되는지 알기 어려워 애를 먹고 있다. 폐업을 신고하고 다른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최근에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축구 유학이 어려워지자 향후 백신이 개발되면 특정팀 유스팀에 자리가 많아진다며 미리 준비하라는 허위 홍보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소년의 희망을 어른들이 사기의 수단으로 활용해 꺾어 버리는 것이다.
국내 인구는 꾸준히 감소 추세라는 전망이 많다. 저출산으로 인해 축구 입문자가 귀해지는 곡선으로 향한다는 뜻과 같다. 선수 발굴, 육성 체계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유럽에서 활약하며 국가대표에 승선하는 제2의 손흥민, 이강인이나 K리그에서 이름을 떨치는 선수를 보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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