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보 "예능보다 행정가가 좋아.. K3 K4 리그 기대해주세요"
- 출처:조선일보 |20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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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홍명보(51)는 현재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활동하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4강 기적을 결정지을 당시 승부차기를 성공시키고 환하게 웃었던 그는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 섭외를 여러 차례 고사했다. 안정환 해설위원과 스포츠 각계 인사들이 나와 축구팀을 만들어가는 프로그램 섭외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강원FC와 FC서울의 2020시즌 K리그 1라운드 경기가 열린 춘천 송암스포츠타운에서 만난 홍 전무는 “사람들에게 축구로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 싶었지만, 축구 행정가로서 너무 가볍게 보여선 안되겠다는 책임감이 들어 고사했다”며 “TV 예능 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 플랫폼에서 활약하는 후배들을 보면 대견하면서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 스포츠계가 침체된 상황이지만, 홍 전무는 올해가 그 어느 때보다 기대된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 축구 생태계는 불완전했다. 잉글랜드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EPL)부터 아마추어 8부리그까지 승강제가 운영되는 것과 달리, 한국은 프로 1, 2부와 세미프로, 아마추어 리그가 각각 구분돼 운영됐다. 고교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는 선수 생활을 포기하는 일이 파다했고, 하위 리그로 갈 경우 프로 무대에 진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2013년 취임 후 ‘한국형 디비전시스템’ 마련 계획을 세웠다. 생활축구를 관리하던 생활축구전국연합회와 2016년 통합했고, 이듬해부터는 K5~7리그를 차례로 출범시켰다. 그리고 사실상 3부리그 역할을 했지만, 2부리그와의 승강제는 없었던 내셔널리그와 K3리그를 통합해 올해 K3, K4 리그를 출범시키며 유럽 리그 수준으로 디비전시스템을 완성했다.
홍 전무는 “모든 선수가 안정환, 박지성처럼 탄탄대로만 걷지는 않는다”며 “디비전시스템 완성을 통해 EPL 레스터시티의 제이미 바디처럼 20대 후반에 이르러 골 감각이 만개해 대표팀에 뽑히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국내 축구에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 선수뿐만 아니라 노장 선수들에게도 K3, K4 리그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홍 전무는 “해병대 출신으로 포항 스틸러스에서 활약했던 수비수 김원일은 올 시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김포시민축구단에서 뛰고 있다”며 “프로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더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고, 하위 리그 구단들은 노련한 노장 선수들의 노하우를 어린 선수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감독? 행정가? 나는 그냥 축구인”
현역 시절 ‘레전드’ 반열에 오른 선수들은 은퇴 후 지도자나 행정가의 진로 사이에서 고민한다. 둘 중 한 분야에서라도 성공을 거두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홍 전무는 “나를 감독으로 부르는 분도 있고, 행정가로 아는 분도 있지만, 나는 그냥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는 축구인”이라며 “좋은 방향으로 한국 축구가 ‘체질 개선’을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뿌듯한 일”이라고 했다.
홍 전무를 비롯한 2002 월드컵 멤버들이 각계 각층에서 ‘체질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있다. 모두 학창시절 ‘빠따’를 맞으며 운동을 배웠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홍 전무는 선수 시절 해외 리그 경험을 통해 국내 축구계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J리그에선 구단의 체계적인 선수 관리에 대해 배웠고,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LA갤럭시에선 감독-선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미국에서 정말 충격적이었던건 라커룸 문화였어요. 전반전에 경기가 풀리지 않으니까 선수랑 감독이 서로 비난하면서 싸우는데, 우리 나라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죠. 감독과 선수가 수평적인 위치에서 서로를 이해시키는 관계를 가질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걸 그때 배웠습니다.”
홍 전무의 꿈은 한국 축구대표팀이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뛰어넘는걸 보는 것이다. 홍 전무는 “수개월간 대표팀 합숙 훈련을 할 수 있었던 2002년과 지금은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2002년의 기적을 또 기대하긴 힘들 것”이라면서도 “이젠 유럽, 남미 대표팀처럼 세계 각지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표팀에 모여 기량을 발휘해도 강한 전력을 보여줄 수 있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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