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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출신 첫 NBA 전설, 올라주원
- 출처:스포츠한국|201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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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전까지 NBA는 매우 배타적인 리그였다. 미국 외의 선수들이 들어오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NBA에서 큰 족적을 남긴 나이지리아 태생 하킴 올라주원은 매우 이례적인 선수로 볼 수 있다. 물론 미국의 휴스턴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리그 입성 자체는 기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휴스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과정은 정말 당시로써는 적은 가능성들의 연속이었다.
되돌아보면 올라주원이었기에 그런 가능성들을 뚫고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일원이자 NBA 50주년인 1996년에 선정됐던 위대한 50인 일원이 될 수 있었던 대단한 18시즌 NBA 커리어를 보냈던 올라주원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리그의 대표적 스타로 떠오를 가능성을 보여준 조엘 엠비드(24·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비교대상으로 많이 꼽히는 과거 선수가 올라주원이다. 올라주원과 엠비드 사이에는 농구 기량을 떠나서도 재미있는 공통분모들이 있다.
만약 엠비드가 올라주원이 이뤘던 성과 근처에 도달하더라도 매우 성공적인 NBA 커리어라 칭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올라주원이 그렇게 큰 성과를 내는 동안 남겼던 숫자들은 무엇일까. 얼마나 큰 숫자들이 나왔을까.
▶엠비드와 비슷했던 미국 진출 과정
1963년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성장과정도 거친 올라주원은 17세 전까지 농구를 하지 않았던 축구 골키퍼였다. 아프리카 대륙 카메룬에서 태어났던 엠비드가 15세 전까지 농구가 아닌 배구 선수로서 활동했던 것과도 같다.
즉 두 선수 모두 아프리카 대륙 출신이면서 늦게 농구를 시작한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이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신체능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정말 빠른 속도로 농구 플레이 기술을 습득했다 볼 수 있다.
다만 카메룬인 NBA 선수 룩 음바아무테가 2011년 카메룬에서 열었던 캠프에서 발견했던 엠비드에 비교해 올라주원의 미국 진출은 그렇게 순탄하지 못했다. 휴스턴 대학 농구 감독 친구의 추천으로 테스트를 받으러 미국에 도착한 올라주원을 마중 나갔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올라주원은 청소년 시기에 몸담았던 축구가 큰 도움이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자신을 상징하는 그 돋보였던 풋워크와 함께 NBA 역대 3위인 커리어 경기 당 3.1블록을 기록했던 능력에 축구 골키퍼 시절이 크게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빅맨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득점 기술
커리어 1238경기를 뛰는 동안 올라주원이 던졌던 3점슛은 124회밖에 안 된다. 한 시즌 가장 많이 던졌던 적이 19회였다. 지난 한 시즌 동안에만 해도 총 214회, 경기 당 3.4회 3점슛을 던진 엠비드와는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포스트 플레이어로서 올라주원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득점 기술과 재능을 갖고 있었다. 외곽에서부터 수비수와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도, 포스트에서 수비수를 등진 상태에서도, 언제든 득점을 노릴 수 있었다.
초창기 시절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수비를 제치며 챙긴 돌파 득점, 경험을 쌓으며 완숙의 단계에 이른 포스트 풋워크로 수비수를 따돌리며 챙긴 득점 등 올라주원이 레이업이나 덩크로 연결시킨 멋진 장면들이 수도 없이 많다.
특히‘드림 셰이크(Dream shake)’라 불린 풋워크 및 페이크 조합 동작을 통해 포스트에서 수비수를 무력화시키는 과정은 올라주원의 대표적 기술이다. 은퇴 후 최근까지도 NBA 스타 선수들의 특별 과외를 맡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213cm의 신장 및 229cm 양팔너비를 이용해 수비수가 적극적으로 저항할 때도 주저 없이 슛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특히 수비를 등졌다가 턴어라운드 점프슛을 던질 때 그렇게 수비수와 멀어질 노력이 필요치 않았다.
올라주원의 득점 측면 전성기는 꽤 늦게 왔다. 30세를 넘기면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올라주원의 9년차 시즌이자 루디 톰자노비치 감독이 첫 82경기 시즌을 지휘했던 1992~93시즌부터 커리어 최고 득점들을 남겼다.
1992~93시즌부터 1995~96시즌까지 4시즌 연속 올라주원은 평균 25득점을 넘기는 가운데 매번 야투율 50% 이상을 기록했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정말 높은 숫자를 기록했다는 뜻이다.
▶역대 통산 블록 1위, 스틸 8위
역대 최고의 센터들 중 한 명으로서 올라주원을 꼽을 수 있는 이유로 득점 능력만을 꼽아서는 안 된다. 수비 진영에서도 정말 위력적인 선수가 올라주원이었기 때문이다.
큰 신장이었지만 올라주원은 대단히 날렵한 움직임을 보였다. 여기에다 긴 팔로 인해 수비에서 상대에게 큰 위압감을 줄 수 있었다.
이 같은 모습은 숫자로도 확실한 증거를 남겼다. 앞서 언급했듯이 커리어 경기 당 3.1 블록을 기록한 올라주원은 커리어 통산 3830블록으로 역대 1위에 올랐다. 이 뒤를 콩고 민주공화국 출신 디켐베 무톰보(3289블록)가 따랐다.
그리고 올라주원의 커리어 통산 2162스틸은 역대 8위에 올라 있다. 올라주원 앞의 선수들 7명 모두 가드 또는 스몰 포워드들임을 봤을 때 놀라운 기록이다.
커리어 평균 1.7스틸을 기록한 올라주원은 4시즌에 걸쳐 평균 2스틸을 넘겼다. NBA 역사에서 시즌 평균 2블록 및 2스틸 이상을 동시에 만족시킨 선수는 단 세 명이다. 최근부터 2005~06시즌 제럴드 월러스, 1991~92시즌 데이비드 로빈슨, 그리고 1987~88시즌부터 1990~91시즌까지 4시즌의 올라주원이다.
1992~93시즌 및 1993~94시즌 두 시즌 연속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됐던 올라주원은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5회, 세컨드 팀에 4회 선정됐다.
▶역대 3번째 쿼드러플더블
농구 기록 네 항목들에 걸쳐 두 자릿수를 기록했을 때 붙이는 명칭, 쿼드러플더블을 NBA 경기에서 남겼던 선수가 현재까지 총 4명이다. 1974~75시즌 네이트 서몬드, 1985~86시즌 앨빈 로버트슨, 1989~90시즌 올라주원, 1993~94시즌 로빈슨이다.
시간상 역대 3번째인 올라주원의 쿼드러플더블은 해당 시즌 3월29일(이하 현지시각) 밀워키 벅스를 상대로 40분 동안 뛰며 18득점 16리바운드 10어시스트 11블록을 통해 나왔다.
올라주원이 커리어 1238경기 중 각 부문 두 자릿수 기록한 것으로 득점 부문 1132경기, 리바운드 부문 790경기, 블록 부문 11경기, 어시스트 부문 5경기다. 쿼드러플더블 경기를 제외하고 득점 및 리바운드에 더해 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한 경기가 4경기라면 블록으로 작성한 경기가 9경기다.
▶4대 센터들 중 가장 빠른 우승
1984년 드래프트 1순위 올라주원에 더해 1985년 1순위 패트릭 유잉, 1987년 1순위 로빈슨, 1992년 1순위 샤킬 오닐은 1990년대를 수놓으며 흔히 4대 센터로 불린다. 그리고 이 4명 중 유잉을 제외한 3명 모두 NBA 파이널 우승을 차지해봤다.
그 중 올라주원이 휴스턴 로켓츠 소속으로서 1993~94시즌 및 1994~95시즌 가장 빠른 시기에 우승을 맛봤다. 더욱이 그 두 시즌 동안의 플레이오프에서 나머지 스타 센터들을 만나 맞대결 우위를 남겼다.
유잉을 상대로는 1984년 전미 대학 농구 결승에서 맞서 패했던 복수를 확실하게 했다. 로빈슨 상대로는 전 시즌 MVP이었다가 해당 시즌 MVP를 로빈슨에게 뺏겼던 복수를 확실히 했다. 당시 동료 로버트 오리는 올라주원이 전에 보여주지도 않았던 움직임들을 로빈슨 상대로 펼쳤다고 밝혔다.
훗날 3연속 포함 4회 우승을 차지했던 오닐은 1994~95시즌 파이널에서 4연패 스윕으로 물러나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자부심이 유독 강한 오닐이 올라주원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던 이유다.
▶첫 외국 태생 MVP
1993~94시즌 평균 27.3득점 11.9리바운드 3.6어시스트 1.6스틸 3.7블록을 기록했던 올라주원은 시즌 MVP에 선정됐다. 생애 단 한 번의 MVP 수상이었지만 올라주원은 그 MVP 수상으로 NBA 역사에서 최초로 남은 MVP 수상 이력들을 남겼다.
우선 동일 시즌에 시즌 MVP, NBA 파이널 MVP, 올해의 수비수, 세 부문에 동시 선정된 유일한 사례다. 그리고 역사 최초로 외국 태생으로서 MVP에 선정됐다. 이후 팀 던컨, 스티브 내쉬, 덕 노비츠키가 추가됐다.
올라주원을 설명할 업적들은 정말 많다. NBA 역사 위대한 50인, 농구 명예의 전당, 올림픽 금메달, 2연속 NBA 파이널 우승 등 NBA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런 선수가 미국 땅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어린 시절을 보내지도 않았음에도 나타났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엠비드에게 쏟아지는 기대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커리어 황혼기를 제외하면 올라주원은 건강에 있어 매우 안정된 시즌들을 보냈다.
아프리카 대륙은 여전히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지 못한 형세다. 때문에 자체적으로 뛰어난 농구 선수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올라주원을 필두로 NBA에서도 위력을 뿜어낼 수 있는 원석들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오랜 세월 NBA 리그를 주름잡아왔던 스타들의 근원적 뿌리가 아프리카 대륙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