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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향해 .. 25세 김행직, 거침없는 직행
- 출처:중앙일보|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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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아침 인천 계양구 작전동의 한 당구장.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계산대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식사 도중 첫 손님이 들어오자 당구공을 건넸다.
청년은 식사 직후 당구대로 가 스리쿠션을 치기 시작했다. 묘기가 속출했다. ‘당구의 신’이 있다면 그처럼 칠 것 같았다. 청년의 이름은 김행직(25). 현재 지구촌에서 스리쿠션을 가장 잘 치는 선수다. ‘김행직 당구클럽’이라는 이름의 당구장은 그의 직장 겸 훈련장이다.
김행직은 지난 1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스리쿠션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지난 7월 포르투갈 월드컵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우승이다.
월드컵은 전 세계를 돌며 연간 6차례가량 열리는데, 고수 100여명만 출전한다. 1986년 첫 대회가 시작된 이래, 두 대회 연속 우승자는 ‘4대 천왕’으로 불리는 토브욘 브롬달(55·스웨덴), 딕 야스퍼스(52·네덜란드), 다니엘 산체스(41·스페인), 프레데리크 쿠드롱(49·벨기에) 등 넷뿐이다.
스리쿠션은 수구(手球·공격자의 공)를 큐로 쳐 제1 적구(的球)와 제2 적구를 맞히는 동안 당구대 사면에 3회 이상 닿아야 하는 경기다. 40점을 먼저 내면 이긴다. 당구선수는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30대에 만개하는데, 김행직은 중2 때 전국성인대회에서 우승했다. 모교인 수원 매탄고는 그를 위해 당구부까지 창단했다. 그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4차례 우승했다.
김행직은 이름부터 당구를 칠 운명이었다. 그는 “행직(幸直)이 원래 ‘바르고 곧게 살라’는 뜻이다. 당구가 직선 게임 아닌가. 당구를 칠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5살 때 아버지의 당구장에서 처음 큐를 잡았다.
당구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김행직은 2011년 독일 분데스리가 1부리그 1위팀 호스터에크에 입단했다. 그는 “당구를 잘 치고 싶었다. 하이델베르크 집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에센의 당구장에서 연습했다. 하루에 당구를 20시간이나 친 적도 있다. 연봉 없이 경기 수당으로 20만원쯤 받았는데 차비 정도였다. 그래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팬들은 “김행직의 경우 축구로 치면 메시(30·아르헨티나)와 호날두(32·포르투갈)에 이어 전 세계 ‘넘버3’인 네이마르(25·브라질)급”이라고 평가한다. 일각에서는 기존 4대 천왕에 김행직을 포함해 ‘5대 천왕’이라고도 부른다. 그는 "난 그들(4대 천왕)과 비교하면 100분의 1도 안 된다. 이제 기어가기 시작한 정도”라고 자신을 낮췄다.
‘4대 천왕’ 중 브롬달은 창의력, 산체스는 스트로크가 좋다. 또 야스퍼스는 인간 줄자, 쿠드롱은 세계 최고 공격수로 불린다. 나근주 대한당구연맹 과장은 "(김)행직은 하이런(한 이닝 연속 최다 점)보다는 공타 없는 꾸준한 경기 운영이 강점이며, 항상 냉정하다”고 평가했다.
스리쿠션의 경우 세계 30위 안에 한국 선수가 8명이나 있다. 김행직은 가장 높은 세계 3위다. 그는 "유럽은 당구장이 도시마다 한두 개 정도인데, 우리는 큰 건물마다 한 개씩 있다. 당구를 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서로 경쟁해 실력이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당구 인프라는 세계 최고다. 당구장이 전국에 2만2655개로 체육시설 중 1위다. 하루 평균 이용자도 160만 명으로 추산된다.
과거 당구장은 뿌연 담배 연기와 배달 짜장면을 연상시키는 동네 건달의 아지트였다. 원래 당구는 17세기 프랑스의 귀족 스포츠고, 조선 순종황제도 당구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김행직은 "요즘은 당구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긴다. 치매 예방 효과도 있고, 네 명이 1시간을 즐겨도 1만원 정도라 부담도 적다. 올해 12월부터는 ‘당구장 내 금연법’도 시행되기 때문에 아이들도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에서 총상금 2억4000만원(우승상금 8000만원)인 LG U+컵 3쿠션 마스터스가 열리긴했지만, 보통 월드컵 우승상금이 1000만원 정도다. 김행직은 "국내에도 당구만 쳐서 먹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당구로 국위를 선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 볼리비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지난해에는 산체스에게 우승을 내줬다. 그는 "세계선수권 우승과 세계 1위를 향해 쭉쭉 직행하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