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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형열의 사커라운지]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길잃은 최순호 감독
- 출처:스포츠경향|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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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축구인은 최순호 포항 감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상주의자다. 예를 들면 우리 수준이 3인데 5, 6을 얘기할 때가 있다. ”
최근 포항을 보면 최순호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포항은 지난 10일 대구와의 경기에서 1-2로 졌다. 지난달 20일 인천에 0-2로 진 데 이어 2경기 연속 하위권 팀에 덜미를 잡혔다. 최근 10경기서 1승3무6패로 하락세가 뚜렷하다. 5월21일 7승1무4패 승점 22로 제주에 1점 뒤진 2위를 찍은 이후 16경기서 승점 12(3승3무10패)를 쌓는 데 그쳤다. 2위였던 순위도 7위까지 밀려났다. 상위 스플릿의 마지노선인 6위 강원(승점 40)과의 격차도 점점 크게 느껴진다.
오히려 하위권 팀의 추격을 신경써야 하는 초라한 신세가 된 게 현실이다. 5월21일 당시 13점 차가 났던 대구는 이제 4점 차로 따라붙었다. 14점 차였던 인천에도 7점 차로 쫓기게 됐다.
포항의 추락엔 주전 센터백 김광석의 부상 탓이 컸다. 김광석이 갑작스러운 발목부상으로 7월8일 전남전부터 결장한 이후 포항의 수비는 급격히 불안정해졌다. 양동현에게 집중된 공격의 다변화를 꾀하기 위해 여름이적시장에서 영입한 김승대가 비디오판독시스템(VAR)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으로 7경기 출전 정지를 당한 것도 포항의 발목을 잡았다. 김승대는 9월24일 서울전까지 뛰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 포항의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최순호 감독의 독특한 축구 철학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최 감독은 지난 6월24일 제주전에 전북전에 총력을 기울인다며 양동현 등 일부 주전들을 빼고 나섰다가 0-3 완패했다.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한 로테이션 차원이라고 하지만 당시 제주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하며 흔들리고 있던 때여서 납득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어진 전북전에서도 1-3으로 무너지며 포항의 상승세는 완전히 꺾이게 된다. 많은 축구인들이 그때를 변곡점으로 지적한다.
7월22일 제주전에서는 상대가 한 명 퇴장당했는데도 벤치에 있던 완델손을 끝내 투입하지 않다가 인저리 타임에 결승골을 내주고 2-3으로 졌다.
스트라이커 양동현 맞춤 전술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 감독은 양동현에게 수비 부담을 덜어주며 득점에만 집중하도록 배려해주고 있다. 김승대를 영입했을 당시 최 감독이 “제로톱을 생각한 적은 없다. 관심을 가진 적도 전혀 없고, 앞으로 할 생각도 없다”고 공언한 것도 양동현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줬다. 양동현은 15골을 터뜨리며 기대에 부응하고 있지만 미드필더와 수비진에게 부하가 많이 걸리면서 전체적인 밸런스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포항은 28경기에서 38골을 넣고 44골을 내줘 골득실이 -6이다. 짧은 담요로 머리를 덮었더니 발밑이 시린 경우다.
김세윤 축구평론가는 “축구는 골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며 “특히 현대축구는 윙어나 미드필더의 득점력이 굉장히 중요해지고 있는데 스트라이커 중심의 공격 전술은 뭔가 최신 흐름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최 감독이 제로톱 가능성을 일축한 것에 대해서도 “감독 자신의 철학도 필요하지만 선수와 상호 작용을 통해 적절한 전술적 변화를 꾀하는 오픈된 마인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수 기용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감독이 룰리냐와 무랄랴, 완델손 등 외국인 선수 3인방을 한꺼번에 기용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무랄랴는 90분 풀타임을 뛴 게 9경기이고 나머지는 주로 후반 교체멤버로 투입됐다. 완델손도 마찬가지다. 1경기를 빼놓고 9경기에서 교체멤버로 나섰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이래준을 최근 2경기서 공격수로 투입한 것도 논란거리다.
포항 관계자는 “이래준이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최 감독이 젊은 시절의 자기와 유사하다고 본 것 같다”면서 “헤딩을 비롯해 공격쪽에 재능이 있는 걸 보고 포지션 변경을 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축구인은 “선수 기용에서 ‘의외다’ ‘변형적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본다”면서 “(최 감독이)자기 나름의 뭔가를 찾으려고 하는 시도이겠지만 돌파구를 엉뚱한 데 가서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감독의 결정이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선수들도 힘을 받기가 힘들어진다.
김세윤 평론가는 “축구는 순간적인 스프린트, 작은 움직임을 통해 골을 넣을 수도, 막을 수도 있는데 선수들의 그런 내면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야 하는 사람이 바로 감독”이라면서 “상호간에 신뢰가 떨어지면 그런 작은 움직임들이 사라지게 되고 그래서 더욱 경기력이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사실 최 감독에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포항에서 처음 감독을 맡았을 때,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강원 지휘봉을 잡았을 때도 최 감독은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삼세번에 나선 지금도 상황은 좋지 못하다. 최 감독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긍정적인 요소는 아직 되돌릴 만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포항이 이대로 무너진다면 최 감독 본인을 위해서도, 명문 포항을 위해서도, K리그를 위해서도 너무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