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야구 경기에서 4번 타자가 투수로 둔갑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롯데는 16일 고척돔에서 벌어진 넥센과의 시즌 6차전 1회말 수비에서 4번 타자 이대호를 어이없는 실수로 잃었고, 이후 빈공 끝에 결국 패하고 말았다. 주중 3연전에서 KIA에 전패를 당했던 롯데는 이날 패배로 4연패 수렁에 빠졌다.

시작은 좋았다. 최근 쾌조의 타격감을 뽐내고 있는 전준우가 넥센 선발 브리검으로부터 선두타자 홈런을 때려내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연패 중인 롯데 벤치와 시즌 첫 선발 등판 기회를 잡은 노경은에게도 의미가 있는 한 방이었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길게 가지 못했다. 1회말 수비에서 2번타자 이택근의 땅볼로 선행 주자가 아웃된 후 3번 서건창이 들어서기 전에 넥센 장정석 감독이 무언가 항의를 하기 위해 그라운드에 나섰다.

특별한 판정 시비가 없었으므로 현장에서 중계를 하는 중계진마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넥센 벤치의 항의는 롯데가 제출한 라인업과 다르게 수비에 나왔다는 것이었다.

경기 전 롯데가 제출한 라인업에는 3번 최준석이 지명타자, 4번 이대호가 1루수로 명시돼 있었다. 이는 게임 시작 전 구장 전광판이나 KBO에서 제공하는 문자 중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회말 수비에서 롯데 1루수로 나왔던 것은 이대호가 아닌 최준석이었다. 롯데 조원우 감독은 평소와 달리 지명타자 이대호, 1루수 최준석이라는 라인업을 구상했으나, 오더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기고 만 것이다.

문제는 이미 롯데의 수비가 진행된 것에 있었다. 규정대로 지명타자 최준석이 1루수로 수비위치를 변경한 것으로 진행을 해야만 했다. 지명타자가 소멸되고 해당 타순에는 투수 노경은이 들어서야 했다. 경기 후반 지명타자가 수비에 들어섰을 때나 간혹 볼 수 있는 투수의 타선 배치가 경기 초반부터 나오게 된 것이다.

팀 내 최고 타자가 어이없는 실수로 1회말 사라진 상황에서 승리를 거두려는 것은 욕심이었다.

그간 부진하던 노경은이 넥센 타선을 상대로 6회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등 깜짝 호투를 펼치며 반등의 기회를 만드나 싶었지만 롯데는 한 템포 늦은 투수 교체와 구원 투수 장시환의 블론으로 결국 1-2로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사실 롯데 벤치와 선수단에게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앞서 언급했듯 고척돔의 전광판에는 경기 시작 1시간 전 3번 지명타자 최준석, 4번 1루수 이대호라고 표기돼 있었다. 전광판 라인업을 단 한번이라도 확인했으면 ‘4번 타자’ 노경은이라는 어이없는 촌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롯데 자이언츠는 열성적인 팬덤을 보유한 인기 구단이다. 성적과 상관없이 경기장을 찾아 꿋꿋하게 성원을 보내는 팬들이 많다.

일주일 전 울산에서 펼쳐진 주말 3연전에서도 첫날 무기력한 패배를 당했지만 주말 경기에 더 많은 팬들이 찾아와 열렬한 응원을 펼쳤다. 팬들의 간절함이 힘이 된 덕분인지 롯데는 강팀 두산에 2승을 내리 따내며 위닝시리즈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16일 경기처럼 어이없는 실수로 경기를 내주게 된다면 아무리 열정적인 팬이라도 실망할 수밖에 없다. 2년차에도 이렇다 할 장점을 보이지 못하는 ‘조원우 롯데호’에 대한 팬들의 시선이 점점 싸늘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