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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겨여왕 김연아, 2008년 이후 9년의 발자취
- 출처:스포츠동아|20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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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가 첫 발을 내디딘 2008년은 김연아(27)가 세계피겨스케이팅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기 시작한 해다. 물론 그는 2006~2007시즌 시니어무대에 데뷔하자마자 두각을 드러냈다. 2007~2008시즌에는 쇼트프로그램(이하 쇼트) ‘박쥐 서곡’과 프리스케이팅(이하 프리) ‘미스 사이공’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전 세계에 ‘피겨여왕의 대관식’이 열린 건 2008~2009시즌부터였다.
김연아는 2008~2009시즌 매혹적인 쇼트 ‘죽음의 무도’와 신비스러운 프리 ‘세헤라자데’로 그랑프리 2개 대회, 4대륙선수권대회, 2009년 피겨세계선수권대회까지 세계무대를 휩쓸었다. 비록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쇼트에서 1위(65.94점)를 하고도 프리에서 120.41점(2위)을 기록하며 당시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일본)에게 정상을 잠시 양보했지만, 2009년 3월 열린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꿈의 200점’(총점 207.71점)을 돌파하며 1위를 탈환했다.
김연아의 기술력과 표현력은 시간이 갈수록 농익어 갔다. 올림픽 시즌이던 2009~2010시즌에는 정점을 이뤘다.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섹시한 본드걸로 변신한 쇼트 ‘제임스 본드 메들리’(78.50점)와 서정적이지만 섬세한 프리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150.06점)로 한국 피겨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당시 그가 기록한 총점 228.56점은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러시아)가 올해 1월 유럽피겨스케이팅선수권에서 229.71점을 기록하기 전까지 무려 7년간 깨지지 않을 만큼 경이로운 점수였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던 김연아는 2011년 세계피겨선수권대회를 끝으로 휴식기에 돌입했다. 어릴 때부터 오직 올림픽 금메달 하나만 보고 직진했던 삶이었다. 그러나 막상 꿈을 이루고 나니 허무함이 밀려왔다. 더 이상 스케이트를 해야 할 동기부여를 찾지 못해 쉼표를 찍기로 했다.
김연아가 다시 얼음 위로 돌아온 것은 2012~2013시즌이었다.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을 은퇴무대로 결정하고 다시 스케이트화끈을 조인 것이다. 올림픽 2연패가 점쳐졌지만 결과는 은메달이었다. 석연찮은 판정이 논란을 일으켰지만 정작 본인은 담담했다. 그는 복귀를 결정했을 때부터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시 설 수 있을까’ 스스로 물음표였던 얼음판 위에 섰고, 선수라면 누구나 밟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 올림픽에서 현역생활을 마무리한다는데 의의를 뒀다.
‘피겨여왕’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쇼트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와 프리 ‘아디오스 노니노’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는 마지막 인사였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체력이나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틴 것은 그동안 자신을 아낌없이 응원해준 팬들을 향해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김연아는 은퇴 후 평범한 삶을 살았다. 대학원에 진학해 학생으로 살았고, 피겨 후배들의 조력자로 조용히 활동했다. 노래, 춤 여러 가지 재능이 많은 그에게 연예계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스포츠인으로서 한국 빙상 발전을 위해 묵묵히 움직이고 있다.
그는 신중한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지만 존재감은 어디서든 빛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홍보대사로 활발히 활동하며 평창을 알리는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등 사회공헌활동에도 앞장서며 진정한 여왕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