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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세 빅리그 2년차' 오승환 "25살 때보다 지금 내가 더 강하다"
- 출처:연합뉴스|2016-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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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구원왕 하고 싶지만, 캠프에서 팀내 마무리 경쟁부터"
"은퇴 시기조차 생각한 적 없어…나는 낙관적인 사람"
"어떻게 구위가 더 좋아질 수 있어."
2014·2015년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에서 함께 뛴 후쿠하라 시노부(40)와 안도 유야(39)가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물었다.
오승환은 "그냥 웃어넘겼다"고 했다.
후쿠하라와 안도는 한신 중간 계투로 나서며 마무리 오승환의 구위를 직접 확인했다.
2016년 미국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오승환은 더 좋은 공을 던졌다.
최근 오승환은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후쿠하라와 안도를 만났다. 올 시즌을 끝나고 은퇴한 후쿠하라와 불혹을 앞둔 투수 안도에게도 ‘구위가 더 좋아진 30대 중반의 투수‘가 신기했다.
사실 오승환은 올해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던지던 구종을 그대로 활용했고, 예전만큼 집중했는데…"라고 골똘히 생각하던 오승환은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훈련하고 경기를 준비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최선을 다해도 안 될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해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모범 답안‘을 내놨다.
최선을 다한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 76경기에 나서 79⅔이닝 6승 3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1.92를 기록했다.
2015년 일본프로야구에서 63경기 2승 3패 41세이브 평균자책점 2.73을 기록하며 센트럴리그 구원왕을 차지할 때보다 기록이 더 좋아졌다.
한 단계 더 높은 리그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또 한 번의 도약에 성공했다.
메이저리그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는 오승환을 3일 서울시 광화문에서 만났다.
야구 인생의 가장 큰 위기였던 고교 시절 기억까지 더듬던 오승환은 시선을 미래로 돌렸다.
"나는 멀리 내다보지 않는다. 은퇴 후 계획 같은 것도 생각한 적이 없다"는 그는 "지금 내 최대 관심사는 ‘2017시즌‘이다. 시즌 때는 다음 경기를 생각했다. 내일을 떠올리며 오늘 준비하는 게 내 삶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했다.
◇ "다시 경쟁 시작…구원왕은 시즌 중에 세워야 하는 목표" =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 중간 계투로 시작한 오승환은 7월부터 마무리 투수로 승격했다.
기존 마무리 트레버 로즌솔이 흔들리면서 오승환에게 기회가 왔다.
2017년 세인트루이스 마무리도 오승환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오승환은 "안심하면 놓친다"고 했다. 그는 "스프링캠프에서 다시 경쟁해야 한다. 세인트루이스에는 좋은 구원 투수가 많다. 내가 흔들리면 마무리 자리는 다른 선수에게 넘어간다"고 스스로 다그쳤다.
한국과 일본에서 구원왕을 모두 차지한 오승환은 ‘한미일 구원왕 등극‘의 포부로 팀 내 경쟁을 끝낸 뒤에야 가슴에 품으려 한다.
오승환은 "일단 마무리 경쟁에서 이겨야 세이브 기회에 등판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세이브 기회는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다. 정말 기회가 온다면야 나도 구원왕에 오르고 싶다. 하지만 시즌도 시작하기 전에 구원왕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승환은 미국에서도, 한국·일본에서처럼 "블론 세이브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실패를 줄이면 자연스럽게 성공에 가까워진다. 오승환은 한국과 일본에서 그렇게 마무리 투수 성공 시대를 열었다.
"한 시즌 했는데 성공이란 평가는 이르다"고 몸을 낮추던 오승환도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을 치르고 나니 ‘참고 자료‘가 많아졌다. 조금 더 편안해진 부분은 있다"고 했다.
계약 만료에 대한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 오승환은 세인트루이스와 1+1년 최대 1천1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올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오승환은 "야구장에서 뭔가를 보여주면 선택지가 많아진다. 또 에이전트(김동욱)가 늘 최상의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야구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은 계약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라고 또 ‘최선‘을 강조했다.
◇ "메이저리그에서는 강속구 투수 아니에요" = 오승환은 "아버지도 ‘예상보다 잘했다‘고 하셨다"며 웃었다.
메이저리그는 더 놀랐다. 오승환의 구위를 칭찬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제 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정상급 불펜 투수로 평가받는다.
오승환의 주 무기는 직구다. 메이저리그는 오승환의 묵직한 ‘돌직구‘에 주목했다.
하지만 오승환은 "메이저리그에서 나는 강속구 투수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오승환의 직구는 ‘묵직함‘과 ‘구속‘ 모든 면에서 주목받았다.
미국에서는 아니다. 오승환의 올 시즌 직구 평균 구속은 시속 93.12마일(약 150㎞)이다. 메이저리그 투수 평균인 시속 93.04마일보다 조금 빠르다.
오승환은 "(시속 170㎞까지 던지는) 아롤디스 채프먼을 보라. 내 직구를 ‘강속구‘라고 부를 수 없다"며 "빠른 공을 자주 친 타자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상대하면 실패할 확률이 커진다. ‘더 정확한 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힘과 힘의 대결이 펼쳐지는 메이저리그에서, 오승환은 세밀함을 더했다. 제구가 더 날카로워지면서 직구 구사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다.
오승환은 "살아남으려면 같은 직구로도 위·아래, 좌·우를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만큼 신경을 쓰니 실제로 제구가 좋아졌다"며 "시즌 내내 직구는 자신 있게 던졌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제대로 던졌다고 생각한 직구가 장타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았다"며 "야구는 생각보다 어려운 종목"이라며 웃었다.
◇ "3년의 해외 생활…그리움은 야구로 잊는다" =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에서 9년(2005∼2013년) 동안 뛴 오승환은 이후 국외 리그로 나가 2년씩 계약을 했다.
일본에서 2년, 미국에서 1년을 보내는 사이 한국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오승환은 "나도 한국 사람이다. 당연히 한국 음식과 한국 사람이 그립곤 했다"고 떠올렸다.
그리움을 지우는 건, 야구다. 오승환은 "야구가 안 될 때 생각이 많아지고, 그리움도 커진다. 그리고 그리움에 휩싸이면 야구가 안 풀린다"며 "결국 야구로 다 잊어야 한다. 야구에 집중하면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줄어든다"고 했다.
가까운 일본에서 먼저 국외 생활을 경험한 것도 오승환에게는 도움이 됐다. 오승환은 "일본에서 지내면서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한국과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번 타국 생활을 해보니, 미국 생활에도 적응하기가 한결 수월했다"고 밝혔다.
타국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더 반갑다. 오승환은 "메이저리그에서 함께 뛰는 한국 선수들과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격려했다. 경기장에서 만나면 더 반가웠다"고 했다.
그러나 오승환이 다른 코리언 메이저리거에게 연락을 끊을 때가 있다. 해당 선수가 부진에 빠졌을 때다.
오승환은 "야구가 안 풀릴 때는 침묵이 위로일 때가 있다. 그럴 땐 모르는 단어만 들리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오승환에게도 블론 세이브나 패했을 때 연락을 끊어야 할까. 오승환은 "나는 잘 잊어버리고 털어내는 편이라 괜찮다. 블론 세이브를 해도 연락주시라"고 했다.
◇ "미국에서도 불펜 투수 가치 점점 높아지는 추세" = 오승환은 한국에서 뛸 때 "불펜 투수가 더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한다"고 자주 말했다.
KBO리그에서 불펜의 가치는 점점 상승한다. 구원 전문 정우람(한화 이글스)은 지난해 4년 84억원에 FA 계약을 했다. 정상급 구원 투수는 선발 못지않은 대우를 받는다.
오승환은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채프먼이나 켄리 얀선만 봐도 메이저리그에서 구원 투수가 얼마나 인정받는지 알 수 있다"며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도 구원 투수를 적극 활용하는 장면을 봤다. ‘선발 야구‘를 펼친다는 미국에서도 불펜 활용도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인트루이스는 대표적으로 불펜 강화를 추구하는 팀이다. 오승환을 영입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승환은 "마이크 매서니 세인트루이스 감독님은 KBO리그 감독님들처럼 계투 작전을 자주 쓴다"고 했다.
불펜 야구가 조금씩 확대되다 보니, 불펜진의 핵 오승환은 혹사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오승환은 올해 프로 생활 시작 후 가장 많은 79경기에 나섰다.
오승환은 "혹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2이닝을 던진 적도 있고(5차례), 1이닝을 넘긴 적은 자주 있었지만 무리한 등판은 아니었다. 더그아웃에서 투구 수를 철저하게 계산했다"며 "팀에서 내게 원하는 게 그 정도 이닝을 제대로 막아주는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힘들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손을 내저었다.
"많이 던져도 지치지 않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가 팀 동료 사이에서도 나왔다.
오승환은 "한국에서 4이닝 던진 적도 있다"고 말하며 동료들을 더 놀라게 했다. 오승환은 "특별한 상황(2013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던지긴 했지만, 마무리 투수가 4이닝을 던진 적이 있다는 얘기에 미국 선수들은 많이 놀라더라. 반응이 재밌었다"라고 전했다.
◇ "25살 때보다 지금이 더 강하다" =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모두 마무리 성공 시대를 연 오승환도 아픈 기억이 있다.
오승환은 경기고를 졸업할 때 프로에 지명받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 또래보다 빠른 공을 던졌던 그는 고등학교 때 오른 팔꿈치에 탈이 났다.
오승환은 "실력도 없었는데, 아프기까지 했다"고 떠올렸다.
2001년 단국대에 진학한 오승환은 그해 11월 오른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당시 강문길 단국대 감독은 오승환에게 "야구 경기도 보지 말라"고 했다. "공을 보면 다시 던지고 싶어져서 무리할 것 같았다"는 게 스승의 판단이었다.
오승환은 묵묵히 재활에 힘썼다.
강 전 감독은 "승환이에게 ‘이제 좀 쉬어라‘라고 말하면 ‘네‘하고 돌아서서 또 훈련하더라.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뎠다"고 대견해 했다.
수술과 재활을 견딘 오승환은 단국대 3학년 가을부터 마운드에 섰고, 2005년 삼성 라이온즈에 2차 1라운드(전체 5번)로 입단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오승환은 1982년 동기들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이대호(전 시애틀 매리너스)보다 한참 뒤처졌다.
오승환은 "고교부터 알고 지낸 사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급‘이 달랐다"고 털어놨다.
몇 걸음이나 늦게 출발했지만, 올해 오승환은 추신수, 이대호와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오승환은 "친구 3명이 메이저리그에서 같이 활약하는 건 말도 안 되는 확률 아닌가"라며 "메이저리그에서 첫 세이브를 할 때도 담담했는데 추신수와 이대호를 미국에서 볼 때는 가슴 벅차고, 신기했다"고 했다.
그는 "결국 대학 4년이 지금의 나를 만든 기반이었다. 한경진 원장님을 만나서 수술과 재활을 잘 견뎠다"며 "수술을 받을 때 ‘이젠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라고 긍정적인 생각만 했다. 그런데 실제로 수술 후 구속도 올랐다. 그 덕에 나는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몸‘을 대하는 태도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오승환은 "25살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건강하다"고 했다.
2017년 35살에 메이저리그 두 번째 시즌을 치르는 오승환은 "30대 중반의 투수가 아닌, 2년 차 젊은 투수로 봐주시라. 은퇴 시기조차 생각해본 적 없다. 건강하게, 오래 야구할 생각"이라고 ‘건강한 미소‘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