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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 323명 중 女 56명… 상금 1억 이상은 단 1명
출처:문화일보|20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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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바둑

올해 3월 이세돌(33)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펼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그리고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박보검이 연기한 천재 프로바둑기사 최택을 통해 바둑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프로기사의 세계는 화려하게 비친다. 이세돌 9단은 올해 상반기에만 상금 6억7000만 원을 받았다. 이창호 9단을 모델로 한 최택은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국내외 기전을 휩쓸며 거액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억대의 상금은 ‘소수’의 몫. 특히 여자바둑은 상대적으로 저변이 취약하고 대회 수가 적기에 수입뿐 아니라 승단 등에서 남자보다 불리하다.

국내 프로기사는 모두 323명. 남자가 267명이고, 여자가 56명이다. 지난해 상금 1억 원 이상을 넘긴 기사는 14명이며, 여류기사는 최정(20) 6단이 유일하다. 상금 랭킹 30위 정도까진 상금 수입에 의존해 바둑에 전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 중에는 최정 6단 외에 30위 안에 드는 기사가 없다. 최근 들어 여류기사들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바둑 대중화에 앞장서며 붐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달 27일엔 국내 첫 여성 개인 리그전인 제1회 ‘꽃보다 바둑 여왕전’이 출범하는 등 ‘인프라’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꽃보다 바둑센터’에서 김신영(25) 초단과 문도원(25) 3단을 만났다. 김 초단과 문 3단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바둑에 푹 빠졌다. 김 초단은 아버지가 바둑 학원을 운영해 자연스럽게 바둑과 친해졌고,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바둑기사의 길을 걷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문 3단은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 언니와 함께 바둑 학원에 다니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프로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문 3단과 김 초단은 초등학교 6년 때 바둑 영재로 인정받아 한국기원 연구생이 됐고 문 3단은 17세이던 2008년, 김 초단은 21세이던 2012년 입단했다. 입단하기까지 살얼음판을 걸었다. 지난해까지는 매년 15명이 프로의 꿈을 이루는데 이 중 여자기사는 2명에 불과했다. 연구생 시절에는 바둑이 친구였다. 평일에는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도장에서 바둑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연구생리그를 치러야 한다. 문 3단은 “중·고교 시절에는 체육특기자로 분류돼 학교 나갈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을 인정해 줬다”며 “초등학교 시절을 빼면 학교 친구들과의 추억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어떨 때는 감옥 같은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바둑이 늘 재미있었기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 김 초단은 “일반 학생들은 고3을 1년 겪지만 한국기원 연구생은 매년 입단대회를 치러야 하기에 매년 수험생이 된다”고 귀띔했다.

여자기사의 공식 대회는 한국여자바둑리그, 여류명인전, 여류국수전 등 3개에 불과하다. 개인전은 여류명인전과 여류국수전 2개뿐이다. 여자바둑 대회 수가 적은 건 여류기사층이 얇고, 또 일반 대회와 달리 스폰서의 관심이 낮기 때문이다. 남자기사들과 겨루는 일반 기전에 출전할 수 있지만, 일반 기전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기량의 여자기사는 1∼2명 정도다. 꽃보다 바둑 여왕전 탄생은 그래서 무척 반가운 일이다. 성인에게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 2014년 문 3단 등 여류기사들이 문을 연 꽃보다 바둑센터가 꽃보다 바둑 여왕전을 후원한다. 김 초단의 ‘제자’가 꽃보다 바둑센터 운영을 돕겠다는 뜻을 전하자 김 초단은 “여자기사들이 대국 경험을 쌓을 기전이 부족하니 여자바둑대회를 신설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해 꽃보다 바둑 여왕전이 출범하게 됐다. 김 초단의 제안을 받은 김양국 아이컴포넌트 대표가 고교, 대학 동기인 김달수 티엘아이 사장, 김승규 현대시트 대표와 상의한 뒤 함께 대회 상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들은 모두 아마 4∼5단 실력을 갖춘 바둑 애호가들이다. 여자개인전으론 국내에서 처음으로 리그를 펼친다는 게 가장 큰 특징. 김 초단은 2015년 여류국수전 준우승, 2016년 여자바둑리그(단체전)를 우승했다. 문 3단은 2011년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에서 7연승을 거뒀고, 프로 입문 9년 차의 관록을 갖췄다. 지난달 27∼29일 열린 꽃보다 바둑 여왕전 예선전은 김 초단의 경우 8월 초 이후 거의 두 달 만에, 문 3단은 7월 중순 이후 두 달 반 만에 치른 공식 대국. 김 초단은 마지막 판을 패하면서 아깝게 탈락했다. 김 초단은 “오랜만이어서 조금 긴장했나 보다”며 “결승까지 진출하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문 3단은 “본선에 올랐으니 우승을 노려보겠다”고 다짐했다.

여류기사가 늘고, 여류기사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여자바둑의 수준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 여자바둑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지면 바둑이 남성의 전유물이란 선입견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 초단은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들에게는 피아노를 가르치고, 남자아이들에게는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처럼 바둑 역시 남자용으로 생각한다”며 “그런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기원에서도 여자바둑 발전을 위해 올해부터 여자기사 입단자를 4명으로 늘렸다. 이 때문에 한 해 입단하는 프로기사는 이제 17명이 됐다. 장혜령(19) 초단과 김민정(16) 초단이 지난달 여자입단대회를 통해 이미 선발됐고, 추가로 2명이 더 입단하게 된다. 2015년부터 성공적으로 열리고 있는 한국여자바둑리그에 원활히 선수를 공급하려면 여자입단자 증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여자기사들이 늘어나면서 프로기사 커플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김진훈(25) 3단과 김혜림(24) 2단이 웨딩마치를 올리며 여섯 번째 프로기사 커플이 됐다. 2004년 결혼한 김영삼(42) 9단과 현미진(37) 5단이 첫 프로기사 부부다. 프로기사가 아니더라도 바둑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과 교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 3단도 바둑기사와 연애를 하고 있다.

드라마와 이세돌 9단-알파고의 세기의 대국 이후 바둑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바둑을 배우는 어린이가 증가했고, 특히 성인 입문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꽃보다 바둑센터의 경우 2년 사이 3곳으로 늘어났다. 문 3단은 “과거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이 세계대회를 제패하며 바둑 붐을 일으켰을 때보다 지금의 분위기가 더 좋다는 말을 듣는다”며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위축된 바둑의 대중화를 위해 여류기사들이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바둑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김 초단은 그러나 “바둑이 어렵다는 생각을 버리면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며 “바둑은 나와 상대가 머리로 만들어낸 작품이니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즐기면 된다”고 조언했다. 문 3단은 “바둑에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신기함을 느끼게 된다”며 “바둑의 역사가 수천 년이 넘지만 지금까지 똑같은 대국이 하나도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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