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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즈군" 외치던 1만명 중국인들, 골 먹자 담배까지 물어
- 출처:조선일보|201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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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우다! 무적의 장수가 되어 한국을 해치우겠다!"
1일 저녁 한·중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중국 경극의 관우 분장을 한 중국 치우미(球迷·축구광) 왕종루이씨가 고함치고 있었다.
그는 "관우는 다섯 개의 난관을 통과해 여섯 장수를 물리쳤다"면서 "오늘 중국은 관우의 기세로 한국을 무찌를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기 시작도 전에 격한 응원을 벌이더니, 곧 땀범벅이 됐다. 얼굴의 물감이 줄줄 녹아내렸다.
이날 경기장 남쪽 1·2층은 노란색과 붉은색의 응원복을 맞춰 입은 중국 원정대가 가득 들어차 중국의 오성홍기를 연상시켰다. 서울이 아니라 중국의 한 경기장에 온 것 같았다. 중국 관중은 지역별로 모여 앉아 "죽을 힘을 다해 한국을 이기자"(후베이), "중국팀의 목표는 승리 승리 승리"(베이징) 등 각자의 응원 구호를 외쳤다. 그러다 한국 응원석에서 응원 소리가 커지면 다 함께 "중국 필승"을 부르짖었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중국인 원정대는 1만여명에 달했다. 원정 응원단이 모여 있는 곳 외에도 경기장 곳곳에 중국팬들이 보였다. 국내에서 스포츠 경기 단일 국가 외국인 관중 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기자는 중국 응원단인 것처럼 이들 틈에 자리를 잡고 경기 내내 치우미의 모습을 지켜봤다.
중국 원정대는 계속 선 채로 응원했다. 구호는 원색적이고 위협적이었다. 우리 선수가 골문을 노릴 때마다 관중석 곳곳에선 "빵즈군!(한국 꺼져라)"과 같은 야유가 터졌다.
기자 옆자리에 앉은 왕민(35·회사원)씨는 여덟 살 난 딸에게 "중국이 공을 뺏으면 무조건 고함부터 지르면 돼"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골이 잇달아 들어가면서 중국 관중석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한국이 3-0까지 앞서자 몇몇 치우미가 담배를 빼물더니 깊은 한숨 쉬듯 연기를 내뿜었다. 서울월드컵 경기장은 엄격한 금연구역이다. 한 치우미는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라며 머리를 감싸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중국 원정대는 어렵게 한국을 찾았다. 출국 요건이 까다로운 탓에 한 달 전부터 비자를 신청했고, 표를 구하기 위해 여행사에 웃돈도 지불했다고 한다. 표 판매 조건으로 2박 3일 투어를 강매 당한 경우도 많았다. 이번 경기 티켓은 일등석이 7만원이고 이등석이 위치에 따라서 5만원과 3만원 수준이지만, 중국 원정대는 대부분 수수료를 포함해 1.5배에 가까운 돈을 지불했다. 숙소와 식사 비용을 더하면 경기 하나를 보기 위해 중국 원정대가 투자한 금액은 1인 평균 80만원 선이라고 한다. 열성 팬들은 오성홍기를 휘날리며 "아직 끝이 아니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중국이 막판 추격전을 벌이면서 치우미들은 점점 더 열광하고 있었다.
스코어가 3-2로 좁혀지자 배에 축구공을 그린 한 관중은 얼굴을 쥐어뜯으며 "제발 공 하나만 (더 들어가라)"을 되뇌었다. 경기가 끝난 뒤 한 중국 팬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비록 졌지만, 이 정도면 포기하지 않고 잘했지. 다음 중국 홈경기 때는 한국이 혼이 나고 돌아가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