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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골프 '신데렐라' 박성원 "반짝하고 사라지고 싶진 않아"
출처:연합뉴스|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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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짐이 달라지니 샷이 달라지더라"…"느리고 부드러운 스윙 고수"

10일 개막 S-OIL챔피언스 1, 2라운드에서 박성현과 동반 플레이 "많이 배우겠다"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반짝하고 사라지는 선수가 되고 싶진 않아요. 팬이나 동료 선수들이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선수가 되는 게 꿈이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칸타타여자오픈 챔피언 박성원(23·금성침대)은 약 40여 년 역사의 KLPGA 투어에서 가장 극적인 ‘무명 반란‘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예선전을 거쳐 출전권을 딴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는 박성원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 우승하기 전까지는 철저한 무명 선수였다. 박성원은 작년에 1부투어를 밟았다. 시드전 45위로 간신히 시드권을 땄다. 또래 선수들보다 늦게 맞은 루키 시즌이었다.

루키 시즌은 그러나 실망의 연속이었다. 25차례 대회에서 톱10은 한 번뿐이었고 벌어들인 상금은 3천134만원으로 상금순위 91위에 머물렀다. KLPGA투어는 상금순위 60위 이내 선수에게만 이듬해 전 경기 출전권을 준다. 실패한 시즌이었던 셈이다.

다시 치른 시드전에서 54위로 부진했다. 시드전 54위면 출전 선수가 132명이 넘는 대회만 나갈 수 있다. KLPGA 투어 대회 출전 선수는 대회마다 108명, 120명, 132명, 그리고 144명으로 다르다. 박성원의 시드 순위로는 120명 이하 대회는 출전이 어렵다.

이런 부분 시드권 탓에 롯데칸타타여자오픈 이전에 열린 10개 대회 가운데 5개 대회는 출전하지 못했다. 롯데칸타타여자오픈도 원래 출전 자격이 없었지만 예선전을 치러 출전권을 땄다. 16명을 뽑는 예선전에서 11등으로 합격했으니 그나마도 아슬아슬했다.

이런 선수가 첫날 공동4위(57타), 둘째날 2위(69타) 등 선두권을 달린 끝에 최종 라운드에서 노보기 64타라는 데일리베스트샷을 때려 우승을 차지하자 신데렐라 탄생 신화가 따로 없다며 난리가 났다.

그는 작년에 딱 세번 60대 타수를 쳐봤을 뿐이고 올해는 한차례도 60대 타수를 친 적이 없었다.

꿈같은 우승을 차지한 지 사흘이 흐른 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박성원은 "아직도 벙벙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우승했다는 사실은 이제 현실이라는 게 분명하다는 느낌이지만 감격과 기쁨은 아직 충분히 느끼지 못했노라고 그는 털어놨다. 그만큼 이번 우승은 박성원 자신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박성원은 이번 대회 내내 놀랄 만큼 침착하고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드라이버샷과 아이언샷 실수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퍼팅 역시 오차가 거의 없었다. 특히 난생처음 겪는 최종 라운드 챔피언조 경기에서도 얼굴에는 압박감이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박성원은 "마음가짐을 바꿨더니 샷이 달라지더라"고 말했다.

박성원은 "잘해야지 하는 생각하면 더 안 되더라. 이번 대회부터 생각을 바꿨다. 샷이든 성적이든 지나간 건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고 작심했다. 전에는 보기를 하거나 더블보기를 하면 너무 화가 났다. 이번 대회 때는 나쁜 샷이 나와도 어차피 벌어진 일인데 뭣 하러 그걸 생각하느냐, 보기 해도 나중에 버디 하나 하면 되지, 버디 찬스가 오면 그땐 놓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쳤다"고 설명했다.

박성원은 대회를 코앞에 둔 연습 라운드 때 샷이 엉망이라 고민이었다. 오랫동안 샷을 가르쳐온 스승 황재민 코치에게 스윙 동영상을 보내주고 봐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결과는 개의치 말고 스윙 리듬만 생각하라"였다.

박성원은 "신기한 건 노상 듣던 말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리 와 닿더라"면서 "경기 내내 마음을 내려놓고 오로지 내 스윙 리듬만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욕심을 내려놓은 무심타(無心打)가 우승을 불렀다는 것이다.

박성원은 이번 대회에서 유난히 느리고 부드러운 스윙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느리고 부드러운 스윙이 나한테 잘 맞는다. 한번은 비거리를 내고 싶어서 스윙스피드를 빨리 했더니 샷이 엉망이 됐다.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 딱 느낀 건 스윙 리듬이 느려도 의외로 거리가 적지 않게 나간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결국, 마음가짐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박성원은 "일부러 연습 스윙 때는 더 천천히 채를 휘둘렀다. 나도 모르게 스윙이 빨라지는 걸 감안했다. 퍼팅 스트로크도 천천히, 느리고 부드럽게 하려고 애썼다. 심지어 걸음도 천천히 걸었다"고 덧붙였다.

느리고 부드러운 스윙에 샷 정확도가 확 올라가자 박성원은 최종 라운드에서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고 고백했다.

"샷이 너무 잘 떨어지니까 무조건 핀을 바로 보고 때렸다"는 박성원은 "그린이 비에 젖어 말랑말랑해져서 공격적인 플레이가 제대로 먹히더라"고 밝혔다.

박성원은 경기뿐 아니라 우승 퍼팅을 할 때나 우승 인터뷰를 할 때도 놀랄 만큼 침착했다.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았고 우승 소감을 밝힐 때도 한순간도 울먹인 적이 없다. 또박또박, 그리고 생글생글 웃으며 인터뷰를 치러냈다.

박성원은 "실은 엄청나게 떨렸고 긴장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라면서 "너무나 경황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저녁밥 먹으러 갈 때 친한 선수가 ‘축하한다‘면서 안아주는데 순간 울컥해서 눈물을 쏟았다"면서 전혀 울지 않은 건 아니라고 밝혔다.

박성원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 선수 정다희(23·SG골프)에게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정다희는 박성원에 1타 앞선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 챔피언조에서 함께 경기를 펼쳤다. 올해 딱 한 번 컷을 통과하는 데 그친 정다희 역시 무명 반란에 도전했지만 공동5위로 대회를 마쳤다.

박성원은 "만약 다희가 아니라 우승 경험이 많은 유명 선수와 챔피언조에서 경기했다면 압박감에 눌려 우승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면서 "다희한테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친한 선수가 우승하면 동기 부여가 되지 않냐"면서 "다희도 이번에 상승세를 탔고 큰 경험을 했기에 조만간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거듭 정다희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토로했다.

박성원은 이번 우승으로 받은 것 가운데 가장 기쁘고 값지게 여기는 건 올해부터 2018년까지 전 경기 출전권이다.

"혹시나 해서 상반기 대회 출전 신청은 다 해놨지만, 절반도 못 나가는 거 아닌가 걱정했다"는 박성원은 오는 16일부터 열리는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도 출전할 수 있다는 연락을 이날 받았다.

그는 "매년 시드전 가서 마음 졸였고 올해는 부분 시드여서 대기 순번으로 출전을 기다리는 데서 해방된 게 감사하고 큰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박성원은 10일부터 제주 엘리시안 골프장에서 열리는 S-OIL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 역시 대기 순번이었지만 롯데칸타타여자오픈 우승에 따른 시드권 확보로 신분이 달라졌다.

게다가 그는 이번 대회에서 1, 2라운드를 상금랭킹 1위 박성현(23·넵스), 상금랭킹 2위 장수연(22·롯데)와 함께 치른다. KLPGA투어는 상금랭킹 1위와 직전 대회 우승자를 1, 2라운드 동반 선수로 묶는 게 원칙이다. 늘 무명 선수끼리 생방송 중계 시간을 피한 티타임을 배정받았던 과거와 달라진 대접이다.

동갑 친구지만 박성현과는 주니어 때조차 한 번도 동반 플레이를 해본 적이 없고 고교(함평고) 후배 장수연도 마찬가지다. 박성원은 "둘 다 워낙 뛰어난 선수였고 나는 그저 그런 선수였으니…"라면서 "정상급 선수의 경기 운영을 배울 기회라 여기겠다"고 몸을 낮췄다.

박성원은 "박성현이나 장수연 팬들의 열렬한 응원도 각오하고 있다"면서 "그런 것도 헤쳐나가야 내가 성장하지 않겠나. 소중한 경험으로 여기겠다"도 다짐했다.

롯데칸타타여자오픈 우승을 도운 일등공신 캐디 허남준(45)씨가 이번에도 박성원의 백을 멘다.

박성원은 골프 명문 함평고 출신이다. 골프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외삼촌이 키도 크고 체격이 좋으니 골프를 배워보라고 권해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채를 잡았고 본격적으로 선수로 나선 것은 중학생이 된 뒤부터다. 

 ‘이왕 시작했으나 잘 해보려고‘ 함평고에 진학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는 이미향(23·KB금융)이 함평고 동기생이고 장수연, 전인지(22·하이트진로)가 1년 후배다.

하지만 박성원의 주니어 시절은 이들 동기나 후배에 비해 초라했다. 고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지만, 국가대표 마크는 끝내 달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프로 선수로 뛰어보자는 생각에 프로로 전향했다"는 박성원은 "너무 성적이 나오지 않아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정말 많이 했지만, 이왕 발을 디딘 만큼 잘한다는 소리 한번 들어보고 끝내자는 오기로 버틴 게 여기까지 왔다"고 실패로 점철된 골프 경력을 회상했다.

전에는 ‘평생소원이 우승 한번 해보는 것‘이었던 박성원은 "욕심이겠지만 3승, 4승을 향해 달리고 싶다"면서도 "내 골프 인생의 진짜 목표는 반짝하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래오래 팬과 동료 선수의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박성원의 모자에는 ‘금성침대‘ 네 글자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박성원의 우승으로 금성침대가 덩달아 유명해졌다. 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금성침대와 후원계약을 했다. 에이전트가 어렵게 구해온 후원 기업이다.

박성원은 "일면식도 없는 금성침대 회장님이 나 같은 무명 선수를 후원해줘 고맙게 여기고 있었는데 보답을 해드린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우승 때문에 금성침대가 유명해졌다고 하자 "(코미디언)이국주 씨가 나오는 광고로 이미 뜬 브랜드 아니냐"면서 "나 때문에 유명해진 건 아닌 것 같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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