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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톰보.레슬리 등 11인,'2015 명예의 전당'헌액
- 출처:루키|2015-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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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한국시간)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서 ‘2015 네이스미스 메모리얼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식이 열렸다.
‘네이스미스 메모리얼 농구 명예의 전당(이하 명예의 전당)‘은 국가, 인종, 리그, 프로와 아마추어 등을 막론하고 그간 농구계에 지대한 공헌한 사람들만이 입성할 수 있다. 선수, 코치, 심판, 공헌자 등 농구관련 직업군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돌아간다. 헌액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무한한 영광이다.
이번 2015 명예의 전당에서도 역시 선수, 감독, 심판 등 총 11명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예를 안았다. 여기 그 위대한 11인을 소개한다.
심판
딕 바베타
뉴욕 브루클린 태생의 딕 바베타는 무려 39년이나 NBA의 심판으로 활약했다. 2013-14시즌이 끝났을 때, 무려 2,635경기에 연속출장하는 대기록(프로 스포츠 심판을 통틀어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을 세우기도 했다. 커리어 내내 단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바베타의 위대한 자기관리 능력을 잘 보여준다.
또, 29년 연속 NBA 플레이오프 심판으로 나섰으며, 그 중 파이널 경기는 27경기나 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심판을 보기도 했는데, NBA 심판 중에서는 최초로 올림픽 무대를 밟은 것이었다. NBA 외에도 여러 중소 리그에서 심판으로 활동한 바 있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는 FIBA 공인 심판도 지냈다.
감독
존 칼리파리
전미대학농구리그 NCAA에서 통산 세 차례(1996, 2009, 2015)나 ‘올해의 감독‘을 수상한 명장. 존 칼리파리는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메사추세츠 대학을 지도하며 애틀랜틱 10 디비전 정규리그 우승을 다섯 차례나 차지했다. 토너먼트 우승 또한 5회에 이른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는 멤피스 대학을 코치했는데, 무려 네 번(2004, 2006, 2007, 2009)이나 컨퍼런스 USA 지구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또, 같은 지구 토너먼트에서도 세 번(2006, 2007, 2009) 우승했다.
2009년 이후에는 켄터키 대학의 지휘봉을 잡았다. 2012년에는 앤써니 데이비스,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 등을 이끌고 대망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 최근 5년 동안 2013년을 제외하고 네 번이나 4강에 진출한 바 있다. 주요 제자로는 마커스 캠비, 데릭 로즈, 타이릭 에반스, 존 월, 드마커스 커즌스, 에릭 블렛소 등이 있다.
칼리파리는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나는 리바운드를 한 개도 하지 않았다. 득점을 올리거나 어시스트를 기록한 적도 없다.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은 모두 그간 가르쳤던 제자들 덕분"이라며 영광을 나눠 갈채를 받았다. 또, 제자 64명을 모두 단상 위로 초청해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린지 게이즈
린지 게이즈는 호주 사람이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애들레이드에서 태어난 그는 선수와 감독을 역임하며 총 7차례나 호주를 올림픽으로 이끌었다. 게이즈는 1960년 호주 대표팀의 멤버였는데, 당시는 호주 농구 대표팀이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아 본 해이기도 했다.
또, 호주프로리그 NBL(National Basketball League) 멜버른 타이거스를 이끌고 2회(1993, 1997) 우승했고, 세 차례나 ‘올해의 감독‘으로 뽑혔다. 또, 이미 호주와 FIBA의 명예의 전당에 각각 헌액된 바 있다. 이제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까지 헌액되며 ‘살아있는 전설‘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톰 하인슨
톰 하인슨은 이미 명예의 전당과 인연이 있다. 지난 1986년 이미 헌액되었기 때문. 하지만 당시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로서 입성했다. 이번에는 감독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오르며 감독과 선수, 두 분야에서 모두 헌액되는 놀라운 업적을 세웠다. 역사상 감독과 선수로서 모두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된 사람은 빌 셔먼, 존 우든, 레니 윌킨스와 함께 네 명뿐이다.
하인슨은 1969년부터 1978년까지 보스턴 셀틱스를 지도했다. 1972-73시즌에는 셀틱스를 68승 14패로 이끌며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감독 생활 통산 전적은 427승 263패로, 무려 61.9%의 승률을 올렸다.
선수
스펜서 헤이우드
사실 스펜서 헤이우드 정도의 선수가 이제야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는 것은 웃긴 일이다. 헤이우드는 1969-70시즌 ABA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놀랍게도 데뷔와 동시에 신인상과 MVP, 올스타 MVP를 모두 석권했다. 그 뒤 NBA에서 12시즌을 뛰었다. 그러면서 올-NBA 퍼스트 팀 2회, 세컨드 팀 2회 등에 선정됐다. 1980년에는 LA 레이커스 소속으로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 첫 시즌을 ABA에서 보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NBA가 헤이우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해 여태 미뤄졌다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NBA와 ABA는 라이벌 단체로, 서로 으르렁대던 때였다.
디켐베 무톰보
디켐베 무톰보는 NBA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다. 통산 여덟 차례 올스타전에 출장했으며, 네 차례나 ‘올해의 수비수‘를 수상했다. 또, 1994년부터 3년 연속 블록슛 1위에 올랐다. 2001년과 2009년에는 ‘J. 월터 케네디 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1991-92시즌 데뷔해 2008-09시즌까지 코트를 누볐다. 멋진 블록슛을 성공시킨 후 흔드는 검지 손가락은 NBA를 대표하는 제스처 중 하나로, 많은 선수들에 의해 패러디 되기도 했다. 또, 프로 통산 3,289블록을 기록해 NBA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조조 화이트
조조 화이트는 1970년대 보스턴 셀틱스의 우승(1974, 1976)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선수다. 또, 7년 연속 올스타전에 출전할 정도로 기량을 인정 받던 선수였다. 1975년과 1977년에는 올-NBA 세컨드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1976년은 화이트 커리어의 가장 중요한 해로 꼽힌다. 그해 파이널에서 평균 21.7점 4.3리바운드 5.8어시스트 1.5스틸을 올리며 보스턴의 우승을 이끌어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NBA 12시즌 통산 평균 17.2점 4.0리바운드 4.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리사 레슬리
W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 리사 레슬리는 여덟 차례 올스타로 선정된 슈퍼스타였다. 또, 총 세 번(2001, 2004, 2006)이나 MVP로 선정되고 2001, 200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등 리그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WNBA 통산 리바운드 1위(3,307개), 블록 2위(822개)에 올라 있다.
대학 시절에도 단연 최고의 기량을 자랑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USC 대학을 다녔는데, 1994년에는 만장일치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Pac-10 컨퍼런스 통산 득점(2,414점)과 리바운드(1,214개)에서 모두 1위에 랭크되어 있다.
또, 1996, 2000, 2004, 2008 올림픽에 미국여자농구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해 총 네 차례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WNBA 역사상 경기 중 덩크를 터뜨린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기도 했다.
루이스 ‘루이‘ 댐피어
루이스 댐피어는 국내 팬들에게 다소 생소한 선수다. ABA가 NBA에 흡수통합 되기 전 1967년부터 1976년까지 ABA 켄터키 콜로넬스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9시즌을 뛰며 ABA 통산 최다출전(728경기)와 출장시간(27,770분), 득점(13,726), 어시스트(4,044)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1975년에는 챔피언십을 차지했고, 총 7회 올스타전 무대를 밟았다.
흡수통합 이후 NBA에서도 뛰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소속으로 세 시즌을 보낸 뒤 은퇴를 선언했다. ABA 통산 평균 18.9점 5.6어시스트를 기록했고, NBA에서는 평균 6.7점 2.8어시스트를 남겼다.
존 아이작
존 아이작은 농구의 초창기에 활약했던 인물이다. 뉴욕 르네상스에서 뛰었던 아이작은 소속 팀을 112승 7패(오타가 아닙니다!)로 이끌었다. 1939년에는 월드 프로페셔널 바스켓볼 토너먼트에 참가, 뉴욕 르네상스와 함께 초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후에 워싱턴 베어스로 이적, 또 한 번 월드 프로페셔널 바스켓볼 토너먼트 우승을 추가했다. 1992년 뉴욕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2009년 1월 26일 운명을 달리했다.
공헌자
조지 라벨링
조지 라벨링은 현재 나이키에서 국제농구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원래는 대학농구 코치를 지냈다. 1963년부터 1969년까지 빌라노바 대학에서, 1970~72년에는 메릴랜드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냈다. 1970-71시즌에는 메릴랜드가 정규리그 무패를 기록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1972년부터 1983년에는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감독직을 역임했다. 또, 코칭 커리어 동안 여러 언론매체로부터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1984년과 1988년 올림픽에서는 미국남자농구대표팀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약한 바 있다.
또, ACC와 PAC-8(現 PAC-12) 디비전에서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감독직을 맡는 등 인종의 벽을 허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