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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엽의 인생경기…눈앞서 놓친 챔프전 티켓
출처:점프볼|20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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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경기’에 대해 물으면 누군가는 위닝샷을 성공시킨 순간, 또 누군가는 우승했던 경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현주엽(40,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달랐다. 이긴 경기보다 진 경기가 더 기억에 남는단다. 그만큼 그는 지고는 못 산다는 승부욕이 강한 농구인이었다.

※ 본 기사는 월간 점프볼 2015년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2007년 4월 12일. LG의 창단 첫 우승 희망이 사라진 날이다. 부산 KTF(현 케이티)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2패를 당해 위기에 몰린 LG는 3차전에서 41득점을 퍼부은 찰스 민렌드를 앞세워 117-100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득보다 실이 큰 경기였다. 1쿼터 중반 사단이 났다. 퍼비스 파스코가 자신을 수비하던 장영재를 밀치며 퇴장 명령을 받은 것. 뿐만 아니라 파스코가 자신에게 퇴장을 명령한 심판까지 가격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LG는 다음날 곧바로 논란을 일으킨 파스코를 퇴출시켰다. 당시 규정상 1, 4쿼터에는 외국선수 2명 모두 출전이 가능했고, 당연히 파스코 공백은 컸다. LG는 4차전에서 86-95로 패, 챔피언결정전 진출이 좌절됐다. 현주엽이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현주엽은 “장영재가 거칠게 수비를 했는데 심판이 반칙으로 불어주지 않은 장면이 많았다. 그게 쌓이다 보니 파스코가 폭발했다. 팀에서 항의라도 해줬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보니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비록 구단 이미지와 전력에 큰 타격을 주며 떠났지만, 현주엽은 오히려 파스코에게 미안하단다. “파스코는 정말 순했던 선수다. 이전까지 항의 한 번 한 적 없었고, 연습 때 불평불만을 표출하지도 않았다. 신선우 감독님이 호통을 치면 눈물을 글썽일 정도였다. 내가 코트에 같이 있었다면 대신 항의해줬을 텐데, 벤치에 있어서 도움을 못 줬다.”

다른 팀에서라도 뛰고 싶었지만…

현주엽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코트를 평정한 스타였다. 휘문고 재학시절 고려대에 진학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스포츠신문 1면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영향력도 대단했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우승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챔피언결정전 진출 경험조차 없다. “파스코 사건만 아니었다면 나도 우승반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챔피언결정전이 열리는 체육관도 해설위원이 된 후 처음으로 가봤다. ‘한국의 찰스 바클리’라는 별명은 누군가 나도 바클리처럼 우승 못하고 은퇴할 걸 알고 만들어준 것 같다(웃음).” 현주엽의 말이다. 현주엽은 2009년, 무릎부상을 이유로 34세라는 비교적 ?은 나이에 은퇴를 택했다. 프로농구 최초의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선발됐던 그가 소화한 시즌은 고작 9시즌. 현주엽은 “사실 다른 팀에서라도 뛰고 싶었지만, 여러 문제가 겹치며 ‘더 뛸 수 없겠다’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쉬움이 남는 은퇴였다”라고 돌아봤다. 현주엽은 비록 선수로는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지도자로는 우승반지를 끼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현역 때는 농구를 원 없이 하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지금은 코치든, 감독이든 지도자로 우승팀의 일원이 되고 싶다.”

현주엽이 생각하는 이상향은 선수가 신뢰하는 지도자다. 그는 “사실 한국 농구는 지도자의 권한이 너무 크다. 언젠가 지도자가 된다면, 선수와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2014-2015시즌 해설위원으로 성공적인 데뷔무대를 마친 현주엽은 당분간 해설을 계속해서 맡으며 견문을 넓힐 계획이다. 현주엽은 “첫 방송 후 반응이 살벌했는데(웃음), 감을 잡고 호흡이 맞는 캐스터와 함께 해서 마음 편하게 방송에 임할 수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음 시즌에도 시청자들을 찾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BONUS ONE SHOT ‘미나케 퇴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현주엽이 우승 기회를 놓친 건 2006-2007시즌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경기운영능력까지 뽐내 ‘포인트 포워드’라는 신조어를 만든 2004-2005시즌, 진지하게 우승을 노렸다. 당시 KTF는 현주엽, 애런 맥기, 게이브 미나케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위력이 대단했던 팀. 정규리그 성적은 4위였지만, 1위 원주 TG삼보(현 동부)와의 승차가 4경기에 불과할 정도로 상위권과의 실력 차가 적었다. 하지만 KTF는 6강에서 서울 삼성에 2패, 허무하게 시즌을 마쳤다.

“사실 삼성은 생각도 안 한 상대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한 현주엽은 “크니엘 딕킨스를 영입한 게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KTF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미나케를 퇴출, CBA(미 하부리그)에서 폭발력과 탄력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딕킨스를 영입했다. 미나케의 퇴출 사유는 무릎부상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고. 현주엽은 “정규리그 때부터 미나케로는 TG삼보를 이기는 게 쉽지 않겠다는 얘기가 있었다. 사실 부상이 아닌 더 큰 목표를 위한 교체였다. 하지만 딕킨스는 함께 훈련한 시간이 짧아 호흡이 안 맞았다. 오히려 미나케였으면 챔피언결정전까지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농구는 팀플레이가 중요한 스포츠”라며 아쉬움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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