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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이 전설을 만났을 때
- 출처:아시아경제|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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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만에 돌아온 박신자, 조카 박정은 코치와 함께 코트에 서다
박신자 선생(74)이 1967년 11월 2일 은퇴식을 할 때, 서울 장충체육관에는 농구팬이 7000명 넘게 모였다. 팬들은 1967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체코)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동양인 최초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대스타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48년이 지났다. 박 선생은 지난 6일 속초에서 개막한 여자농구 ‘박신자컵 서머리그’를 통해 또 한 번 팬들을 불러 모았다. 이번엔 까마득한 후배들의 환대를 받으며 조카인 박정은(38) 삼성 코치와 함께 코트에 입장했다. 여자 농구를 대표하는 두 전설의 등장에 속초는 들썩였다.
“뭉클했다. 고모이기도 하지만, 농구계 대 선배님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대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멋져보였다. 또한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다.”
세대는 다르지만, 박정은 코치 역시 현역 선수들이 닮고 싶어 하는 전설 중 한 명이다. 한국 여자농구를 이끈 대표적인 선수출신 지도자로 1995년 프로데뷔 이후 16년간 가드와 포워드 자리를 넘나들며 국가대표와 소속팀(용인 삼성생명)에서 줄곧 ‘에이스’로 활약했다. 이날 박 코치가 박 선생과 나란히 코트 위에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됐다.
박 코치는 박 선생을 보고 그에 대한 전설을 듣고 자랐다. 박 코치는 “고모는 항상 흐트러짐이 없는 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지만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다. 나이와 맞지 않게 항상 정정하고 한결같다”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모에 대한 이해가 깊어간다.
박 선생은 성격이 소탈하지만, 농구에 대해서 만큼은 욕심이 많았다. 스스로에게 혹독했기에 누구보다 훈련을 많이 했다고 자부한다. 그는 “남들이 슛을 500개 던지면 나는 600개를 던졌다. 갖고 있는 소질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코치는 “예외를 좋아하지 않고 올곧은 성격이시라 대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코치생활하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전설은 괜히 전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전설은 또 다른 전설에게 영향을 끼쳤다. 박 코치는 고모와 포지션도 다르고 해서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따라하려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고모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뛰었다. 부담도 있었지만 ‘박신자 조카’ 꼬리표를 떼기 위해 노력했다. 따로 전수받은 기술은 없다. 그러나 선수 시절 많은 지도자분들로부터 ‘고모한테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센스가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박 선생은 1999년 세계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동양인 최초로 헌액되며 진정한 전설로 남았다. 지금껏 그를 뛰어넘는 스타를 발굴하지 못한 한국 여자농구는 ‘제 2의 박신자’를 기다린다. 박 코치는 “이번 대회는 60년대 시절로 도약하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됐다. 후배들이 ‘나도 열심히 하면 훗날 내 이름을 건 대회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