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 Not Found
- 피겨 페어 선수가 왜 홀로 훈련?
- 출처:SBS|2015-03-16
-
404 Not Found 404 Not Found
nginx 인쇄
형용하는 말이 형용을 받는 말과 모순되는 것을 형용 모순, 또는 모순 형용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옥시모론(Oxymoron)‘이라고 하지요. ‘작은 거인’, ‘똑똑한 바보’, ‘침묵의 웅변’ 같은 것이 대표적 예입니다. 우리나라 피겨 스케이팅에도 이런 형용 모순이 딱 들어맞는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혼자 연습하는 페어 선수’ 최휘입니다. 페어스케이팅은 말 그대로 남녀 2명이 하는 것인데 17살 소녀는 왜 석달째 혼자 훈련하게 됐을까요?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전 종목에 출전시키기 위해 지난해부터 이른바 ‘평창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피겨는 크게 남녀 싱글, 페어스케이팅, 아이스댄스 4부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페어는 불모지로 불릴 만큼 오랫동안 명맥이 끊어졌습니다. 개최국 자동 출전권은 부활됐지만 정작 한국을 대표해 평창 무대에 나설 선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남자 선수가 문제였습니다. 한국 여자선수 재목은 어느 정도 있는데 함께 짝을 이룰 국내 남자 선수들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빙상연맹은 부득이하게 추후 한국 귀화를 전제로 외국인 남자 선수를 물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9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트라이아웃(공개 선발)을 통해 2팀을 구성했습니다.
정유진과 루카 디마테(이탈리아), 최휘와 루이스 마넬라(브라질)가 바로 그들입니다. 정유진과 루카 디마테는 지난 1월8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전국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페어팀이 결성돼 국내 대회에 출전한 것은 11년 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데뷔전을 치른 지 1주일 만에 전격 해체를 결정했습니다. 해체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성격과 문화, 나이(9살) 차이가 거론됐습니다. 데뷔전이 고별전이 되고 만 셈입니다.
정유진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습니다. 최휘는 지난해 9월 이후 아직까지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짝인 루이스 마넬라가 발목 부상을 이유로 입국하지 않아 데뷔무대였던 종합선수권 출전조차 무산됐습니다. 그 이후에도 마넬라는 한동안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두 선수를 가르쳤던 독일인 잉고 슈토이어 코치도 지난달에 한국을 떠났습니다. 슈토이어 코치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피겨 페어에서 동메달을 딴 비교적 유명한 지도자입니다.
올해 17살인 최휘는 여자 싱글 국가대표를 지낼 만큼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자신이 원해 싱글에서 페어 스케이팅으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일이 꼬이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지난 1월에는 루이스 마넬라 없이 잉고 코치의 지도 아래 훈련했는데 지난달 잉고 코치마저 떠난 뒤로는 하는 수 없이 혼자 빙판에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녀 2명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페어 스케이팅에서 자신의 짝도, 전담 코치도 없는 가운데 나 홀로 연습해봤자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국가대표가 사용하는 태릉빙상장에서 훈련하지 못한 채 한국체대에서 외롭게 빙판을 지치고 있습니다.
최휘를 더 괴롭히는 것은 ‘돈’입니다. 루이스 마넬라의 발목 부상이 거의 완쾌돼 4월 중순부터는 함께 훈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소입니다. 마넬라는 한국에 입국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통보했습니다. 쉽게 말해 최휘에게 자신이 있는 미국 마이애미로 오라는 것입니다. 최휘 선수 측은 지난해 11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훈련하면서 왕복 항공비, 숙식비, 슈토이어 코치 레슨비, 교통비 등을 모두 개인적으로 부담하느라 이미 수천만 원을 썼습니다.
마넬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앞으로 계속 자비로 미국에서 훈련하고 국제 대회에 참가할 경우 2018년 2월 평창올림픽까지 써야 할 금액이 최소 2억 원이 될 전망입니다. 일반 중산층이 부담하기에는 벅찬 금액입니다. 최휘 선수 측은 오랜 기간 대한빙상경기연맹과 훈련비 지원에 관해 논의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약속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휘가 미국으로 가지 않으면 사실상 최휘-루이스 마넬라 조는 해체가 불가피합니다. ‘평창 프로젝트’만 믿고 불모지로 꼽히는 페어스케이팅에 도전했던 최휘는 자칫 ‘피겨 인생’ 전부를 망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전향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