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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삼성, 실패한 ‘패기’ 그리고 ‘희망’
- 출처:바스켓코리아|20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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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전부터 서울 삼성은 하위권으로 분류되었다.
계속되는 세대 교체의 실패와 감독 교체 등이 주된 이유였다. 2010-11 시즌 정규리그 6위에 머무른 삼성은 이듬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중앙대 연승 행진의 주역이었던 김상준 감독을 사령탑으로 앉혔다. 하지만 김 감독은 대학 무대와는 다른 프로를 경험하면서 단 13승(41패)에 머무르며 팀 분위기를 바꾸는 데 실패했고, 이후 삼성은 KBL 경험이 풍부한 김동광 감독을 영입했다. 결과는 6위와 8위. 팀 입장에서는 또 다른 결단이 필요했던 성적이었고, 김 감독은 자진 하차라는 결정을 내렸다.
삼성의 선택은 KBL 올스타 투표 1위에 빛나는 ‘KBL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민이었다. 2년간 지도자 수업을 거친 ‘감독’ 이상민은 난파하는 삼성이 선택한 모험수였다. 첫번째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최종 성적 11승 43패. 순위는 최하위였다. 전주 KCC(12승 42패)에 한 게임 뒤진 10위에 머물고 말았던 것이다.
외국인 선수 1순위를 거머쥔 삼성은 리오 라이온스라는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를 선택하는 행운을 가졌지만, 포지션 불균형이 기인된 조직력의 부조화, 그리고 가드 진의 완전한 부진에 발목을 잡히면서 순위표 최하단에 자리잡고 말았다.
시즌 전 이상민 감독은 ‘패기를 앞세운 활기찬 농구’를 표방한 빠른 농구를 선보이려 했지만, 기대했던 2년 차 가드 박재현이 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라이온스가 중심이 된 인사이드 포지션 정리에 실패 등이 이유로 작용하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기록을 살펴봐도 삼성의 성적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70.2점을 기록한 평균 득점은 최하위였고, 34.2개를 기록한 리바운드는 뒤에서 두 번째였다. 또, 어시스트 역시 14.7개로 순위표 맨 마지막에 머물렀다. 스틸 역시 6.6개로 ‘또’ 10위였고, 2.4개를 기록한 블록슛은 전주 KCC와 함께 공동 9위에 랭크되었다. 2점슛 성공율은 7위(49.12%), 3점슛 성공율 역시 7위(31.68%)에 머물렀다. 어느 기록도 7위 이상을 넘어선 건 없었다.
▲ 이상민의 감독 선임, 외국인 선수 1순위 ‘선발’
지난 시즌 도중 전임 김동광 감독은 사퇴를 선언했다. 부진한 성적을 책임지겠다는 의지였다. 남은 경기는 김상식 코치를 대행으로 치렀다. 김동광 전 감독은 2014년 1월 28일 ‘성적에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라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남은 경기를 김상식 체제를 가동했던 삼성은 시즌 종료 후 잠시의 휴식을 가졌고, 2014년 4월 13일 보도 자료를 통해 ‘이상민 신임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감독 경험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파격적인 결정이자 결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감독은 빠르게 선수단 체질 개선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키워드는 ‘패기’와 ‘업템포’였다. 기존의 가드 진을 맡았던 이정석과 이시준의 비중을 줄이고, 2년 차 가드인 박재현을 중용했고, 센터 스타일의 용병이 아닌 올 어라운드 성향의 외국인 선수인 리오 라이온스를 선발했다. 그리고 인사이드는 기존의 이동준과 창원 LG에서 FA로 영입한 송창무, 그리고 김명훈으로 채우는 계획을 세웠다.
오프 시즌, 다가오는 리그를 준비하는 삼성의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라이온스와 조합을 이뤄 뽑은 키스 클랜턴이라는 외국인 선수까지 연일 맹위를 떨쳤다. 그리고 ‘이상민의 남자’로 등극한 박재현이 기복이 있었지만, 성장과 괘를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래가 기대되는 임동섭의 부상으로 인해 3번 포지션에서 아쉬운 모습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준비와 함께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 개막과 함께 ‘이상민 플랜’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는 듯 했다.
라이온스 활용에 대한 방법이 아쉬운 모습이었고, 클랜턴마저 부상으로 팀을 떠나는 아쉬움까지 겹쳤다. 또, 박재현이 전혀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슛팅 가드 성향의 박재현이 포인트 가드로 전환하는 성장통이 있었을 뿐이었다. 시즌 개막 후 어느 하나도 만족스러울 수 없었던 삼성은 11연패에 빠지는 등 소위 말하는 ‘멘털붕괴’를 경험하며 최하위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 떨어지는 전력, 게다가 부상까지…
6개월이라는 긴 레이스 동안 부상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팀은 없다. 하지만 삼성은 위에 언급한 대로 주전 스몰 포워드로 기용이 예상되었던 임동섭이 이탈하며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상태에서 시즌을 맞이해야 했다.
물음표 가득한 가드 진에 차재영, 김동우의 불안한 스몰 포워드 라인, 그리고 이동준, 김명훈, 송창무, 방경수까지 선수는 많지만 뚜렷한 스타팅이 보이지 않는 인사이드까지 어느 하나 타 팀을 압도할 만한 라인업은 없었다.
하지만 오프 시즌 많은 훈련량 속에 시즌을 준비했고, 잘 풀리면 중위권은 가능할 정도의 연습 게임 내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된 삼성은 부진한 초반 성적으로 인해 마음 고생이 심한 선수단에 부상까지 덮쳤다.
시즌 아웃된 임동섭을 대신해 활약이 기대되었던 김동우가 2014년 10월 11일 팔꿈치와 비골 부상을 당하며 13게임을 결장했다. 이후 잠시 팀에 복귀했던 김동우는 2014년 11월 12일 다시 허벅지 근육 부상을 당했고, 지난 2월 21일까지 무려 24게임에서 나서지 못했다. 김동우의 전열 이탈은 가뜩이나 3번 포지션이 약한 삼성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두번째 주자는 ‘삼성의 미래’ 박재현이었다. 시즌 시작 후 힘겹게 출전을 이어가던 박재현은 2014년 10월 27일부터 쇄골 부상을 이유로 2014년 12월 12일까지 무려 14게임에 결장했다. 두번째 난국에 봉착한 삼성이었고, 이 기간 동안 삼성은 4승 13패라는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 했다.
마지막은 오프 시즌 국가대표와 연습 게임 등에서 맹활약한 클랜턴의 부상이었다. 오프 시즌 내내 탁월한 농구 센스로 ‘어쩌면 대박 외국인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클랜턴은 시즌 초반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2014년 10월 21일부터 발가락 부상을 이유로 전열에서 이탈했고, 이후 교체를 당했다가, 다시 팀으로 복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부상을 이유로 시즌 운용에 가장 큰 난제인 외국인 선수 트러블까지 겹친 삼성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삼성은 각 포지션에 걸친 부상 악재까지 팀을 덮치며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경험해야 했다.
▲ 예상치 못한 김준일의 ‘대활약’
암담함과 함께 시즌을 시작했던 삼성에 ‘희망’의 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전체 2순위로 선발한 연세대 출신 센터 김준일이 프로에 적응을 알렸던 것. 대학교 2학년 까지만 해도 김준일은 ‘덩치 좋은 센터’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3,4학년을 지나면서 연세대와 대학 무대의 핵심 센터로 자리를 잡았었다. 4학년 때는 많은 득점을 덩크슛으로 꽂아 넣는 무서운 모습까지 보여주었었다.
2라운드까지 ‘신인’다운 모습을 고수했던 김준일은 3라운드가 시작되면서 빠르게 프로에 녹아 들었다. 휘문 고등학교와 연세대를 거치면서 학년이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던 김준일이 단 10게임 만에 프로를 자신의 무대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김준일의 활약은 끝이 나지 않았다. 3라운드 중반 한 때 독감으로 고생하며 잠시 슬럼프(?)를 겪었던 김준일은 이후 완전히 일취월장을 장착하며 서브가 아닌 메인으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매 게임 10점을 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20점에 가까운 혹은 20점을 넘어서는 점수도 간간히 기록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약점인 수비력까지 조금씩 보완하며 팀에 보탬을 주었고, 시즌 후반이었던 2015년 2월 18일 서울 SK전에는 무려 37점을 쓸어 담으며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김준일이 이번 시즌을 통해 만든 기록은 평균 29분 26초를 뛰면서 13.84점, 4.4리바운드, 1.7어시스트. 득점 전체 11위, 토종 득점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리바운드 역시 국내 12위에 올랐다.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이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놀라운 능력을 보이고 있는 김준일은 신인왕 후보까지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진행형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같이 프로에 입문한 고양 오리온스 이승현과 함께 대한민국 남자 농구 센터 진을 이끌 선수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