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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투수의 3년차 부진' 류현진은?
- 출처:김형준 칼럼|20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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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인사이드NPB]는 다르빗슈(28·텍사스 레인저스)의 3년차 시즌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앞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선배 일본 투수들의 하락세가 대부분 3년차 시즌부터 시작됐다는 것.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3년차 시즌을 보내지 못한 것은 다르빗슈도 마찬가지였다.
내년이 3년차인 <자국 프로 리그를 거쳐 진출한 아시아 투수>가 있다. 바로 류현진(27·LA 다저스)이다. 그렇다면 류현진도 다르빗슈를 포함한 일본 투수들의 전철을 밟게 될까. 앞선 8명의 사례를 알아봤다.
노모 히데오 (통산 bWAR 21.8 / fWAR 24.1)
1995(26세) 191.1이닝 13-06 2.54 (b 4.7 / f 4.8)
1996(27세) 228.1이닝 16-11 3.19 (b 4.6 / f 3.7)
1997(28세) 207.1이닝 14-12 4.25 (b 1.8 / f 2.9)
진출 첫 해인 1995년. LA를 강타한 ‘토네이도‘의 결과물은 일본 선수 최초의 신인왕과 사이영상 4위(1위 그렉 매덕스, 2위 피트 슈렉, 3위 톰 글래빈)였다. 1996년에도 사이영상 4위에 오르는 선전(1위 존 스몰츠, 2위 케빈 브라운, 3위 앤디 베네스). 그러나 노모의 3년차는 앞선 2년과 달랐다. 특히 7월27일 필라델피아전에서 스캇 롤렌의 직선 타구에 팔꿈치를 맞은 후 11경기에서 5승4패 5.27에 그쳤다. 노모는 1995년 .182, 1996년 .218였던 피안타율이 1997년 .243로 치솟았다. 이는 BABIP의 일시적 급등 때문이기도 했지만,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노모의 투구폼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시즌 후 팔꿈치 관절경 수술을 받은 노모는, 이듬해(1998년) 패스트볼 구속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12경기(2승7패 5.05) 만에 다저스 유니폼을 벗었다. 2002년 노모는 슬라이더와 커브라는 새로운 무기들을 가지고 다저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2년 더 뛰어난 활약을 했다(박찬호 통산 bWAR 18.2, fWAR 17.3).
이라부 히데키 (통산 bWAR 3.4 / fWAR 3.5)
1997(28세) 053.1이닝 05-04 7.09 (b -0.9 / f -0.2)
1998(29세) 173.0이닝 13-09 4.06 (b 2.6 / f 0.9)
1999(30세) 169.1이닝 11-07 4.84 (b 1.9 / f 2.3)
베이브 루스와 닮은 외모,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찬사(일본의 놀란 라이언)와 함께 양키스에 입단할 때까지만 해도 이라부에 대한 기대는 컸다. 하지만 일본에서 최고 구속(158km)을 찍고 온 그의 ‘막대기 직구‘는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았다. 무브먼트가 결여된 이라부의 패스트볼은 특히 당대를 호령했던 케빈 브라운의 싱커와 대비됐다. 1998년 이라부는 양키스의 선발 로테이션에서 나름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나 실력보다는 운이 많이 따른 시즌이었다(4.0볼넷 6.6삼진 BABIP .245). 이듬해 이라부는 제구가 좋아졌지만 구속을 잃었다. 그리고 보스의 독설(살찐 두꺼비) 속에 양키스 유니폼을 벗었다.
요시이 마사토 (통산 bWAR 7.4 / fWAR 6.9)
1998(33세) 171.2이닝 06-08 3.93 (b 2.5 / f 1.3)
1999(34세) 174.0이닝 12-08 4.40 (b 2.1 / f 1.3)
2000(35세) 167.1이닝 06-15 5.86 (b 1.1 / f 2.4)
3년 연속 올스타(1995-1997)였던 요시이는 일본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최저 연봉+인센티브> 계약으로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섰다. 첫 해 요시이는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다. 그러나 2년차부터 ‘소프트 스터프‘의 한계에 부딛혔다. 그리고 2000년 콜로라도와 2001-2002년 몬트리올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갔다. 2008년 일본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투수코치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던 요시이는, 현재 일본에서 해설을 맡고 있다.
이시이 가즈히사 (통산 bWAR 0.2 / fWAR 0.6)
2002(28세) 154.0이닝 14-10 4.27 (b -0.1 / f -0.1)
2003(29세) 147.0이닝 09-07 3.86 (b 0.7 / f 0.7)
2004(30세) 172.0이닝 13-08 4.71 (b -0.2 / f 0.2)
총액 2356만 달러(포스팅 1126만, 4년 1230만)로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은 이시이는 첫 12경기에서 10승1패 3.15의 대활약을 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곧 알아챘다. 그가 범상치 않은 제구력의 소유자라는 것을(이시이와 빅터 삼브라노 중 누가 더 최악인가는 당시 메이저리그 팬들의 난제였다). 이시이는 이후 16경기 4승9패 5.31에 그쳤고, 9월9일에는 직선 타구에 맞아 광대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 시즌을 마감했다. 이시이의 <어디로 올지 모르는 피칭>은 2년차까지는 경쟁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3년차가 되자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구속 저하가 결정적이었다. 첫 해 89.3마일이었던 이시이의 구속은, 2003년 87.2마일을 거쳐 2004년에는 85.6마일까지 떨어졌다. 이듬해 이시이는 어깨 부상으로 91이닝 밖에 던지지 못했다. 메이저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 (통산 bWAR 9.3 / fWAR 10.5)
2007(26세) 204.2이닝 15-12 4.40 (b 4.1 / f 3.8)
2008(27세) 167.2이닝 18-03 2.90 (b 5.3 / f 3.4)
2009(28세) 059.1이닝 04-06 5.76 (b 0.4 / f 0.6)
첫 두 경기에서 7이닝 10K 1실점 승리(그레인키 7이닝 7K 1자책 패전)와 7이닝 4K 3실점 패전(킹펠릭스 1피안타 완봉승). 홈 데뷔전 NESN 중계 화면에 찍힌 마쓰자카의 구속은 엄청났다. 하지만 마쓰자카는 메이저리그를 정복할 수 있는 투수가 아니었다. 2008년 마쓰자카는 승률 ML 2위와 사이영 투표 4위에 올랐다(1위 클리프 리, 2위 로이 할러데이, 3위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그러나 이는 비정상적인 잔루율과 BABIP 덕분이었다. 마쓰자카는 ‘이시이급 제구‘(5.1볼넷) 탓에 간신히 규정 이닝을 넘겼다. 2009년 마쓰자카는 쓰러졌다. 일본에서부터의 누적된 피로와 함께 시즌 전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한 WBC 출전이 화근이었다. 2011년에는 토미존 수술을 받기도 했던 마쓰자카는 결국 아쉬웠던 8년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4년 16억 엔 소프트뱅크 입단).
구로다 히로키 (통산 bWAR 21.7 / fWAR 22.6)
2008(33세) 183.1이닝 09-10 3.73 (b 2.7 / f 3.3)
2009(34세) 117.1이닝 08-07 3.76 (b 0.6 / f 2.1)
2010(35세) 196.1이닝 11-13 3.39 (b 3.4 / f 4.1)
39세 시즌에도 199이닝을 던진 유일한 예외 사례.
다르빗슈 유 (통산 bWAR 12.8 / fWAR 13.9)
2012(25세) 191.1이닝 16-9 3.90 (b 3.9 / f 4.8)
2013(26세) 209.2이닝 13-9 2.83 (b 5.8 / f 5.0)
2014(27세) 144.1이닝 10-7 3.06 (b 3.2 / f 4.1)
첫 12경기에서 7승2패 2.11을 기록할 때까지만 해도, 다르빗슈는 구로다에 이어 두 번째 예외 사례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다르빗슈는 이후 10경기에서 3승5패 4.42에 그쳤고 8월10일 경기를 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팔꿈치 부상). 메이저리그에서의 첫 시즌 후, 다르빗슈는 더 위력적인 패스트볼을 던지기 위해 엄청난 겨울 훈련을 했다. 그러나 다르빗슈의 2013년 구속은 단지 0.1마일이 빨라졌을 뿐이었다(2012년 92.8마일, 2013년 92.9마일, 2014년 92.4마일). 2012년 0일, 2013년 15일, 2014년 66일. 점점 늘어나고 있는 다르빗슈의 부상 일수다.
이와쿠마 히사시 (통산 bWAR 11.5 / fWAR 7.7)
2012(31세) 125.1이닝 09-5 3.16 (b 2.0 / f 0.5)
2013(32세) 219.2이닝 14-6 2.66 (b 7.0 / f 4.0)
2014(33세) 179.0이닝 15-9 3.52 (b 2.5 / f 3.2)
2011년 오클랜드와의 계약이 무산으로 포스팅이 불발된 이와쿠마는 이듬해 FA 자격을 얻고 메이저리그에 다시 도전했다. 하지만 2011년의 부상(119이닝 6승7패 2.42) 탓에 1년 150만 달러 계약(인센티브 340만)에 그쳤다(이와쿠마의 2011년 일본 연봉을 달러로 환산하면 360만 달러였다). 시애틀은 이와쿠마를 불펜에서 출발하게 했다. 2013년 이와쿠마는 사이영 3위에 오르며 자신에 대한 저평가를 실력으로 극복했다(1위 맥스 슈어저, 2위 다르빗슈 유). 올해 이와쿠마는 손가락 부상으로 첫 한달을 놓쳤지만 첫 21경기에서 12승6패 2.57(평균 7.00이닝)을 기록하며 또 한 번의 성공적인 시즌을 만드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7경기에서 3승3패 7.88이라는 최악의 부진으로 흔들리는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와쿠마가 뛰어난 활약을 한 기간은 넉 달이 되지 못했다.
일본 투수들의 3년차 부진(‘징크스‘란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 쓰는 말이다)은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경쟁력 상실이다. 3년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일반적인 메이저리그 투수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일본 투수 특유의 투구폼과 구종(주로 스플리터)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포수조차 공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돈트렐 윌리스는 ‘디셉션으로 승부하는 투수‘였다. 윌리스는 타자들이 투구폼에 익숙해진 4년차부터 본격적인 하향세가 시작됐다. 사사키 가즈히로의 힘은 ‘지옥에서 온 스플리터‘였다. 하지만 사사키의 스플리터는 4년차부터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부상인 것으로 보인다. 앞선 일본 투수들은 대부분이 3년차 시즌 때 부상을 경험했거나 시즌 후 수술을 받았다. 유일한 예외는 다른 투수들과 달리 일본에서 혹사를 당한 경험이 없으며 딱딱한 메이저리그 마운드의 위험성을 눈치챈 구로다다(구로다는 고교 시절부터 25세 시즌까지 어깨를 아낄 수 있었고, 풀타임 투수가 된 후로는 투구수 관리를 완벽하게 해냈다). 메이저리그에서 5년을 뛰는 동안 한 번도 부상을 당하지 않은 요시이는, 무의식적으로 공을 세게 던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구로다도 ‘흔들리는 상황에서 더 강하게 던지는 것‘을 부상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류현진 (통산 bWAR 5.2 / fWAR 6.6)
2013(26세) 192.0이닝 14-8 3.00 (b 3.3 / f 3.2)
2014(27세) 152.0이닝 14-7 3.38 (b 1.9 / f 3.5)
그렇다면 자국 리그에서 뛸 때보다 더 짧은 휴식일과 더 긴 이동 거리를 소화하고 있는 것만큼은 일본 투수들과 마찬가지인 류현진은 어떨까. 데뷔 첫 해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땅볼 유도구로 활약했던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1년 만에 간파를 당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슬라이더와 커브의 업그레이드에 성공함으로써 불과 1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투수가 됐다. 첫 번째 우려를 극복해냄과 동시에 롱런을 위한 세팅을 끝내 버린 것. 앞으로의 관건은 콜 해멀스(필라델피아)처럼 체인지업과 브레이킹 볼이 같이 위력적인 날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반면 부상과 관련해서는 류현진도 적신호가 켜졌다. 2012년 한국 리그에서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88.9마일(143.1km)이었던 류현진은 지난해 90.3마일(145.3km)에 이어 올해는 90.9마일(146.3km)을 던졌다. 이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전력 피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지난해 발에 타구를 맞은 것 말고는 부상이 없었던 류현진은, 올해 두 차례 부상자명단에 오르며 50일을 결장했다. 결국 류현진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요시이의 <부상 당하지 않는 피칭>을 넘어 구로다처럼 <부상 당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피칭>을 할 수 있느냐다(오히려 2년차 때 부상을 경험한 것은 구로다와 같다).
2015년은 류현진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롱런을 향한 첫 번째 과제는 바로 내구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제를 풀어내는 순간, 4년차를 우려하는 기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