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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10’ 김승대의 임팩트, ‘양朴’보다 강렬
- 출처:MK 스포츠|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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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파괴자’로 불리는 김승대는 K리그 클래식에서 8골 5도움을 올리며 포항의 고공행진을 이끌었다. 아시안게임대표팀에 합류한 K리거 가운데 가장 빼어난 성적표다.
지난 1일 소집한 김승대는 등번호 10번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꽤 놀라워했다.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10번 유니폼을 입게 된 그는 “내가 10번을 받을 만한 위치인지 모르겠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준비를 더 잘 해야겠다”라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 부담감은 어쩌면 당연했다. 10번은 축구계에서 주축 선수를 상징한다. 역대 아시안게임대표팀에서도 10번은 매우 의미심장한 번호다. 범위를 최근으로 좁혀도 눈에 확 띈다. 2000년대 이후 아시안게임에서 10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뛴 선수는 ‘양朴’ 박지성(2002년)과 박주영(2006년·2010년), 두 명이었다. 그 10번의 계보를 이은 김승대였다.
박지성과 박주영이 아시안게임대표팀에 뛸 당시, 이미 한국축구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도 경험했다. 김승대는 월드컵은커녕 A매치 데뷔 경험도 없다. 이름값에서도 차이가 크다. 누구나 다 아는 박지성과 박주영과 다르게 김승대를 아는 이는 K리그 팬뿐이다.
하지만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통해 ‘전국구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김승대다.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주고 있는 기량과 팀 내 비중, 그리고 임팩프트는 ‘양朴’을 넘어설 정도다.
박지성과 박주영은 자신의 첫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강력할 임팩트를 심어주지 못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 8강부터 합류한 박지성은 허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나 2002 한일월드컵만큼의 강렬함을 보여주진 못했다.
4년 뒤 박지성으로부터 10번을 물려받은 박주영은 조별리그 첫 경기인 방글라데시전에서만 2골을 넣었을 뿐이다. 경고 누적으로 8강 북한전에 뛰지 못했으며, 이라크와 준결승 및 이란과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침묵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와일드카드로 다시 뛸 기회를 얻었고 4골을 넣었지만 분수령이었던 준결승 UAE전에서는 또 불발탄만 쐈다.
김승대는 K리그 클래식에서 활약상을 아시안게임대표팀에서 120%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월 쿠웨이트와 평가전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대표팀 4번의 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었다. 4경기 연속 골이자 팀 내 최다 득점이다. 팀의 8골 가운데 절반인 4골이 김승대의 발에서 나왔다. 진정한 해결사인 셈이다.
김승대는 지난 14일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조별리그 말레이시아와 1차전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후반 32분까지 한국은 답답한 경기를 펼쳤다. 전반 27분 임창우(대전)의 헤딩 선제골 이외에는 말레이시아의 밀집수비를 공략하지 못했다. 분명 실망스러웠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운 건 김승대였다.
후반 33분 김신욱(울산)에게 골을 양보하더니 4분 뒤에는 쐐기골을 터뜨렸다. 화려한 개인 기량을 넣은 골이었다. 혼자 힘으로 만들어낸 골 폭죽이었다. 답답한 속내가 뻥 뚫렸고 문학경기장은 그제야 뜨거운 환호가 터졌다.
아시안게임대표팀에는 김신욱을 비롯해 박주호(마인츠), 김진수(호펜하임), 윤일록(서울), 이종호(전남), 이재성(전북), 안용우(전남) 등 능력 있는 선수가 많다. 하나같이 중요한 선수들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펼친 플레이만 고려하면 단연 으뜸은 김승대였다.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존재였다.
김승대는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해 개인적으로 최고의 기회라고 표현했다. 지금까진 혼자서 잘 풀어가고 있다. 화려하게 빛나고 있으며 그의 이름이 더욱 각인되고 있다. 이제 첫 경기를 했을 뿐이지만 실로 강렬한 임팩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