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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터 송가연 "특전사 입대 목표였다"
- 출처:일간스포츠|201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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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60cm의 소녀는 화려한 조명과 강렬한 음악을 뒤로하고 옥타곤(8각형 모양의 링)에 올랐다.
데뷔전의 흥분 때문에 걸음은 평소보다 빨랐고 긴장한 탓에 미소는 어색했다. 경기 시작 직전이 되서야 아일랜드 밴드 스트립트가 부른 자신의 등장음악 ‘홀 오브 페임(Hall of Fame)‘의 리듬에 맞춰 오른발을 까딱거리는 여유를 찾았다. 홀 오브 페임의 뜻은 ‘명예의 전당‘이다. 강인한 인상을 주기 위해 평소 즐겨하는 생머리 대신 드레드록(dreadlocks)이라고 불리는 레게 머리를 땋았다.
하지만 계체량 통과를 위해 한 달간 8kg을 감량한 탓에 눈은 움푹 들어갔고 화장기 없는 민낯은 푸석해 안쓰러워 보였다. 복부에 선명하게 새겨진 왕(王)자는 그동안 견뎌낸 혹독한 훈련량을 말해주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숨소리가 거칠어질 수록 애띈 얼굴도 벌겋게 부어올랐다. 멋지게 땋은 머리는 산발이 됐지만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심판이 승리를 선언하던 순간 ‘작은 야수‘처럼 울부짖던 그는 영락없는 ‘파이터‘였다.
‘8각 철망링‘ 속에서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종합격투기 로드FC 여성 선수 송가연(20·팀원)은 17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로드FC 017‘ 스페셜 메인 이벤트 47.5kg급 경기에서 일본의 에미 야마모토(33·모리짐)를 1라운드 2분23초 만에 TKO승으로 눌렀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자 송가연은 ‘스무살 소녀‘로 돌아왔다. 그는 "진짜 신난다. 앞으로 파이터로 승승장구하겠다"며 링 위를 방방 뛰어다녔다.
송가연은 곱상한 외모 때문에 ‘미녀 파이터‘로 불렸다. 그래서 격투기보다 연예계에서 먼저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현재 SBS 예능프로 룸메이트에 출연 중이다. 데뷔도 안 한 선수가 공중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주목을 받자 일각에선 "예쁜 얼굴의 운동선수 설정을 들고 나와 인기몰이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격투계의 신데렐라‘는 하루 아침에 탄생한 게 아니다. 송가연은 중학교 때 합기도를 시작하면서 일찍부터 ‘무도의 길‘을 걸었다. 부산 경호고등학교에 진학한 송가연은 다른 친구들이 맛집을 찾아다닐 때 체육관에서 140명의 남자 동기들과 몸을 부딪히며 유도, 검도, 절권도, 태권도 같은 종목의 단증을 땄다. 학교에서 하는 운동이 성에 차지 않아 방과 후엔 따로 킥복싱까지 배웠다. 2013년 경산대학 경호학과에 입학한 뒤에도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들이 미팅할 때 송가연은 체육관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또래 친구들처럼 군입대 하는 남자친구를 따라 훈련소를 찾는 대신 특전사 입대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정문홍(40) 로드FC 대표를 만나면서 종합격투기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로드FC는 국내 격투기 단체다.
운동을 일찍 시작했다고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송가연은 악바리 근성의 소유자다. 송가연을 지난해 11월부터 지도한 박창세(37) 감독은 "송가연은 근성이 대단하다. 체력만 놓고 보면 오히려 남자 선수들보다 낫다. 5분 동안 실전처럼 몸을 움직이고 1분 쉬는 가상의 라운드를 10회(타이틀 매치를 제외한 로드FC의 경기는 5분 2라운드제) 이상 반복해도 끄떡없다"고 평가했다.
송가연의 악착같은 노력은 데뷔전 승리의 비결이다. 박 감독은 당초 데뷔전을 앞두고 "타격기 위주로 훈련했다"며 복싱 스타일의 경기 양상을 예상케 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승부를 가른 기술은 유도 기술인 허벅다리걸기에 이은 상대의 상체를 제압한 그라운드 기술 마운트였다. 송가연이 평소 복싱 외에도 유도와 레슬링에 시간을 할애한 덕분이었다. 박 감독은 "송가연은 한 번 연습한 기술은 될 때까지 한다. 허벅다리걸기에 경우에도 시합 3달 전부터 쉬지 않고 몸에 익힌 결과물"이라며 "이제 갓 프로세계에 입문 선수지만 격투기 선수의 재능과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2~3년 내에 아시아 정상급 선수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송가연의 소속팀 동료 권민석(25)은 "오래 전부터 다양한 운동으로 다져졌다. 바쁜 시간을 쪼개 훈련에 참가한다.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없는 몸과 경기력이다"며 송가연을 치켜올렸다.
박 감독의 말처럼 송가연은 뼛속까지 격투기 선수의 마음가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예쁜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는 그럴 때마다 "그런 건 하나도 두렵지 않다. 멍들면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고, 찢어지면 꿰매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