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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애나 '기량발전상'의 잔혹사
- 출처:루키|201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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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량발전상 수상? 아이고~ 의미없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인디애나 페이서스가 이상한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팀의 에이스 폴 조지가 미국국가대표 청백전 도중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이외에도 페이서스 소속으로 ‘기량발전상‘을 수상한 선수들은 모두 불운을 겪어 왔다.
리그에는 그간 "수상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망한다(?)"는 ‘기량발전상의 저주‘가 떠돌곤 했다. 하지만 특정 팀 선수들이 무더기로 악재를 당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루키』가 인디애나의 기량발전상 잔혹사를 거꾸로 되짚어 봤다.
2012-13시즌 수상자 폴 조지
조지는 2010년 드래프트 1라운드 10순위로 인디애나의 부름을 받았다. 일찌감치 페이서스의 터줏대감 대니 그레인저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낙점 받았다. "코비 브라이언트를 좋아해 등번호 24번을 선택했다"던 조지. 코비의 열정마저 본받은 것일까. 시즌이 개막할 때면 언제나 본인의 약점을 개선하여 등장했다.
2012-13시즌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대단히 인상적인 장면을 여러 차례 연출했다. 리그 최고의 선수 르브론 제임스와 쇼다운을 펼치며 입신양명한 것. 언론과 팬들은 인디애나의 미래를 이끌 적임자가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2013-14시즌에는 생애 처음으로 평균 20점 벽을 돌파(21.7점)하는 등 ‘더 맨‘으로 거듭났다. 시즌 내내 팀을 이끌며 한 팀의 에이스로 손색 없는 활약을 펼쳤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미국 대표팀 19인 로스터에 발탁되는 영예도 안았다. 조지의 미래는 탄탄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국 대표팀 쇼케이스 청백전 행사 도중 불의의 부상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오른쪽 정강이뼈가 부러지면서 최소 1년간 코트 위에 설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고 근육 및 신경 손상은 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2008-09시즌 수상자 대니 그레인저
데뷔 당시의 그레인저는 출중한 수비력으로 더 주목을 받던 선수였다. 2005년 페이서스 입단 이후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07-08시즌에는 이미 19.6점을 올리며 위협적인 공격수로 거듭났다.
2008-09시즌은 그레인저 생애 최고의 시즌이었다. 평균 25.8점, 5.1리바운드, 2.7어시스트, 1.0스틸, 1.4블록, 3점슛 2.7개(40.4%)를 기록, 올스타로 선발되는 등 단번에 리그 최고의 스윙맨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기량발전상을 수상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후 신기할 정도로 꾸준히 부상에 시달리며 무너졌다. 무릎, 발, 발목, 정강이 등 부위(?)도 다양했다. 몇 년에 걸친 부상 퍼레이드는 그레인저의 기량을 갉아먹었다. 2012-13시즌 개막을 앞두고 당한 무릎 부상은 치명적이었다.
결국 인디애나는 그레인저를 팔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대권에 도전했던 2013-14시즌 도중, 그레인저를 필라델피아 76ers로 트레이드했다. 토사구팽 당한 그레인저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리더를 잃은 인디애나는 순식간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2001-02시즌 수상자 저메인 오닐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실패한 고졸 루키에서 리그 최고의 빅맨으로 성장했던 선수가 있었다. 지금은 선수생활 황혼의 문턱에 오른 저메인 오닐 이야기다. 오닐 역시 기량발전상의 저주를 피해가지 못했다.
오닐은 ‘전설의 드래프트‘로 손꼽히는 199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7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대학을 건너뛰고 바로 프로에 진출한 탓에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프로 초반에는 존재감이 없었다. 첫 네 시즌 동안 평균 3.9점, 3.1리바운드를 기록했을뿐이었다. ‘올스타 군단‘으로 불리던 당시 포틀랜드 빅맨진은 어린 오닐에게는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과 같았다.
그런 오닐이 2000-01시즌 인디애나 이적 후 놀라운 반전을 일으켰다. 빼어난 수비력을 과시하며 주전 빅맨으로 자리 잡은 것. 2001-02시즌에는 공격기술까지 장착하며 평균 19.0점, 10.5리바운드를 기록, ‘기량발전상‘을 수상했다. 올스타 선정은 덤이었다.
승승장구하던 오닐은 2004-05시즌 기세가 꺾인다. 메타 월드피스가 관중폭행사건을 일으켰고, 흥분을 참지 못한 오닐이 관중에게 주먹을 날린 것. 오닐은 25경기 징계(훗날 15경기로 완화)를 받았다.
징계에서 돌아온 오닐은 한 경기에 55점을 퍼붓는 등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하지만 얼마 후 당한 어깨 부상을 시작으로 부상의 악령에 시달리게 된다. 2005-06시즌에는 사타구니 부상으로 24경기나 결장해야 했다.
2007-08시즌 도중 당했던 무릎 부상은 결정적이었다. 이때 이후 오닐은 다시는 전성기적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게 됐다. 다섯 차례나 유니폼을 갈아입기도 했다. 전도유망한 올스타 빅맨은 어느덧 만 35살을 넘겼다. 기량 역시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떨어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