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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도 러시아', 변이된 내셔널리즘의 딜레마
- 출처:스포탈코리아|201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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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녀’, ‘보드카’. 이들은 러시아를 수식하는 대표 키워드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이 ‘러시아 축구’다. 최근 유수의 해외 축구 언론을 통해 러시아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출몰하지만 우리는 정작 러시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스포탈코리아’가 준비했다. 매주 금요일 ‘풋볼스키’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의 최신 이슈와 소식을 독자에게 전한다.
스포츠는 아름다운 전쟁이다. 공정한 룰에 따라 축적된 폭력성을 맘껏 분출하며 세계인의 우정과 화합을 다지게 한다. 그래서 효과 면에서 보면 스포츠만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아름다운 전쟁도 없다.
2014 소치 동계 올림픽도 그랬다.
우리는 ‘내셔널리즘’이라는 이름아래 올림픽 메달의 개수로 나라와 민족의 서열을 나눴다. 그 서열에 따라 우월감 혹은 열등감을 느꼈고, ‘우리나라‘, ‘우리팀‘의 경계를 더욱 공고히 하며 짜릿한 욕망을 채웠다. 올림픽에 나서기 위해 귀화해야 했던 안현수의 3관왕 성공이야기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김연아에게 은메달(사실은 금메달)이라는 석연치 않은 판정을 내린 러시아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물론 ‘김연아 논란’에 대해서 국민들이 울분을 토하는 것을 ‘내셔널리즘’이라 정의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가시적 이익을 위해 불합리하고 비원칙적인 판정을 내린 올림픽위원회를 질타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는 올림픽의 기본 정신을 다시 되찾으려는 합리적인 의사 활동이며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김연아 논란’이 시간이 지나며 ‘타도 러시아’의 성격을 띤 내셔널리즘식 맹목적 비난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그 영역이 축구판까지 번지고 있는 것은 분명 짚어볼 문제다.
‘타도 러시아’의 방점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첫 조별리그 경기인 러시아전에 있다.
축구팬을 비롯한 다수의 국민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한국이 러시아에게는 반드시 승리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타도 러시아’의 영역은 갈수록 넓어져 일부 스포츠팬들은 러시아 스포츠계(프로 축구 리그 포함)를 편파 판정을 내린 ‘올림픽위원회’와 동급화하며 매도하는데 까지 이르고 있다.
축구협회의 공식 사이트를 들어가 봐도 ‘타도 러시아’ 현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축구협회의 공식 사이트의 자유게시판(팬존)에는 많은 축구팬들이 김연아 판정 논란이 있은 후 과격한 어조로 ‘러시아만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사실 축구가 유독 내셔널리즘이 강한 스포츠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역사학적으로 국가간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스포츠는 축구가 유일하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지배부족이 피지배부족의 무덤을 파서 두개골을 꺼내 발로 차고 다니며 우월성을 과시했다는 데서 축구의 특별한 내셔널리즘이 발원한다고 주장한다. ‘김연아 논란’에서 비롯된 분노가 러시아전으로 이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타도 러시아’로 부터 파생된 ‘실’이 ‘득’보다 많을 수 있다는 점이다.
팬들의 바람대로 대표팀이 러시아전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이보다 더 좋은 호재가 없을 것이다. 월드컵과 같은 토너먼트 경기는 흐름과 분위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패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러시아를 이기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대표팀을 향한 질책과 비난으로 이어질 것이며 같은 맥락에서 대표팀 분위기는 급락할 것이다. 벨기에, 알제리 등과의 조별 예선 경기가 남아 있음에도 대표팀은 우선 과제를 놓친 패배자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패배의식이 남은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도 자명하다.
홍명보 감독 또한 과열된 분위기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홍명보 감독은 27일 열린 대표팀 유니폼 공개 석상을 통해 “이번 동계 올림픽을 통해서 국민의 한사람으로 억울한 마음은 있다. 하지만 축구와 그것을 연결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됐을 때 그 쪽에 너무 치우치면 선수들이 다른 불필요한 면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과는 별개다”며 과열된 ‘내셔널리즘’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 축구리그를 폄하하며 세계 축구의 흐름에 뒤쳐지는 것도 변이된 내셔널리즘의 부작용중 하나다.
러시아 리그는 클럽들의 고른 성장을 바탕으로 2012/2013 시즌 UEFA 리그 랭킹 8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수치는 ‘준 명문’ 리그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의 1부 리그 ‘에레디비지에’를 넘는 수치다. 러시아 리그가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명문 리그’로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연유에서 러시아 리그에 대한 맹목적 비난은 현대 축구판의 흐름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낳는다. 완전히 뿌리 내리지 못한 한국 축구가 열린 마음으로 배움의 자세를 견지해야 할 때에, 역행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역설적으로 지금은 러시아.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 축구에 대한 관심을 더 가져야 하는 시점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듯, ‘불모지’로 여겨졌던 러시아 축구에 대한 연구가 비롯돼야 장외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러시아전 승리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편집적인 집착을 유일한 탈출구로 여긴다면 다른 탈출구가 없다는 것, 이것 또한 ‘타도 러시아’의 또 다른 딜레마다.
승부는 냉정한 법이다.
감정적 대처가 승리를 약속하지 않는다. 외려 우리는 냉철함과 이성적인 자세로 러시아를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 김연아로 비롯된 한(恨)을 간접적으로나마 풀 수 있다. 마치 2002년 솔트 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서 억울하게 빼앗긴 김동성의 금메달이 2002 한.일 월드컵 미국전을 통해 귀중한 동점골로 승화됐던 가장 극적인 사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