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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수비수에 꽂힌 中 축구, 싹쓸이 시작되나?
- 출처:서호정 칼럼|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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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K리그 이적시장의 화두는 중국 슈퍼리그의 침공이다. 인재 유출을 넘어 수탈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K리그 스타플레이어들의 중국행은 일방적인 흐름이고,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까지 등록된 중국 슈퍼리그의 외국인 선수 65명 중 9명이 한국 선수다. 이는 전체의 14%에 해당하는 비중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 수출국인 브라질(20명, 31%) 다음으로 높다. 현재 2~3명의 한국 선수가 추가로 중국행을 타진하고 있어 그 비중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흥미로운 것은 특정 포지션에 대한 선호가 이상할 정도로 높다는 것이다. 현재 등록된 9명의 한국 선수 중 8명이 올 시즌 새롭게 선을 보일 뉴페이스인데 그 중 5명이 센터백 포지션이다. 한국 수비수에 대한 중국 슈퍼리그의 사랑이 각별해서 하나의 현상으로 보일 정도다. 한국 수비수에 대한 수요가 높다 보니 국가대표 경력이 없고, 리그에서도 숨은 진주 정도로 통하던 선수들까지 싹쓸이하고 있다. 저인망식 영입이 펼쳐지는 것이다.
김영권 효과… 中 진출 8명 중 5명이 센터백
90년대 초중반 노정윤, 홍명보의 활약은 J리그 러시를 불러왔다. 2000년대 중반 박지성, 이영표의 성공은 EPL 러시의 출발점이 됐다. 중국 슈퍼리그로의 무더기 진출에도 계기가 있다. 바로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수비수 김영권이다. 2012년 여름 광저우 에버그란데로 이적한 김영권은 하나의 이정표로 삼아도 될 정도의 돋보이는 활약상을 남겼다. 중국 국가대표 수비수인 펑샤오팅과 함께 팀 수비라인을 이끌며 2012년 리그와 FA컵 우승에, 2013년 AFC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중국 축구사정에 밝은 축구인들은 하나 같이 “김영권의 활약이 지금의 흐름을 만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 증거가 수비수들에 대한 구애다. 올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중국 슈퍼리그에 입성한 선수는 총 8명이다. 그 중 5명이 전문 센터백이다.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센터백까지 보는 손대호까지 감안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가장 최근 중국 무대 진출이 알려진 박종우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다. 각 팀들이 수비 안정을 꾀하기 위한 영입으로 한국 선수를 선호하고 있다. 김형일, 곽희주 같은 K리그의 또 다른 정상급 수비수들도 중국 무대 진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중동 무대에서 뛰지만 이정수, 조성환도 꾸준히 영입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이정수의 경우 2012년 여름 산둥 루넝으로의 이적이 구체화됐다가 알 사드와 재계약했다.
※ 중국 슈퍼리그 2014시즌 한국 선수 리스트
왜 한국 수비수들을 선호하나? 기량+책임감
김영권은 현재 축구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 수비수다. 즉, 한국의 수비자원 중 최고 기량을 지닌 선수라는 얘기다. 중국 무대로 가는 수비수들이 모두 그에 준하는 실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너나 할 것 없이 한국 수비수들에게 매달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2~3년 전에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호주 수비수들의 잇단 중국 러시였다. 사실상 유럽 선수인 호주의 수비수들에 매력을 느낀 슈퍼리그의 팀들은 아시아쿼터 대부분을 호주 출신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로 채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그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한국 선수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한국 수비수들이 선호되는 첫 번째 이유는 기량이다. 5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할 수 있는(아시아 쿼터 1명 포함) 중국 슈퍼리그는 대부분의 카드를 공격에 할애한다. 브라질과 유럽, 아프리카의 수준급 공격수들을 잡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공격은 개인전술이 주인데 여기에서 브라질, 유럽 선수들의 기량은 훨씬 앞서 있기 때문이다. 수비는 주로 자국 선수들과 아시아쿼터로 보강을 하는데 여기에서 한국 선수들의 경쟁력이 나타난다. 수비진의 비교대상들 중 한국 수비수들은 전술 이해도가 높다. 거칠게 몸으로 부딪히는 중국이나 호주 수비수들보다 세련된 수비를 펼친다. 과거 다롄 스더에서 뛴 바 있는 서울의 주장 김진규는 “개인 능력은 비슷비슷하다. 그런데 전술 이해도 뛰어나니까 중국 코치들이 한국 선수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책임감이다. 팀에 대한 정신력을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한국 수비수들을 원한다는 것이다. 최근 소속 선수를 중국 무대로 진출시킨 한 에이전트는 “결국 수비는 버텨주고 한발 더 뛰어줘야 하는데 그런 정신력 면에서 한국 선수들이 다른 중국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고 자극을 준다는 얘기를 구단 고위층으로부터 들었다. 중국 축구계에 한국 수비수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공유되고 있단 느낌이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시선은 비단 중국만의 사례가 아니다. 중동에서도 한국 수비수에 대한 인기는 굉장히 높다. 중동 쪽 사정에 밝은 에이전트는 “최근 구단에 가서 선수 프로필을 돌리면 괜찮은 수비수나 미드필더 없냐는 얘기부터 한다. 20대 초중반의 성장 가능성 높은 공격수를 더러 원하는 데가 있지만 대부분은 수비수를 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겨울 30대 초중반의 이름값 있는 공격수들이 다수 시장에 나왔지만 중국 슈퍼리그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 J리그 2부 리그로 향해야 했다.
A급이 아니어도 좋다… 저인망식 싹쓸이
한국 수비수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보니 프로필을 채울 만한 특별한 경력이 없어도 영입 제안은 이어진다. K리그 상위권에 있는 기업구단의 준주전급 선수, 시민구단의 주전급 선수도 주요 타깃이다. 우승 경력이 없어도 상관 없다는 반응이다. “예전에는 국가대표 경력 유무가 영입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였는데 요즘은 선수 활약상이 담긴 비디오를 직접 보자고 한다. 이미 해당 선수에 대해 꽤 파악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게 중국 사정에 밝은 한 에이전트의 전언이다. 실제로 올 겨울 중국으로 나간 선수들 중 이지남, 윤신영의 경우는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두 선수 모두 각자의 소속팀에서는 부동의 주전 수비수였지만 리그 전체를 보면 A급은 아니었다. 상위권 팀으로 가도 주전이 될까 말까 한 레벨이지만 중국 슈퍼리그에서는 그들을 불렀다. 윤신영의 이적료는 10억원, 이지남의 이적료는 6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은 K리그 내 선수 순환에 적잖은 타격으로 작용한다. 시민구단들은 가능성 있는 선수를 좋은 상품으로 키워 기업구단들로부터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보내는 ‘낙수 효과’에 기대는 면이 컸다. 그런데 최근 국내 구단들의 재정 상황이 위축되면서 그 이적료를 감당할 수 있는 중국 무대로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선수들도 2배에서 3배 가량의 연봉 인상을 기대할 수 있는 중국 무대로 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눈치다. 쓸만한 수비수들은 점점 줄어드는데 그마저도 중국 무대로 향하는 분위기가 생기자 기업구단들의 보강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K리그 시장은 점점 상승하는 선수의 가치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월드컵, 올림픽, AFC 챔피언스리그 같은 국제대회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에 대한 고평가는 곧 돈으로 이어지는데 다수의 구단들의 자금줄이 마르면서 외부로 나가는 경향이 더욱 커진 것이다. 기업구단과 시민구단을 가릴 것 없이 K리그 구단들이 자생력 없이 모기업과 자치단체에만 의존해 온 지난 세월이 만들어 낸 부메랑 효과다. 시소는 이미 중국 무대로 기울었다. 90년대엔 한국의 A급 선수들이 중국 무대로 거의 가지 않았다. 2010년을 전후해 안정환, 김진규, 조원희, 김동진 등이 진출하면서 일어난 지각변동은 이제 전성기에 있는 선수들까지 중국 무대로 향하는 지진으로 번졌다. 당분간 이 같은 현상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K리그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돌릴 순 없는 일이다. 자본의 힘을 부정할 수도 없다. K리그에겐 고민이 깊어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