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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대박이라 삶이 달라지진 않아"
- 출처:이영미 칼럼 |201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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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2일, 1억3000만 달러(1370억 원)의 사나이 추신수와 그의 가족들이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약 보름 가량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던 추신수는 미국으로 출국 전, 가족들에게 의미있는 이벤트를 준비했고, 그 중 하나가 가족사진 촬영이었다. 3년 전, 막내 딸 소희가 태어난 이후 소희와 함께 한 가족사진이 없는 게 마음에 걸렸던 추신수와 아내 하원미 씨는 여성지 <우먼센스>와 함께 ‘추 패밀리’의 가족 화보를 찍기로 했던 것이다.
연극영화를 전공한 엄마의 잠재된 ‘끼’ 덕분인지 아이들과 함께 한 다섯 시간동안의 촬영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고, 무빈(9), 건우(5), 소희(3), 세 아이들은 촬영할 때마다 멋진 포즈를 취하며 포토그래퍼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중에서 화보 촬영 경험이 가장 많은 아빠, 추신수는 화이트 셔츠에 네이비 슈트로 댄디하면서도 세련된 매력을 뽐냈고, 블랙니트 원피스에 더블 재킷으로 시크함을 더한 하원미 씨는 세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델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FA(자유계약) 선수 신분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에 1억 30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성사시킨 추신수. 야구장에서는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와 뛰어난 성적으로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면, 집에서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가정적인 남편과 아빠였다.
촬영하는 틈틈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추신수는 남다른 가족애를 나타내며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하곤 했다. 인터뷰의 처음은 추신수가 담당했고, 그 후론 아내 하원미 씨가 바톤을 이어받아 이야기를 풀어냈다. 먼저 추신수 얘기다.
야구선수 아빠가 아이들을 대하는 법
추신수는 ‘딸 바보’로 소문나 있다. 소희는 2010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생긴 ‘골드 베이비’. 딸을 소원했던 그로선 딸을 키우는 재미와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아들을 대할 때랑 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고요. 무빈이와 건우는 사내 애들이라 엄하게 키우는 편이에요.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법, 식당에서의 예절, 동생과 싸우지 않는 것 등등을 지키지 않으면 혼이 나는 편이거든요. 반면에 소희가 오빠를 때리거나 엄마를 보채며 울 때는 그냥 봐주게 돼요. 그렇게 울다가 한 번 애교부리면 모든 게 끝나니까(웃음).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아! 이래서 다들 딸을 키우려고 하는 거구나’ 싶다니까요.”
추신수의 딸 자랑은 끝이 없었다. 아내 하원미 씨의 말에 의하면 만약 셋째도 아들이었다면 넷째를 또 기다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남편이 얼마나 딸을 소원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추신수의 아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생활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는 터라 영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집에서 만큼은 철저히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중요시한다.
“마이너리그 시절, 얼굴은 한국 사람인데 한국 말을 못하는 재미교포들을 많이 봤어요. 전 그런 모습이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얼굴이 한국인이면 최소한 한국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죠. 어디에서 태어나든, 어디에서 생활하든, 우린 한국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글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했어요. 당연히 한글학교에도 보냈고요. 집에서 영어를 쓰면 혼나는 편이에요. 아이들이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집에서 만큼은 서로 한국어로 대화하려고 노력해요.”
아빠를 따라 리틀야구를 하고 있는 무빈이는 지난 시즌 신시내티에서 소중한 경험을 했다. 신시내티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허락을 받고 아빠와 함께 더그아웃에 앉는 행운을 거머쥔 것이다. 무빈이는 경기 중인 선수들에게 물도 갖다 주고, 수건도 챙기는 등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선수들을 챙겼다.
“감독님들 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더스티 베이커 감독님은 선수의 아이들이 더그아웃에 함께 하는 걸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한국 같으면 상상도 안 되는 그림이죠? 때마침 무빈이가 여름방학을 맞아 신시내티에 왔고, 야구선수를 꿈꾸는 아들에게 중요한 경험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에 무빈이를 경기장에 데려갔었죠. 그런데 때마침 무빈이가 더그아웃에 앉은 날, 우리 팀의 호머 베일리라는 투수가 노히트노런이란 대기록을 달성한 거예요. 경기가 종료되자마자 선수들이 호머 베일리 선수를 축하해주러 마운드로 달려갔는데, 제일 먼저 뛰어가서 하이파이브를 한 사람이 바로 무빈이에요. 그 장면은 ESPN-TV를 통해 미국 전역에 방송돼 나갔고요. 무빈이가 일약 스타가 된 셈이었죠.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갖게 해준 것 같아 굉장히 기뻤어요.”
추신수가 인터뷰를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랑하는 딸 소희와의 촬영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 하원미 씨가 멋진 정장 차림을 하고 기자 앞에 앉았다. 평소 입지 않는 옷을 입어 쑥스럽고 불편하다는 그가 기자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미국에선 그냥 세 아이의 아줌마인데, 한국에 오니까 이런 멋진 옷들도 입게 되네요. 걱정이 돼서 그런지 무빈 아빠가 자꾸 ‘세뇌’를 시켜요(웃음). 이런 호사는 한국에서 뿐이라고. 미국 가면 바로 ‘밥하는 엄마’로 돌아가는 거라고. 그건 무빈 아빠가 얘기를 안해도 제가 너무 잘 알아요. 이렇게 멋진 스튜디오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촬영을 한다 해도 가장 잘 어울리고 편한 모습은 아내와 엄마의 자리라고요. 그 자리에 있을 때 제가 가장 행복해 한다는 사실을요.”
내조의 여왕? No! 노하우의 여왕!
하원미 씨의 이름 앞에는 ‘내조의 여왕’이란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붙는다. 실제 추신수 팬카페인 ‘레일로더스’에서도 추신수의 팬들과 직접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데, 닉네임이 ‘내조의 여왕’이다.
“내조의 여왕이란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지만, 제가 정말 내조의 여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은 내조보다는 ‘노하우의 여왕’ 정도?(웃음)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잠자는 시간 빼놓고 하루 종일 가족들을 위해 일하게 돼요. 남편이 잠들어 있을 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 보낼 준비하고 아침 먹이고 무빈이 학교, 건우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면 남편이 일어나요. 남편 식사 챙기고 소희 씻기고 나면 남편은 야구장으로 일찍 출근을 합니다. 남편 출근하면 전 마트가서 저녁 재료들을 구입해서 돌아와 미리 재료들을 씻어놔요. 아이들이 돌아오면 간식해서 먹이고, 다시 방과 후 학교에 보냅니다. 그 이후 두세 시간이 온전히 저만의 시간이에요. 그때 운동도 하고, 인터넷도 보고, TV도 시청하면서 소희랑 함께 보냅니다. 저녁에는 남편이 하는 경기를 보면서 저녁 챙기고, 아이들 재우면 남편이 밤 11시 쯤에 퇴근을 해요. 그때 남편을 위해 저녁을 차리고 남편과 뒤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게 보통 일과예요.”
하 씨는 도우미 없이 이 모든 일들을 혼자 감당한다. 종종 도우미를 구해 일을 분담할 때도 있지만, 결국엔 자신이 다 나서야 하는 일들이라 지금은 혼자 가사를 도맡고 있다는 것.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보면 하 씨의 수면 시간이 하루 평균 4~5시간 밖에 안 된다고. 아이들과 남편의 스케줄이 다르다보니 엄마이자 아내인 하 씨만 육체적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남편을 위해 제대로 된 내조를 하기가 어려워요. 남편에게 이전보다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아서 속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그럴 때마다 무빈 아빠가 이렇게 말해줘요. ‘지금은 나를 돌보는 것보다 아이를 건강히 잘 키워주는 게 진정한 내조’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무빈 아빠의 자상한 면면에 다시 한 번 감동과 감사를 느꼈습니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명한 ‘성실맨’이다. 애리조나에서 펼쳐지는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새벽 5시 출근은 오랫동안 회자되는 추신수의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그로 인해 벌어진 에피소드 하나.
“몇 년 전 일인데, LA는 서머타임이 적용됐고, 애리조나는 서머타임이 적용이 안돼 1시간 차이가 났던 때가 있었어요. 무빈 아빠랑 LA에 다녀온 후 시간을 1시간 늦게 맞춰놔야 애리조나 시간이랑 맞는데, 시간 맞추는 걸 깜박 잊고 그냥 잤던 거죠. 무빈 아빠가 자다가 눈을 뜨니까 새벽 5시였던 거예요. 그 시간이면 이미 운동장에 가 있어야 했던 시간이었는데 그때 일어났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순간 나한테 화를 내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준비시켜서 출근을 했는데, 좀 있다가 무빈 아빠한테 전화가 왔더라고요. ‘미야, 아직 문도 안 열었다. 서머타임이 아닌데 시간을 안 맞춰놨네’라면서 나한테 미안해하더라고요. 한참을 웃었죠.”
추신수는 아내도 두 손 두 발 들게 하는 ‘정리 대장’이다. 세 아이들이 놀며 어지럽혀 놓은 장난감들은 물론 자신의 드레스룸의 옷을 종류별, 색깔별로 말끔히 챙겨 놓거나 속옷도 브랜드가 보이도록 개켜서 순서대로 나열해 놓는 스타일이다. 남편의 유별난 정리벽으로 인해 가끔 충돌이 빚어지기도 하지만, 지금의 하 씨는 남편의 정리 습관을 오히려 즐기는 수준이 됐단다. 덕분에 자신의 할 일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이동의 대부분을 항공에 의지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환승 시의 기다림, 연착, 결항 등으로 인해 종종 해프닝을 겪을 때가 있다. 그중 최악의 순간이 2012년 12월 세 아이를 데리고 혼자 귀국했을 때의 상황이라고 한다.
“그때 무빈 아빠가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퇴소할 때라 그 시기에 맞춰 애리조나에서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도전을 벌였어요. 백일이 갓 지난 소희가 잘 자준다면 무빈, 건우는 어느 정도 데리고 다닐 수 있다고 굳게 믿고 탑승을 했는데 생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본 소희가 이륙 전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12시간 내내 울다 자다를 반복하는 거예요. 소희가 우니까 건우도 울고 무빈이는 무빈이 대로 짜증을 내고…. 정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거죠. 스튜어디스 분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아이를 돌봐주려 해도 아이들은 더 울어대고, 아!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악몽 그 자체예요. 제가 힘든 건 참을 수 있는데 우리 아이들로 인해 다른 승객들이 피해를 보니까 얼마나 미안하고 민망하고 죄송했겠어요. 아마 다른 승객들은 저를 이상한 여자로 봤을 겁니다. 그때 스튜어디스 중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스튜어디스 일 하면서 엄마 혼자 아이 셋 데리고 비행기 타는 사람은 처음 봤다’라고요.”
대부분 남편 없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하원미 씨는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편이다. 스물한 살, 남편의 마이너리그 생활 때부터 시작된 ‘홀로서기’는 세 아이를 둔 지금도 변함없는 부분이다.
자신의 꿈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여자
하원미 씨는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다 추신수를 따라 미국 생활을 시작하는 바람에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일반 학과도 아닌 연극영화를 전공할 정도라면 그가 어떤 꿈을 갖고 있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꼭 연기자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그때는 졸업하고 바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스튜어디스를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러다 무빈 아빠를 만나게 된 거예요. 꿈을 이루지 못해 아쉬웠냐고요? 아니요. 전혀요. 저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는 남자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마이너리그 시절, 돈이 없어 고생은 했어도 함께 소꿉장난하는 것 마냥 알콩달콩 사랑하며 살았던 시간들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하루하루가 행복했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 이대로 평생을 살라고 해도 살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죠.”
하 씨는 남편이 원정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가슴에 품고 들어오는 선물들을 보며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 보니 10불, 20불하는 셔츠나 치마 등을 사서 아내에게 안겨준 추신수. 그런 선물을 맵시있게 입어 보이며 남편 앞에서 패션쇼를 했던 아내 하원미.
“결혼식은 생략하고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주년이 된 날이었어요. 무빈 아빠가 예물 시계라며 300불짜리 남녀 게스 시계를 사왔더라고요. 그 시계 받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요. 정말 기뻐서요. 그 시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던지, 평소에는 차지도 못하고 서랍에 넣어놨다가 파티가 열리거나 중요한 자리에만 그 시계를 차고 나갔어요. 지금은 그보다 훨씬 비싼 시계를 차지만, 내 생애 최초의 예물 시계였던 그 게스 시계만큼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요. 무빈 아빠한테 받은 선물들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모아놨어요.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다 보여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