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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크로아전에 드러난 제로톱의 명암
출처:코리아골닷컴|201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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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이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 제로톱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홍명보 감독이 또 다시 후반 승부수로 제로톱 카드를 꺼내들었다. 전반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단 하나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한 원톱 공격수 조동건을 대신해 한국영을 투입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던 구자철을 최전방으로 전진 배치시킨 것. 이미 지난 아이티와의 평가전에서도 홍감독은 구자철 제로톱을 실험 가동한 바 있다.

효과는 있었다. 분명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 한국은 전반과 후반, 판이하게 달라진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후반 시작부터 골을 허용하기 직전이었던 20분간 한국 선수들이 선보인 경기력은 상당히 매서웠다.

사실 전반만 하더라도 한국은 미드필드 싸움에서 완패하는 문제를 노출하며 이렇다할 공격 장면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이청용만이 개인 기량을 통해 상대의 측면을 파고 들면서 고군분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후반 들어 한국은 제로톱으로 전진 배치된 구자철이 자주 아래로 내려와 허리 싸움에 가담해 주었고, 한국영이 포백 바로 앞에서 청소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면서 미드필드 라인에서 크로아티아와 대등 혹은 근소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구자철과 한국영의 중원 싸움 가세 덕에 상대의 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김보경이 센스있는 크로아티아 수비 뒷공간을 향하는 전진 패스를 공급하면서 전반 부진했던 손흥민이 활기차게 측면 공격에 나설 수 있었다.

46분경 김보경의 감각적인 전진 패스를 손흥민이 상대의 오른쪽 측면을 파고 든 후 수비수 두 명을 제치고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을 기록한 게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자철 역시 영리하게 좌우 측면으로 볼배급을 해주며 한국의 공격을 빌드업해 나갔다.

문제는 딱 여기까지였다는 데에 있다. 전문적인 최전방 원톱 공격수가 부재하다보니 한국은 또 다시 고질적인 마무리 미숙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손흥민은 왼쪽 측면을 파고 들다보니 슈팅 각도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청용은 화려한 개인기를 통해 찬스를 만들어내면서도 마지막 순간 슈팅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비록 경기 종료 직전 이근호가 헤딩골을 넣어준 덕에 무득점 패배를 면할 수 있었던 한국이었으나 이는 경기 막판 크로아티아가 골키퍼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순간적인 집중력 부재에 의한 것이었기에 정상적인 득점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적장 이고르 스티마치 크로아티아 감독 역시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의 경쟁력은 유럽에서도 통할 정도로 상당히 높다. 모든 부분에 있어 선수들이 자신이 해야 할 몫을 해주었다. 스피드와 테크닉, 그리고 조직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완성됐는데 단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결정력이다. 이것이 크로아티아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축구는 결국 골을 넣어야 승리할 수 있는 스포츠이다"고 밝혔다.

제로톱에 대해 몇몇 전문가들은 미래의 전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브라질의 1994년 미국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알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은 2003년 축구 코칭 강연회에서 "미래의 축구는 4-6-0 전술이 될 것이다"고 예언한 바 있다. 독일의 전설이자 前 독일 축구 협회장 프란츠 베켄바워 역시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뛰어난 자원들이 즐비한 데 굳이 최전방에 정통파 공격수를 배치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제로톱이 장기적인 플랜A로 성공한 케이스를 찾는 건 그리 쉽지 않다. 물론 스페인이 제로톱을 통해 EURO 2012 본선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독일 역시 최근 들어 이따금씩 제로톱을 가동하는 경우가 있다. 국내에서도 포항 스틸러스가 제로톱을 통해 많은 재미를 본 구단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제로톱을 줄부상 혹은 원톱 공격수의 슬럼프에 따른 단기적인 처방 차원에서 플랜B로 활용하고 있을 뿐, 장기적으로는 원톱 전술을 고수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제로톱이 플랜A로 쓰이면서도 꾸준하게 호성적을 올린 구단 혹은 국가는 과거의 AS 로마(2005/06 시즌 당시 11연승)와 현재의 바르셀로나 외엔 딱히 떠오르는 팀이 없을 정도다.

이는 제로톱이 정상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선 프란체스코 토티나 리오넬 메시같이 좌우 측면에서 파고 드는 선수들에게 센스있게 패스를 찔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 원톱 공격수 못지 않게 등지는 플레이에도 능하면서 득점력 역시 겸비한 선수가 있어야 하기 때문. 즉,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과 공격수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동안 제로톱 역할을 수행한 스페인의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독일의 마리오 괴체 같은 선수들은 공격형 미드필더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공격수의 특성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포항황진성 역시 마찬가지. 이것이 바로 제로톱을 장기적인 플랜으로 끌고 가기 힘든 부분이었다. 두 가지 포지션이 동시에 가능한 선수는 전세계를 통틀어도 상당히 드물다. 토티와 메시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홍감독 역시 수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제로톱을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 제로톱은 단지 옵션에 불과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크로아티아전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도 "국내에서 쓸 수 있는 공격수는 제한적이다. 현 시점에선 사실상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구자철이건 이근호건 누군가 이 역할을 대체해야 한다. 이 문제가 언제 풀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속 노력은 해야 하지 않나 싶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물론 현재 한국은 홍감독의 표현대로 원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 자체가 제한적인 게 사실이다. 지동원은 소속팀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슬럼프에 빠졌고, 박주영은 아스널에서 출전 시간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이동국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김신욱김동섭, 그리고 조동건은 홍감독의 눈도장을 찍지 못했다.

즉,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라면 어설픈 원톱보단 차라리 제로톱을 활용하는 게 더 많은 이점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제로톱이 한국 공격의 해답을 제시해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상대가 아이티 같은 팀이라면 제로톱으로도 충분히 골을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와 같은 수준급 수비력을 갖춘 팀 상대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어쩌면 한국 대표팀에 있어 최선의 시나리오는 바로 지동원과 박주영이 컨디션을 회복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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