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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승과 4골에도 홍명보만 무표정이었다
출처:두서있는축구|201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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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세계무대에서 4강에 가야 비로소 홍명보의 웃음을 보게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자기 감정 표시를 웬만해선 자제하는, 그래서 웃음이 헤프지 않은 홍명보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빗댄 것이었다.

축구 국가대표팀에 부임한 뒤 치른 다섯 번째 공식전인 아이티전에서 홍명보 감독이 둘 수 있었던 의미는 승리가 유일했다. 앞선 4경기에서 대표팀은 3무 1패를 기록했었다. 홍명보 감독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옳다면 월드컵 본선 전까지 승리가 없어도 괜찮다”며 첫 승의 부담감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주변은 초조했다.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홍명보에 대한 신뢰는 밑바탕에 깔려 있지만 이번에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여론이 동요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승리 외의 또 하나의 과제는 골이었다. 앞선 4경기에서 단 1골을 넣는 데 그치며 득점력에 대한 의문부호가 붙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득점이 터지지 않는 데 담담해 하던 홍명보 감독도 페루전이 끝나고는 문제 의식을 보였다. 팀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수비와 조직력이 중요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골을 넣기 위한 공격과 개인능력이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이티전에서 홍명보호는 그 두 가지 숙제를 모두 풀었다. 4골을 터트리며 다득점에 성공했고, 4-1로 승리하며 첫 승도 거뒀다. 하지만 경기 내내 홍명보 감독의 양 미간에 모인 주름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골이 터져도 무표정하게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좀처럼 기쁨을 표시하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의 무표정은 무슨 의미였을까?



“의미가 퇴색된 승리였다”… 홍명보의 솔직한 소신

“오늘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 그 동안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준비를 했고 유럽에서 뛰는 선수도 합류해 처음 경기를 가졌다. 우리 팀에 좋은 경험이 된 경기였다.”

아이티전에 대한 홍명보 감독의 긍정적인 평가는 여기까지였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곧바로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첫승, 그리고 대승을 거둔 감독이 자신의 팀에 내리는 평가로는 인색할 정도였다. 그가 지적한 것은 빠른 선수들에 대한 수비진의 대처, 그리고 선제골을 넣은 뒤의 경기 운영 방식이었다.

“빠르고 강한 선수들을 상대로 수비진들의 대처가 이전 경기에 비해 썩 좋지는 않았다. 전반에 득점하기 전까지의 압박과 과정은 좋았는데 선제골을 넣고서 경험 상의 미숙을 드러냈다. 골을 넣고 우리의 리듬과 패턴으로 경기를 했어야 했는데 모든 라인이 쳐져 있었다. 상대에게 미드필드에서 공간을 허용했고 찬스도 내줬다. 전반 막판 실점은 당연한 결과였다.”

후반전 경기 내용과 결과에서의 우위는 사실상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한국은 1-1 동점으로 시작한 후반전 휘슬이 울린 지 3분 만에 이청용이 얻어낸 페널티킥으로 앞서갔다. 10분 뒤 이청용에 의해 또 한번의 페널티킥이 나왔다. 이 사이 아이티는 수비수 이브 데스마레가 경고 2회로 퇴장을 당했다. 후반 26분 손흥민이 2선 침투에 의한 골로 승리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후반 3분의 페널티킥과 9분 나온 퇴장은 판정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아이티의 생 장 피에르 감독은 “한국은 밸런스가 우수하고 월드컵 본선에 나갈만한 팀이다. 그러나 오늘 같은 심판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며 판정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홍명보 감독 역시 자신과 대표팀에겐 득이 된 후반전의 판정이 오히려 의미를 퇴색시켰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것이 후반에 잇단 골에도 무표정을 이어간 이유였다.

“우리 팀에 필요한 건 승리였고, 골이었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다. 후반에 숫자 상으로 같은 상황에서 했으면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는데 퇴장이 나오면서 느슨해졌다. 나도 이기면 좋고, 골이 들어가면 좋다. 하지만 후반에 페널티킥 2개를 얻고 상대 1명이 퇴장 당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없어도) 우리가 더 나은 경기를 할 수 있었는데 (결과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느낌도 받았다.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랐다.”

원칙, 그리고 과정을 중시하는 홍명보 감독으로선 단지 한숨을 돌리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승리하는 건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판정의 도움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대표팀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기고 득점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다. 아이티전은 이겼지만 홍명보 감독에게는 아쉬움 가득한 승리였다.



손흥민을 향한 신뢰가 빚은 2골은 소득

홍명보 감독에게 아이티전이 아예 무의미하진 않았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는 대표팀을 둘러싼 큰 과제 하나를 해결했다. 바로 손흥민 딜레마였다. 손흥민은 현재 한국 국적의 선수 중 가장 화제를 모은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올 여름에는 1,000만 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팀을 옮겼다. 이적 후에도 꾸준한 경기력을 자랑하고 있다. 박주영이 없는 상황에서 손흥민은 이청용과 함께 가장 확실한 공격 옵션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손흥민의 대표팀 내 가치는 소속팀에서의 그것과 비례하지 않았다. 2013년 들어 대표팀에서의 비중은 이전보다 점점 커져 갔지만, 손흥민의 입지는 여전히 주전급이라 볼 수 없었다. 대단한 능력을 지녔지만 어린 나이인 탓에 경기 운영과 전술 소화에 의문부호가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그것을 편견이라고 했다.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2경기에서 손흥민은 선발 기회를 잡았지만 특별한 활약을 펼치지 못하며 그런 편견을 깨는 데 실패했다.

홍명보 감독에게로 넘어온 손흥민 딜레마는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였다. 확실히 선을 긋지 않으면 또 다시 손흥민을 둘러싼 논쟁으로 대표팀은 불필요한 데 힘을 낭비할 수도 있었다. 아이티전을 앞두고 홍명보 감독은 손흥민을 따로 불렀다. 그는 “네가 교체해달라고 할 때까지는 빼지 않겠다”며 사실상 풀타임 출전을 약속했다. 손흥민에게 확실히 기회를 주겠다는 신뢰인 동시에 그에 부응하는 활약을 펼치라는 단호한 메시지기도 했다.

손흥민은 그 신뢰에 답했다. 선제골과 마지막골을 넣었다. 홍명보 감독도 약속대로 손흥민을 풀타임으로 뛰게 했다. 이날 공격진에서 풀타임을 뛴 것은 손흥민이 유일했다. 그 동안 원톱 체제를 쓰면서 최전방 공격수가 고립됐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홍명보 감독은 전반에 지동원, 이근호, 손흥민을 후반에 이근호, 손흥민, 구자철, 김보경의 조합을 쏟아부었다. 전형적인 최전방 공격수 없이 중앙과 측면 공격을 모두 볼 수 있는 선수들의 스위칭 플레이는 아이티 수비에 혼란을 일으키며 득점 찬스를 만들어갔다. 손흥민은 왼쪽 측면에 배치됐지만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공격을 이끌었다.

홍명보 감독은 단지 2골을 넣은 것만이 손흥민의 활약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는 “개인 능력도 있지만 뒤를 받쳐주는 선수들과 함께 만들어가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지금까지 대표팀에 와서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으니까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싶었다.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완벽하진 않았지만 본인이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라고 평가했다. 월드컵을 9개월여 앞두고 손흥민은 비로소 대표팀의 본격적인 무기로 자리 잡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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