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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은 위기감에서 시작한다
- 출처:SBS|201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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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BA(국제농구연맹)가 주관하는 국제무대가 한창이다.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지난 8월 11일, 막을 내렸지만 아프리카 챔피언십, 아메리카 챔피언십, 유로바스켓이 차례로 열린다. 각 대륙별로 대회 준비에 한창인 가운데 농구의 종주국이자 자타공인 세계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미국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국제무대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드림팀‘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으로 결성한 ‘리딤팀(redeem team)‘ 이래 미국대표팀은 햇수로 6년째 세계무대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나란히 3위에 그쳤던 미국은 어떻게 명예회복에 성공했을까.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미국을 꺾은 아르헨티나 대표팀
이대로는 안 된다
미국은 지난 2006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전임감독 및 상비군제도를 신설했다. 그간 미국 대표팀 사이에서 드러난 조직력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대표팀을 운용하기 위함이었다. 우선, 미국농구협회는 제리 콜란젤로(전 피닉스 선즈 단장)를 구성위원장(단장)에 앉혔다. 그는 "국제대회에선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스페인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팀을 이기기 위해선 조직력을 반드시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며 취임일성을 밝혔다.
미국은 이미 조직력과 관련한 홍역을 한 차례 겪은 바 있다. 동메달에 머물렀던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래리 브라운 대표팀 감독은 농구협회에 다음과 같은 요청사항을 보냈다. "(이 망할 놈의) 스테판 마버리를 다른 선수로 교체할 수 있습니까?" 올림픽 개막까지 불과 7일 앞둔 시점이었다. FIBA의 답변은 ‘No.‘ 규정 상 일주일을 앞둔 상황에서는 선수 교체가 불가능했다.
대표팀 분위를 저해한 마버리는 LTE급 속도로 브라운 감독의 눈 밖에 났다. 설상가상으로 대회 기간 내내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인 미국은 무려 5번이나 패하며 고개를 숙였다(8승 5패, 3위). 1992년, 그 위대한 ‘드림팀‘ 결성 이후 12년 만에 세계 정상에서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짧은 연습 기간,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만심은 미국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또 다른 원흉이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게 무릎을 꿇은 미국 대표팀(2004 아테네 올림픽)
http://www.youtube.com/watch?v=LtopNCH5-qY
잃어버린 명예 회복을 위해 미국농구협회가 가장 먼저 처리한 업무는 대표팀 단장 및 전임감독 임명이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마다 수장을 갈아치우기보다 꾸준히 대표팀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을 원했다. 대표팀 단장으로는 과거 피닉스 선즈를 서부 강호로 이끈 제리 콜란젤로, 감독은 20년 넘게 듀크 대학을 이끌고 있는 마이크 슈셉스키가 최종 낙점되었다. 둘 모두 자존심 센 NBA 스타들을 특유의 카리스마와 친화력으로 휘어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무엇이든 집어 삼킬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 콜란젤로는 피닉스에서 이미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농구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슈셉스키 감독은 듀크 대학 재임 기간 동안 네 번의 NCAA 토너먼트 우승을 이끈 명장이다. 대학 무대에서 올린 통산 승수는 957승(297패). 5번의 ACC 올해의 감독상을 비롯해 네이스미스 올해의 감독상도 세 차례나 수상했다. 1992년 드림팀 당시, 척 데일리 감독을 보좌하며 어시스턴트 코치로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슈셉스키는 부임하자마자 카멜로 앤쏘니, 코비 브라이언트, 드웨인 웨이드 등 자존심 센 선수들을 하나로 이끌며 조직력을 다져나갔다.
대표팀 내에서 다루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던 몇몇 젊은 선수들을 교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슈셉스키 감독은 베테랑 제이슨 키드를 데려왔다. 프로 선수가 가져야 할 마인드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결국 코트 위에서 같이 뛰는 선수들 말을 가장 잘 듣기 마련이다." 슈셉스키의 말이다.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으로 결성한 ‘리딤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승 우승을 달성했다. 2005년 대표팀 감독을 수락한 슈셉스키는 현재까지 국제무대에서 62승 1패라는 기록적인 승률을 쌓아가고 있다.
스페인과의 결승에서 승리를 거둔 리딤팀
물론,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로스터에서 탈락한 길버트 아레나스처럼 슈셉스키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을 쌓은 선수도 있다. 올림픽 진출의 꿈이 좌절된 아레나스는 "대학생으로 돌아가 듀크를 상대로 84점, 85점을 꽂아버리고 싶다. 만약 NCAA 무대를 밟을 수 있다면 기꺼이 NBA 한 시즌을 포기할 것"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하지만 아레나스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급기야 라커룸에 총기를 반입하는 엽기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미국 대표팀에서 탈락한 이후 아레나스는 4시즌 동안 121경기에 나서는데 그쳤다. 결국, 지난 2011-12시즌 이후 쓸쓸히 코트를 떠나야 했다. 한편, 당초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대표팀 지휘봉을 놓을 것이라 밝혔던 슈셉스키 감독은 변함없이 대표팀 감독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존 월을 비롯해 30여명의 선수들이 2013 미 대표팀 상비군에 이름을 올렸다
대표팀의 산실, 상비군 제도
상비군 제도는 미국이 자랑하는 또 다른 무기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빠지는 결원을 채울 수 있는 방편이자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로 많은 스타들이 이 상비군 팀을 거친 바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팀 던컨이다. 지난 1996년, 미 대표팀 상비군에 이름을 올린 던컨은 당시 드림팀 3의 일원이었던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 하킴 올라주원과 함께 코트를 누볐다.
상비군 제도는 선수 개개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팀의 연습 파트너로 나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로부터 여러 훈련을 지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합숙 기간은 4~5일로 길지 않지만 여름나기로 대표팀 상비군 훈련만큼 좋은 묘약도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 젊은 선수들의 상대는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들이다. 이들과의 경쟁을 통해 경쟁심, 협동심을 깨달을 수 있을 터. 성조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선배 ‘독종‘들을 만나는 특권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보너스로 NBA 선수들에겐 다소 생소할 FIBA 규칙에 대한 적응력까지 키울 수 있다. 마당 쓸고 돈 줍는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2014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미국 대표팀은 지난 7월 26일, 미니 캠프를 소집했다. 2012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한 덕분에 자동 출전권을 얻은 미국이지만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쏘니 등 더 이상 미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베테랑들을 대신할 영건 발굴을 위해 20대 초중반 선수들을 라스베이거스로 불러 모았다. 최고참은 1987년생의 마이크 콘리와 타이 로슨. 나머지는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귀염둥이‘들이었다. 캠프를 차린 라스베이거스는 싱싱한 젊음으로 가득 찼다.
라스베이거스에 모인 미국 대표팀의 미래들
http://www.youtube.com/user/therealusabasketball?feature=watch
던컨 같은 슈퍼스타들도 상비군 제도를 거쳤다
초청선수 29명 중 25명이 참가한 가운데 어린 선수들 모두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카이리 어빙(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이 23점, 7리바운드로 맹활약한 화이트 팀이 블루 팀을 128-106으로 꺾었다. 지난 2012년 대표팀 상비군에 이름을 올렸던 카와이 레너드(샌안토니오 스퍼스)는 이렇게 말한다. "상비군 제도는 저 같은 어린 선수들에게 정말 좋은 기회죠. 여기 있는 선수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합니다. 이 위대한 선수들과의 경쟁을 통해 제 기량을 더욱 키울 거예요." 그 덕분일까. 레너드는 프로 데뷔 첫 해, 올-루키 퍼스트 팀에 뽑히며 스퍼스의 미래로 자리매김했다.
대표팀에게도 상비군은 큰 자산이다. 콜란젤로 단장의 말을 들어보자. "2010년으로 돌아가 봅시다. 2008 올림픽에 참가한 많은 선수들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서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젊은 대체자들이 있었죠. 베테랑들을 대신했던 새로운 영건들 덕분에 미국 대표팀은 12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 타이틀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국가대표 상비군 제도는 미국이 세계 최강 자리를 지키는 데에 있어 화수분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NBA 무대를 몇 년째 누비고 있는 베테랑들도 예외는 아니다.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체력 마일리지는 소진되겠지만 이들은 국가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다. 개인적인 명예는 물론, 실력까지 얻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크리스 폴과 한솥밥을 먹은 코비 브라이언트는 올림픽 합류를 통해 특별한 기술을 장착한 선수 가운데 하나다. 코비는 폴보다 9년 먼저 NBA에 데뷔한 선배다.
코비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폴에게 스크리너 수비수와 볼 핸들러 수비수 사이를 파고 들어가는 움직임과 스크린을 타고 골밑으로 돌진하는 비법을 상세히 물어봤다. 이에 폴은 자신만의 무기를 아낌없이 전수했다고. 그 때 역시 슈퍼스타였던 코비에게 농구 실력 향상을 위한 체면치레 따위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코비의 ‘절친‘이자 슈셉스키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공격수였던 카멜로 앤쏘니는 "대표팀에서 여러 선수들과 손발을 맞췄다. 덕분에 득점 외에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며 만족해했다.
득점왕 3연패에 빛나는 케빈 듀란트는 코비로부터 큰 감동을 받은 선수 가운데 하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로스터가 확정되기 전, 미국 대표팀에게 하루의 휴식이 주어졌다. 이때 자신과 더불어 ‘유이하게‘ 연습 코트로 향한 단 한 명의 대표팀 동료가 있었으니 주인공은 다름 아닌 코비였다. "휴식 대신 연습을 택한 코비를 보며 많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죠. 연습 과정에서도 코비는 자신의 슛에 비로소 만족감을 느낀 후에야 코트를 떠났습니다." 듀란트의 말이다.
두 연습벌레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
http://www.youtube.com/watch?v=sHKo-it-Hek
미국 대표팀의 현재를 만든 콜란젤로 단장(가운데), 슈셉스키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
‘참 농구인‘ 콜란젤로 단장
여기에 8년째 미국대표팀 단장을 맡고 있는 콜란젤로 단장의 탁월한 운영 능력은 호랑이에 날개를 더했다. 콜란젤로는 미 대표팀 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미국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겠다"며 팀에 ‘스피드‘와 ‘압박 수비‘라는 두 가지 색깔을 입히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전략은 간단했다. 강력한 압박->상대 실책 유발->속공이 그것. 덕분에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대표팀은 8경기 평균 32.7점 차이로 상대를 꺾었다. 8경기에서 내준 평균 73.5실점은 1992년 드림팀과 같은 수치다. 그만큼 탄탄한 수비를 자랑했다.
콜란젤로 단장은 코칭스태프와의 공조를 매우 잘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슈셉스키 감독은 소속 팀인 듀크 대학에서도 빅맨보다는 윙맨, 즉 가드나 포워드의 움직임에 무게를 두는 지도자다. 콜란젤로는 이러한 의중을 파악, 슈셉스키 감독이 원하는 4가드 1빅맨 시스템을 위한 모든 선수 구성을 마쳤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한 팀을 이끄는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여기에는 갈수록 위력적인 빅맨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현대 농구의 흐름을 파악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약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기존의 장점을 키우겠다는 콜란젤로 단장의 전략이 대성공을 거둔 셈. 단순히 팀 운영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전술, 전략의 추세나 현 대표팀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 콜란젤로 단장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이는 NBA 현역 감독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2010-11시즌, 에릭 스포엘스트라 마이애미 히트 감독이 슈셉스키 감독을 찾아가 스몰라인업 전략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듣기도 했다.
FIBA 랭킹 1위에 빛나는 농구 최강국이지만 해외 전지훈련이나 친선전도 빼놓지 않는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대표팀은 마카오, 상하이 등지를 돌며 전력을 담금질했다. 스파링 파트너는 터키, 리투아니아, 러시아, 호주 같은 강팀들.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는 한국을 찾아 중국, 브라질, 리투아니아 등과 대결을 벌였다. 대표팀 캠프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편하게 자체 청백전을 치르는 것보다 약팀이라 할지라도 바다 건너 원정에서 정식경기를 벌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미국농구협회의 판단 때문이었다.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한국을 찾았던 미국 대표팀(2분 25초부터)
http://www.youtube.com/watch?v=uNh3303lt-I
2회 연속 올림픽 결승에서 맞붙은 미국과 스페인
농구가 국기인 필리핀의 경우, 지난 2010년부터 이번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준비해왔다. 3년 가까이 손발을 맞추며 2014 세계선수권대회 무대를 목표로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결과는 달콤했다. 물론, 홈코트 이점이 어느 정도 작용하긴 했지만 28년 만에 농구 월드컵에 진출하는 기쁨을 누린 것. 일본 역시 전력은 아시아 정상과 거리가 멀지만 차근차근 선진 시스템을 구축해가는 중이다. 유럽 최강임에도 불구하고 상비군 모델을 유지하면서 새싹 키우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는 스페인 같은 나라도 마찬가지.
이렇듯 각 팀들은 세계무대에서 자신들이 지닌 매력, 장점을 발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16년 만에 농구 월드컵 나들이에 나서는 한국 역시 1년 남짓 남은 ‘빅 이벤트‘를 위해 지금부터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할 것이다. 오렌지 볼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칠 각 나라의 무한도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